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수오지심_ Conscience_ 1. 선(線)
"김 대리 이리 와 봐"
박 팀장이 부를 때마다 김 대리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또 무슨 덤터기를 씌울까? 걱정이 돼서다. 에이스로 소문난 김 대리는 올해 초 박 팀장이 팀으로 오면서 갑자기 일 못하는 사람이 됐다. 김대리가 올린 기안이 박 팀장의 안으로 둔갑해 올라가는 건 그렇다 치고, 박 팀장의 의견이 반영되어 수정된 안이 위에서 깨질 때면 어김없이 김 대리의 책임이 됐기 때문이다.
"이거 이 3/4분기 프로모션 방안 말이야. 내가 2/4분기 실적 이렇게 반영하지 말라고 했잖아. 이거 눈속임이니까 안 된다고."
"예? 그건 팀장님이 그렇게 반영을 하라고 하신 거잖아요. 제가 분명히 관행에서 어긋난 방식이다라고도 말씀드렸고요."
"어허, 이 사람이. 그럼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한단 말이야? 어? 내가 그럴 사람이야?"
"아니..."
"잘못했습니다. 하면 그만이지 어디서 토를 달아? 상무님 앞에서 내가 이깢걸로 망신당해야겠어?"
박 팀장은 보고서 뭉치를 김 대리의 눈앞에 홱 집어던진다. 속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이 회사에 남으려 참는 수밖에 없다. 박 팀장은 사장의 눈에 들어 임원 후보로 오르내리지 않던가? 비단 김 대리뿐 아니다. 팀원 거의 모두가 박 팀장의 개인 성과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화기애애 분위기도 좋고 성과도 뛰어났던 팀은 한순간에 모래알이 되어 그야말로 폭발 일보직전이다.
제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 타인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그로 인해 받는 누군가 피해를 입고 고통에 시달린다 해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존재. 극한 경쟁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해도 너무하는 이런 인간들의 정체는 대체 뭘까?
이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건 내면에 최소한의 선(線)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양심. 에이, 설마 양심이 아예 없는 사람이 있다고? 놀랍게도 그렇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양심이란 게 있는 평범한 사람들은 양심이 없는 상태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못한다.
양심의 유무는 '소시오패스(사이코패스)'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요인이기도 하다. 소시오패스 연구의 권위자 마사 스타우트는 양심을 '타인에 대한 애착을 바탕으로 생성되는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정의한다. 이들은 한마디로 타인에 대한 심정적 애착도 없고(가족이든 친구든 직장 동료든) 자신의 행위로 인해 상대에게 어떤 피해가 생기거나 고통을 받아도 책임감이나 의무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정신의학계에서 정의한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하위 부류 정도로 인식되지만 사실은 학술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불완전한 개념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부류가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같은 말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하며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소시오패스(사이코패스)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흉악한 범죄자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소소한 일탈을 일삼으며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거나 괴롭히면서 제 이익을 추구하고 만족을 얻으며 살아가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들은 결과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필요하다면 법과 규율의 경계를 넘나들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룰브레이커이기도 하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그 사실이 발각되어도 당황하거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거짓이 거짓을 낳고 일이 잘못되어도 남 탓으로 일관한다. 여기까지 읽고 그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맞다 바로 그 사람이다.
이 모두 내면의 선(線), 양심이 결여되어 생기는 현상이다. 이는 비단 특정 개인에 대한 착취와 괴롭힘 문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내적 이상향의 유무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선명한 내면의 선, 내적 이상향은 외부의 규제나 패널티가 없어도 스스로 그에 빗대어 자신의 행동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강력한 기제로 작동한다. 반대로 내적 이상향이 없거나 흐릿한 이들은 판단과 행동의 기준이 오직 외부에만 존재한다. 돈, 성공 등이 유일한 동기로 법의 제재나 강력한 패널티 같은 외적 규제가 없는 한,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 내적 힘이 결여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들이 리더 자리에 많아지면 조직 내에는 어떤 문제가 생길까? 오늘날 기업 현장이 단기적 이익에 매몰되어 인간을 부품 화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인간성 파괴의 문제, 예컨대 갑질, 인격모독, 집단 괴롭힘 따위 온갖 병폐들이 일종의 사회악처럼 당연시된 데는 이런 냉혈한들이 엘리트로 인정받고 높은 자리 곳곳에 포진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취하고 그 편익이 특정 개인 혹은 지극히 소수의 집단에 돌아갈 수는 있어도, 조직과 구성원 모두 함께 성장하고 장기적인 발전으로 향하는 본질적인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는 지극히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런 기업, 조직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롱런할 리 없다.
