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하고 꿉꿉한 날이었다. 아침 빈속에 커피를 자주 마셔 그런가 전날 먹었던 치킨이 소화가 되지 않았나 밤부터 머리도 아프고 속이 쓰려 기분이 별로다. 오랜만에 모임도 있는 날인데 "4시 그 장소 맞지?" 친구에게 온 메시지를 보며 고민했다. 나처럼 결혼한 친구, 독립해 사는 친구도 있고 사는 곳도 제각각이라 다 같이 모이려면 일 년에 세네 번도 많이 보는 거다. 각자의 삶도 있으니 모이기 쉽지 않다. 이불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갈까 말까 술 한잔 하기로 했는데 고민하다가 (고민을 한다는 건 이미 답은 정해졌다는 건데, 왜 고민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다면 가야지 내적 갈등을 하다가) 다음에 보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정신력으로 내 몸뚱이 하나 끌고 나갈 여력이 있었는데 생각했지만, 따지고 보면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 것이 맞다. 병원에 가 진료받고 일주일치 약을 처방받았다. 처방받고 집에 와 조금 쳐졌다. 지금의 삶이, 나란 사람이 남편 아이들로만 얽매어 있지 않나 싶기도 해서. 누가 나가지 말란 이도 없는데 그냥 지금이 편해져 버린 내가 가끔 권태롭기도 하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마음적으로 안정돼 있다.
아이를 낳고 조리원 동기가 생겼다. 사교적이던 언니가 여럿을 초대해 모임을 만들었다. 한동안 모임에 나가 잘 모르는 아이 관련 정보도 얻고 각자의 고달픔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결혼 전 카페에 칭얼대는 아이를 데리고 여럿이 있는 엄마들을 보면 확실히 나와 다른 부류라고 생각했다. 남편 이야기며 시어머니 이야기며 누구네는 그랬다더라 어쨌다더라 큰 목소리 너머로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이야기들 신기했다. 아이들은 만화를 보고 엄마들은 서로 말하기 바빴다. 지금은 이 상황들에 대해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때의 나를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나보다 일찍 결혼해 애 둘 있던 친구에게 애들 데리고 나와서 커피 마시는 게 더 힘들지 않아?라고 물은 적이 있다. 친구는 "엄마들도 애 데리고 힘든데, 나가서 카페도 가고 맛있는 커피도 먹고 싶은 거야" "하루 종일 말도 못 하는 아이랑 있으면 외딴섬에 혼자 있는 거 같이 외로워"라고 대답했다. 그때 그 말은 잊히지 않는다.
아이를 데리고 처음 엄마들을 만나고 집에 오는 길 기분이 이상했다. 나와 다른 부류라고 생각했던 내가 거기에 있으니 나 같지 않아서. 그리고 그 모임은 자주 나가지 않았다. 친구에게 "재미없어 잘 안나가게 돼"라고 말하니, 아이 돌보면서 힘든 이야기도 하고 또 그만의 공감대가 형성돼서 재밌지 않아?라고 묻길래 아니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들으니 진짜 내가 이상한 건가 싶기도 했다. (지금 내 아이 하나 돌보기도 힘든데 누구 엄마네 아이는 뒤집기를 벌써 하고 누구 엄마네 아이는 걷기를 벌써 하고 그냥 있는 이야기를 하는 거지만, 빠르지 못한 아이를 둔 엄마는 우리 애는 왜 아직도 안 하는 거야 자연스레 그런 흐름이 되는 게 웃기기도 했다. 자랑이 아니지만 자랑 같은. 못난 부분이 아니지만 못나 보이기도 하는. 서로의 자식 이야기들.) 피곤했다. 나란 사람대 사람으로 만나기보다 아이를 통해 이어진 모임이다 보니 흥미롭지 않았다. 지금은 아이가 각자 다른 학교로 입학도 하고 취업을 한 엄마도 있어 안 만나지 오래다. 언젠가 만나게 되면 커가는 아이들에 대해, 또 그동안의 이야기를 하다가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엄마에서 나라는 사람으로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흘러가는 데로 지금을 맞이할 뿐이다.
지금의 나를 떠올려봤다. 아이를 낳고 우울증을 심하게 겪는 엄마들도 봤고, 갑자기 나란 사람은 없다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엄마들도 봤다. 일부는 아이를 재우고 호스트바를 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것이 가능한가 싶겠지만 가능하다고. 그렇게 보면, 지금 내가 할 일은 아이를 돌보고 나란 사람을 놓지 않고 그냥 지금의 삶을 사는 거라고 다독이며 잘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 생각은 가끔 힘을 잃기도 한다. 뜻되로 되지 않는 아이들과 감정적으로 변하는 나, 힘들어서 아이들에게 신경 못쓰고 방관하기도 하는 나. 사람하나 키우기가 이리 힘들구나 그러기도 한다.
여자로 엄마로 인생에 전환점이기도 한 그때 (이제야) 나란 사람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 글도 써보고 쓰고 싶은 글귀도 적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혼자 영화관을 가지 않는 편인데 지금은 무엇보다 그 시간이 좋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 보는 것, 영화관 가는 건 즐겁다. 전보다 자주는 못 보더라도 좋아하는 시간을 내어주려고 한다. 엄마라는 사람 아빠라는 사람 따지고 보면 누구나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야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도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나에게 시간을 내어 줄 필요가 있다.
영화 '리얼 페인'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투어에 앞서 각자 소개를 하던 여자는 어느 날 자기가 한심하게 생각하던 그 여자가 돼있었다고. 브런치 먹으러 다니는 여자라고 이야기한다. 블라블라 그 뒤는 어떤 이야기인지 알 것 같아 나도 저런 여자가 되기 싫다고 생각했다. 브런치 좋아한다. 맛있는 커피 좋아하는 빵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한심해하던 여자는 '그저 그렇게' '그냥 모여'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자기는 없는. 대충 우리가 짐작해 봄직한 그런 모습들 그런 사람을 빗대어 이야기한 걸 테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어떤 날은 친구에게 푸념을 늘어놓기도 하고 이유 없이 그냥 만나기도 하고 어떤가? 좋지 않나? 목적이 있어야만 만나고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채우는 건 의미 없는 일이고 꼭 건전한 미래에 대해 논하는 것 만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바람직 하긴 하겠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 그런 만남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문제는 일상 대부분을 사람 만나는 일에만 치중한다거나 만나서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던가 일상 대부분을 치장하는데 신경 쓰고 보여 주기식 자랑만 한다거나 진짜가 없는 삶에 있다. 지나고 나면 공허함만 남는다. 껍데기로 살아가는 삶을 지양하고 싶고 지양하려고 노력한다.
오늘은 어떠 한가? 나는 어떠 한가?
삶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내가 이상한가?라는 의문이 생길 때도 있지만 어쩌면 그게 진짜 나일수도 있다. 약 처방받고 삼일 지나 커피를 마셨다. 약 먹는 동안 당분간 커피는 자제하라고 했는데, 목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이 기분! 아 살 것 같다 좋다. 그러고 있는 내가 왜 이러나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