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햇볕이 온몸으로 흡수된 듯 숨쉬기조차 힘든 날씨가 연일 지속 중이다. 초첨을 잃은 눈동자는 눈꺼풀만 꿈뻑꿈뻑, 힘이 없고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매가리 없는 육신은 이때다 싶어 제일 가벼운 상태다.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넘기고 늬적늬적 몸을 일으켜 세우고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공복에 루이보스티 한잔으로 몸에 갈증을 채운 뒤 입맛이 없어 대충 배만 채운다. 영혼의 된장찌개는 없고 수프만 있다.
첫째와 둘째가 울음으로 자기표현하던 시절 울적한 기분과 배고픔이 더해지면 빨간 고추장 범벅이 된 떡 한입 먹으면 살 것 같다 했다. 그 맵던 떡볶이를 무슨 정신으로 먹었는지, 이제는 제일 착한 맛으로 배달해 먹는다. 내 영혼을 삼켜버린 소울푸드는 그때를 버티게 한 힘. 먹고사는 게 이리도 중요한 일이다. 육신과 정신을 채우는 일. 어느새 떡볶이는 딸이 물에 휑궈먹는 최애 배달 음식이 되었다.
이제는. 다행인지 아닌지 서로 자기 이야기하기 바쁜 꼬맹이들과 앙리 마티스 전시를 보러 갔다. (아직 울음으로 표현하는 날이 많다. 아주 많다.....) 얼리버드로 구매한 티켓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야 했다.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앙리 마티스 작품이 눈에 익은 아이들은 몇몇 작품을 보고 반가워했다.
"엄마 왜 사람들이 옷을 안 입었어?"
"저 그림 잘 그렸다"
"저 얼굴은 나도 그릴 수 있겠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감상하던 둘째는 여유 있는 공간이 뛰기 적절하다고 생각했는지, 제동을 걸기도 전에 달려 나갔다. 악! 고함을 지르려다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참아야지 참자....) 조용히 "뛰지 마! 안돼!" 간절한 눈으로 달랬다. (엄마는 무개념 아들과 엄마로 박제되기 싫단 말이야. 플리즈 응? 아들아)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하면 안 되는 행동인데, 순수하게 할 거 다 하는 아이들. 그런 장면들이 짤로 돌아다니고 그럴 동안 엄마 아빠는 도대체 뭐 하고 있나? 무수한 댓글로 도배된 영상들.
(아 아찔하다. 그런 순간만 전시될까 무섭다.)
어르고 달래서 둘러보았다.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초기 작품을 시작으로 아트북[재즈]에 이르기까지 총 56 작품(유화, 드로잉, 컷아웃)을 감상할 수 있다. 한 바퀴 둘러보니 마침 도슨트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10여분이 지났을까 (잠잠하다 했다. 그럼 그렇지..) 싫증이 난 아이들은 힘들다고 주저앉고 새로운 재미가 필요하다고 난리다. 얼른, 체험프로그램이 있는 제2 전시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전시장에는 마티스 그림 색칠, 컷아웃 기법을 통한 나만의 그림 만들기, 스탬프로 마티스 그림 완성하기, 즉석사진 찍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딸은 이야기를 구성해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관심이 많다. 유튜브로 캐릭터를 따라 그리기도 하고 드로잉 책을 보기도 한다. 적극적으로 체험활동 하던 딸은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하다 멈추고 하다 멈추고를 반복했다. 전시를 보고 나니 자신의 그림이 영 별로라 우울한 표정을 짓다가 징징댄다. 하.. ("오! 느낌 있다. 캐릭터가 살아있다. 잘했다."는 한두 번이면 된다. 스스로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이므로 내버려 둔다.)
탈탈 털린 내 영혼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수가 없고.
반면 아들은 아까 보았던 작품 '노란색 배경의 얼굴'이 자신 있다고 노란색 종이에 얼굴을 그리고 다른 그림을 색칠해 오려 붙었다. 아들이 꾸민 그림을 벽에 붙여달라고 부탁한다. 만족한 얼굴로 그 옆에 서서 사진도 찍어 달라고 한다. 시선을 떼니 벽 면 한가득 자신만의 색깔로 다시 만들고 재구성한 또 다른 버전의 마티스 작품들이 보인다. 알리 없겠지만, 앙리 마티스는 알까? 싶다.
우리는 그것을 마주하고 느끼고 있다.
마티스는 류머티즘으로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 붓 대신에 가위를, 물감 대신에 색종이를 사용해 작품을 완성시켰다. 종이 오리기는 아주 작은 조각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벽만큼 커다란 조각이 되었고 벽까지 가로질러 문까지 덮어버릴 정도로 커졌다. 자신이 꾸며낸 정원에서 마음대로 산책할 수 있었다. 마티스가 춤과 음악을 사랑했다는 점도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에도 밝은 그림을 계속해서 그려나갔다. 의도적으로 사회현실을 외면한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자유 분방한 사람, 사물들, 단순한 형태와 밝고 순수한 색감, 순수한 분위기는 마티스의 삶이자 세계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지나간 시간들이 여러 사람의 눈을 통해 기억되고 다시 기록된다.
아름다운 일이다.
밥으로 채우던 맛과 다른 맛이다.
아이들 덕에 여행지 갔다가 들린 곳에서 우리나라 역사에 관한 기록을 보다 보면, 예전과 달리 흥미롭게 보게 된다. 어릴 때 체감상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 와닿는 부분이 크달까! 새롭게 다가온다. 어떻게든 인간이 내딛고 사는 방식을 만들며 여기까지 온 지금, 흥망성쇠의 애달픔이며 고단함은 어쩌고.. 아직 갈 길 먼 내게 까마득한 옛날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이 이렇게 위대하다 싶어지는 순간을 보게 된다.
아픈 역사와 마주 하기도 한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가 나온다. 과거 나치에 의해 유대인 대량 학살이 자행됐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오늘날 끔찍했던 과거를 엿볼 수 있는 박물관이 되어 직원들은 쓸고 닦는다. 사람들은 그 안을 들여다보며 생각하겠지.
주인 없는 수많은 신발, 수용소 가스실에서 절규하며 죽어간 사람들의 손톱자국을 보며 현재의 삶을 반추한다.
마음이 아프다.
그 모습이 교차편집되니, 현재가 기록되어 옛것이 된다 생각하면 지난날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놀라운 삶 일부분에 있는 것 또한 맞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도 든다.
(물론 업적을 꼭 남겨야 위대한 삶이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 두고, 개개인의 역사가 흘러 나아 간다는 명목하에)
태어난 순간 우리는 이미 기록되고 전시된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시를 보고 나와, 작은 무대를 발견한 딸은 학교에서 배웠던 제니 춤을 추겠다고 신이 났다.
봐 달라고 난리다.
제법 춤사위가 매끄러워졌다.
매우 열심히, 진지하다.
웃으면 안 된다.
비웃는다고 삐진다.
왜 나 같을까?
봐 달라고 아우성이다.
지금은,
매주 [쉼 다시 보다, 머물다]로 금요일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