연민 없는 리더는 왜 위험한가_ 트럼프가 던진 경고

Ⅰ.측은지심_ Empathy_ 3. 애민정신

by 릭스leexㅡ캐리컬처

최근 한미 정상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종료됐다. 회담 3시간 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SNS를 통해 국내 내란 수사 관련 루머를 게시해 한국 측을 긴장시켰다. 야당인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부정적 논평을 쏟아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국민들은 혹여 회담이 파국으로 치닫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하게 지켜봐야 했다. 다행히 회담은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되었지만, 우리는 트럼프라는 인물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지, 자신의 정치적 입지나 이익을 위해서라면 상대를 향한 무례도 서슴지 않는지를 다시금 확인했다.


그 이전에도 여러 의미로 문제적 인물이었던 트럼프, 그의 정계 등장 이후 미국 사회는 분명 그 이전과는 달라 보인다. 트럼프는 알다시피 사업가다. 장사꾼이다. 철저히 이익에 우선한다. 사회정의나 환경문제, 같이 잘 사는 사회 따위 보편적 가치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재선에 성공한 후 트럼프는 대놓고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을 외치며 분열과 편 가르기를 조장했다. 그 결과 대표적인 이민국가이자 다인종 국가인 미국은 극단적인 '분열'로 치달았다. 안 그래도 사이 나빴던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은 이제 서로를 증오의 대상으로 여긴다. 중남미,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은 불법체류자 취급을 받는다. 이들을 추방하겠다며 군대까지 동원해 비현실적인 공포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계층 간, 인종간, 세대 간 갈등은 격화됐다. 강자들은 더 부강해지고, 약자들은 더 비참해지는 디스토피아가 예상되는 건 괜한 노파심일까? 왜 이렇게까지 할까?


남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맞다. 우리나라 역시 사회 전반에 갈등과 분열이 심각한 수준이다. 인터넷상에는 남자와 여자, 진보와 보수, 2030과 4050으로 나뉘어 마치 불구대천 원수라도 된 양 대립한다. 입에 담지도 못할 혐오와 차별의 용어가 난무한다. 특히 심각한 건, 국가 폭력 희생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조롱과 비난이 판을 친다는 점이다. 인터넷 세상은 온통 무법천지에 힘의 논리만이 유일한 정의처럼 보일 지경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런 현상이 앞으로 더 확산되면 우리 사회는 괜찮을까?


약한 사람을 보면 돕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보통의 인간이 가진 본성이다. 그걸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터넷 세상엔 이 본성에 역행해 특정 대상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익명의 언어폭력을 일삼으며 쾌감을 느끼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현실은 인터넷 세상과 다르고 그런 괴물은 일부일 뿐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빈도와 범위가 심상치 않다. 당장 우리 사회 전반, 교정부터 직장에 이르기까지 갑질, 인격모독, 집단 괴롭힘 따위 각종 문제들이 빈번해진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타인의 불행과 고통을 접하며 공감과 위로는커녕 낄낄거리며 웃고 떠들고 즐기는 이들을 함께 살아가야 할 평범한 내 이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는 못하겠다.




이제 우리 일터를 생각해 보자. 리더들은 대체로 인간적인 편인가? 아니면 냉정한 편인가? 과정을 중시하는가? 결과를 중시하는가? 대체로 후자 쪽에 가까울 것이다. 똑똑하지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내는 집요함을 전형적인 엘리트의 프로파일로 오랫동안 인식해 온 결과다.


개중에는 정말로 인간성이 나쁜 사람이 있지만 성과만 낼 수 있다면 개의치 않는다. 그런 암묵적 동의하에 약자를 착취하고 이용하는데 거리낌이 없고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도 아랑곳 않는다. 이런 괴물이 스마트한 리더라는 탈을 쓰고 승승장구한다. 인간적이고 장기적인 성과를 위해 인내할 줄 아는 리더보다 피도 눈물도 없지만 당장의 결과물을 쏙쏙 뽑아내는 냉혈한들이 카리스마적 리더로 둔갑해 높은 자리에 오르고 추앙받는 대상이 된다. 원래는 안 그랬던 사람들도 이들을 본받아 서서히 그렇게 변한다. 이들이 온라인상에서 온갖 악행을 일삼는 괴물들처럼 약자를 향한 강자의 폭력을 일삼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군주는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또 위험한 리더십 지침서로 불리는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이 구절이야말로 오늘날 리더들이 냉혹함을 카리스마의 본질로 받아들이게 하는 계기로 작동했다. 알량한 결과를 앞세우고 공포를 통해 조직을 다스리려는 시도는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2차 세계대전의 원흉인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등 독재자들이 [군주론]의 애독자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쟁은 오래전에 끝났지만, 여전히 수많은 기업 내부에 인간성이 사라진 차갑고 계산적인 냉혈한들이 관성처럼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현실은 자못 소름을 돋게 한다.