사냥감이 모두 사라진 필드에서 홀로 남은 포식자의 운명은 뻔하다.
1. 마음속 경찰을 점검하라
마음속 최후의 선이 없는 존재는 대체 왜 생기는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생태적 결함이다. 뇌신경과학계는 대뇌의 감정을 느끼고 분류하는 시스템 자체가 원천적으로 결여된 채 태어나는 존재가 약 4~5% 정도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은 선천적으로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한 감정을 정서적으로 이해하고 이입할 기능 자체가 없는 사람들이다. 파란색을 파란색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설명으로만 아는 이해하는 색맹과도 같다. 두 번째는 환경에 영향을 받은 경우다. 육아, 교육, 이데올로기등 타고난 기질을 압도하는 환경적 요인으로 생활 패턴 자체를 새롭게 형성하고 습관화한 경우다. 전자라면 본질적 접근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인지적 공감을 강화하는 게 최선이지만 후자라면 얼마든지 내면의 선(線)과 인지적 공감을 강화할 수 있다.
먼저 내 안의 최후의 선, 즉 마음속 경찰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수시로 가져야 한다. 나는 어떤 이상향을 가지고 있는가? 그 이상향은 충분히 선명한가? 없다면 만들고, 불분명하다면 선명하게 다듬어야 한다. 그 기준이 바로 내 행동을 끊임없이 제어하고, 방심할 틈을 주지 않는 최후의 장치다.
2. 수단과 방법을 가려라
옳은 결과를 얻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말라는 말은 자주 오해된다. 누군가 무단횡단을 하며 "멍청한 놈들 뭐 보는 사람도 없고 차도 없는데 신호를 지켜야 돼? 이 바쁜 세상에 나처럼 똑똑하게 굴어야지."라고 말한다면 정말 똑똑한 행동이라 박수를 쳐줄 것인가? 사실은 정반대다. 모두가 공유하기로 한 규칙, 상식, 법 등을 수시로 깨는 사람들은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지능이 매우 떨어짐을 증명하는 것이다. 바로 감성지능의 결여를 말한다. 룰은 모두가 지킬 때 최고의 효용을 낸다는 진리를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은 자연히 안다. 일부가 제 편익을 위해 공공의 룰을 깨고 그런 일이 일상화되는 순간 공동체에 혼란이 생기고 룰을 지키려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현상이 결코 건강한 시그널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극단적 결과지향주의는 조직의 창의성과 다양성에도 해롭다. 새로운 방법, 창의성은 제한과 절제에서 나온다. 조건을 걸어놓고 이 안에서 방법을 찾을 때 이전에 보지 못한 참신한 관점, 생각, 통찰, 착안점이 떠오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지침은 언제든 최소한의 선을 넘어도 좋다는 묵인과도 같다. 그 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을 때 인간은 진부해진다. 공정하게 경쟁하지 않고 혼자 특혜를 받으면 개인이 원하는 결과는 손쉽게 얻겠지만 전체의 발전은 마이너스가 된다. 늘 그 상태로 머문다. 당장은 손에 쥔 것이 있어 좋겠지만 그걸로 끝이다.
반칙과 편법으로 뭔가를 얻었다면 뿌듯해야 할 게 아니라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부끄러움이 없는 개인, 조직이 진부해지고 뻔해지는 이유다. 그런 개인, 조직은 곧 존재의 이유를 잃고 사라진다.
공동선이 결국 내 이익이다. 멍청하게 굴지 말라.
3. 관계의 거울을 점검하라
내 행동의 옳고 그름은 종종 나 혼자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아무리 나 홀로 스스로를 점검하고 성찰을 해봐도 나는 나다. 자기 과대화, 혹은 정확하지 않은 자기 확신에 빠져 있을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제3의 눈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
가까운 동료, 가족, 친구에게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비치는가? 불편함과 두려움의 대상인가, 아니면 신뢰와 협력을 주는 존재인가? 정기적으로 관계의 피드백을 점검하는 습관은 내 안의 최소한의 선, 양심을 더욱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 된다. 혼자만의 성공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선택하는 순간, 조직과 개인 모두 오래간다.
이때도 역시 중요한 건 균형이다. 나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자아성찰과 누가 뭐라 해도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건강한 자기 확신,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의 간극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자기 점검, 그 중심에 건강한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