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도 걸어도

by 초록글씨

산에 오른 적 없는 아이들과 가까운 산에 가보기로 했다. 물론 애당초 체력이 약하기도 하고 걷는 걸 좋아하지 않는 둘째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남편은 "한번 가보는 거야"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주말 비 온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비는커녕 얼굴과 팔에 선크림을 바르고 모자도 쓰고 이글대는 태양을 피하고자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섰다.

아이들도 있으니 적당히 올라갔다가 얕은 계곡에서 놀다 우리는 시원하게 막걸리에 파전이나 먹고 오기로 했다. 밖으로 나간다 하면 벌써 신이 난 아이들은 마음보다 몸이 먼저 나간다. 지하철에 앉은 둘째가 다리를 흔들흔들 바로 앞에 서있던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신이 난 몸을 제지시켰다. (아이들은 알사탕에 나오는 동동이 아빠 마냥 잔소리를 하지 않는 날이 없다고 생각하겠지.)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당연한 광경이겠지만,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 천지다. 산을 와본지가 언젠지. 다이어트한다고 꾸준히 수영이며 헬스며 운동을 하던 친구와 한번 다녀오고 그 후로 등산을 간 적이 없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여전히 날씬한 몸을 유지하고 있고 나는 노력하지 않았으니 (이하 생략) 하고 적당히 살아가고 있다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십 년이 넘어도 두 번이나 넘었으니 그 시절도 가물가물하고 아직은 산보다 바다가 좋은 사람이구나 했다. 역시나 둘째는 조금 오르다 말고 칭얼거려 아빠가 목마를 태웠고, 대신 내가 아이스박스 가방을 메고 올랐다. 짐을 줄이고 줄여 나갔는데도 어깨가 무겁다. 이번에는 첫째가 작아진 눈과 툭 튀어나온 입으로 말을 한다. 올라가긴 할 건지, 갈 둥 말 둥 그냥 쉬기로 했다. 쉬는 게 상책이니.


아이들과 다니다 보면 계획대로 착착착 진행되지 않는다. 벌써 한놈 갔다 오면 한놈이 뒤늦게 화장실을 가니 인내해야 한다.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되어 신랑과 투닥투닥할 뻔하다가 좋은데 와서 그러지 말아야지 속으로 삭이다가 순간 뻥 터져 성내다가, 두세 마디 참다 보면 또 평화로운 순간이 온다. 전 같으면 (할 말은 꼭 하고 넘어가야 다음에 또 그런 일은 없지) 대화를 하고 짚고 넘어가는 일이 많았지만, 전투적이던 모습은 빠데리 0에서 10프로 간당간당 하여 만사 귀찮아지는 날도 많드라. 당장 오늘은 뭐 먹지로 시작해 무거운 내 몸하나 씻기도 힘든 날이 많다. 사사건건 건들고 터트리는 건 서로에게도 나에게도 좋지 않은 문제다. 문제를 만들어 정답을 찾아 헤매기보다 문제를 만들지 않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별거가 별거로운 일인가? 내 마음도 수행이 필요하구나. 9년 가까이 살아보니 쿵작이 맞춰지는 순간이 온다. 여전히 으르렁 될 때가 있지만 서로가 노력한 시간이 더 많다고 본다.


오랜 시간 연인관계였던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시간은 다른 이야기가 되고, 아이들과 함께 흐르는 시간은 또 다르다. 앞으로 각자의 세월이 만나 합을 이루려면 그 또한 힘들겠다 싶다. 스스로 갈고닦아야 할 수행의 길은 끝이 없고 어느 정도는 내려놓아야 할 팔자 범주안에 있다는 밑밥도 깔고, 이미 강을 건넜으니 다시 되돌릴 수 없고 혹여나 새로운 강을 건너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 하겠지만. 최선을 다해보는 거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렇다고 나의 삶 역시 끝난 게 아니다. 다만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두 명의 생명체를 보며 험난할 수도 있는 미지의 시간들을 어떻게 잘 이끌어 나가야 할까..! 되도록이면 각자의 인생과 우리라는 시간이 재미나고,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우리의 사랑은 연민과 의리도 함께다.


눈앞에 절이 보였다. 무슨 사연으로 초를 켰을까? 타는 초를 보다가 연말에 케이크에 초를 꽂고 빌던 소원들이 생각났다. 건강과 무탈한 일상이 이어지길 바라던 마음들. 저마다의 기도가 가 닿길 바란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의 마음들이 활활 타오른다. 아마 부처님은 아실 수도 있겠지. 종교는 없지만, 염원을 바라는 나의 마음도 들리길 바라본다.



절에서 나와 힘들어하던 아이들을 데리고 조금 더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아빠를 따라 내려가는 아이들 총총총 걷는 모습이 귀엽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길을 가는 사람 마냥. 까마득한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바람이 살짝 불 때면 잠시 시원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태양은 이글 거린다. 계곡에서 시간 보내다가 막걸리 한 사발 하면 딱이다 싶어 아이들 마냥 절로 신이 다. 그러나 발길 머무는 곳에서 먹었던 파전이 생각보다 맛없어 속상했고 (별게 속상 하지만, 지금은 별게 별거다.) 계곡에서 맥주를 먹은 탓에 막걸리도 그저 그랬지만. 그래, 막걸리와 파전이 뭐 대수라고! 걸음 끝에 마주하는 녹색의 짙은 나무와 우리의 시간은 평화롭다. 함께 머무르는 이 계절을 즐길 수 있다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