사실 [군주론] 속 '냉혹한 리더론'엔 큰 허점이 있다.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와 리더는 냉혹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국가가 막 세워지고 외부의 강대국들이 신생국을 위협하던 초기에 한정된 ‘예외적’ 덕목이었다. 마키아벨리의 모국인 피렌체가 스페인, 프랑스, 신성 로마제국 등 강대국에 수시로 침공을 당하던 시대적, 위치적 특수성이 고려되어야 하는 주장이다. 실제로 [군주론] 9장에서는 군주의 냉혹함은 일회성에 그쳐야 하며, 국가가 안정되면 반드시 포용과 자애로 다스려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렇지 않으면 민심을 잃고 파국을 맞게 된다고 단언하며 “군주는 결코 미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마치 의도적으로 이 부분을 통째로 누락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 역사에서도 한없이 비정하고 냉혹한 군주보다 애민정신을 가진 군주들이 성군으로 기록된 사례는 많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영조는 나라에 흉년이 들면 수라상의 반찬 수를 줄이고 사치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자주 변복(평민의 옷차림)으로 시내를 시찰하며 백성들의 생활을 직접 살펴보고, 민생의 어려움을 정책에 반영하려 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특히 수시로 청계천 준설공사현장에 친히 나아가 백성의 고충을 듣고 그 삶을 살폈다는 기록은 인상적이다. 조선후기 부흥을 이끈 정조 역시 행차 중 백성들의 민원을 직접 듣고 해결해 주었다는 일화가 많다. [자치통감] 기록에는 태종이 “임금의 배는 백성의 물 위에 떠 있다. 물이 잔잔하면 배가 편안하고, 물결이 거세면 배가 뒤집힌다”라 말하며 백성의 힘을 존중했다는 기록도 있다. 백성들이 어려운 한자를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법을 알지 못해 고통받지 않도록 한글을 창제한 세종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중국의 당태종 역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치세를 펼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꼽힌다. 간언을 서슴지 않았던 재상 위징의 말을 경청하며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쳤다. 그의 치세는 '정관의 치'라 불리며 태평성대의 상징이 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가 말하는 위대한 리더십의 본질은 다름 아닌, '애민정신'이다. 백성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구성원의 삶을 보듬으려는 마음이 없는 리더십은 허상일 뿐이다. 냉혹함은 위기의 순간에 잠시 필요한 도구일 수 있으나, 사회와 조직을 이끄는 지속적 힘은 결국 타인에 대한 공감과 사랑에서 나온다.




카리스마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라

높은 자리에 올라 별다른 노력도 없이 주어진 권한을 휘두르는 것을 카리스마로 착각하지 말라. 존경심 없는 포지션 파워는 허망한 법이다.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치고 강한 어조로 이것저것 지시하는 것이 카리스마가 아니다. 스스로 역경을 이겨내고 부단한 노력으로 얻은 탄탄한 실력과 ‘나도 저 시절이 있었지’라는 초심을 잃지 않는 마음가짐, 진짜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넓은 포용력이야말로 진짜 카리스마의 원천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높은 자리에 오르면 처음부터 리더였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기 쉽다. 오히려 끊임없이 자리가 주는 무게를 인식하고 권한의 남용보다는 책임을 질 줄 아는 자세야말로 부하직원들의 존경심을 부른다. 두려움은 복종과 달콤한 아부를 부르지만 진실을 가리는 장애물로 변모하기 일쑤다. 조직은 다 그런 거라며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정신적, 물리적 폭력을 일삼아 휘두르는 존재는 리더가 아니라 그냥 폭군이다. 진짜 카리스마가 무엇인지 스스로, 시시때때로 재정의해보라.


광이불휘(光而不輝) 진짜 리더는 빛나되 상대의 눈을 부시게 하지 않는다.


관찰하고 기록하라

바쁘고 유능한 리더일수록 부하직원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름과 직책은 알지만, 그 사람이 어떤 순간에 빛나고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관찰 없는 성과주의의 부작용이다.


하지만 리더십은 숫자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진정성 있는 관찰은 단순한 관리 차원을 넘어 인간적 유대감을 쌓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눈여겨보고 기록하는 습관은, “나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된다. 구성원은 자신이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존중받는다고 느낄 때 비로소 리더와 신뢰의 끈을 맺는다.


관찰은 결코 거창할 필요가 없다. 회의 자리에서 보인 태도, 협업 과정에서의 작은 배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드러난 특징 같은 사소한 것들이 기록의 소재가 된다. 그렇게 쌓인 기록은 나중에 맞춤형 피드백의 토대가 되고, 무엇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세심히 관찰되고 있다”는 사실이 구성원에게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진정성 있게 피드백하라

피드백은 구성원과의 공적, 사적 관계를 돈독히 할 좋은 기회다. 회사에서 정해준 공식 피드백 일정 말고도 틈나면 피드백을 해보라. 칭찬할 일이 생기면 칭찬하라. 왜 칭찬을 받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하라.


경청을 잘하는 사람이면 BOSE 헤드폰을 선물하라. 그리고 경청하는 '보스(BOSS)상'이라고 이름 붙여 수상하라. 실행력이 좋은 사람이면 나이키 운동화를 사서 Just Do it 상이라고 이름 붙여 수상하라. 의견을 잘 내고 아이디어가 뛰어난 사람이면 JBL블루투스 스피커를 '부드러운 카리스마'상으로 이름 붙여 수상하라.


거창한 세리머니도 큰 금액도 필요 없다. 의미부여만 되면 된다. 회사에서 연말에 주는 수백 프로 인센티브보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칭찬도 꾸지람도 철저한 팩트에 의미를 부여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권력은 단기적으론 강해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조직과 사회를 무너뜨린다.


“리더의 진짜 본심은, 힘없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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