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먹으면 돼.
에너지 넘치던 20대라 가능한 일이었지만, 매일 한 시간 넘는 거리를 어떻게 출퇴근했지 생각할 때가 있다. 광화문 주변을 가게 되면 혹시나 하고 둘러보던 집이 있다. 큼지막한 손만두와 칼국수 보쌈을 팔던 곳이다. 검색을 해도 2010년 이후에 글이 없는 거 보면 '스스로 돈을 벌어 내 맘대로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던 시간도 몇 년이 흘렀으니, 새로 생기고 없어졌겠지' 나만큼 그곳도 변화를 맞이했겠다.
그곳은 박 과장이 술 마신 다음날이면 점심에 칼국수로 해장을 하던 곳이다. 과장은 경리부와 총무부를 총괄하다 보니 여직원들과 가까운 사이였다. 어딘가 허술해 보이고 웃기기도 했지만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대체 일주일에 술을 얼마나 마시던지 아침마다 여직원들의 인사는 "과장님 어제도 술 드셨어요?"였다.
일본에 본사를 두고 교보빌딩 안 15층과 17층에 자리 잡았던 곳에 사장은 여자였다. 감사하게도 대학 교수가 면접 한번 봐보라고 추천해 줬다. (아마, 나의 운으로 추리자면 왔다 간지도 모르던 초년운에 해당하는 운세는 몇 번 행운이 온 듯 싶다. 그리고 그 운은 끝났나 싶기도 하고)
사장은 비서와 선임 언니 말고는 여직원들과 직접 말 섞을 일이 별로 없었다. 화장끼 없는 창백한 얼굴에 긴 생머리, 깔끔한 옷매무새는 지나만 가도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비서 언니는 아침마다 커피를 내렸다. 커피 맛이 다르다고 호출하면 여직원들은 오늘은 조심해야 하는 날이구나 생각했다.
사회생활은 처음이라 말하면 뭐 하나. 실수투성이였고, 퇴근할 때 일 시키는 사람, 열받게 하는 사람 왜 일하러 다니나 반복되는 무한 패턴의 굴레에서 삶의 의미를 쫓던 20대. 그럼에도 첫 직장은 마치 시트콤 안 등장인물이 된 기분이었다. 약간의 마찰이 있어도 문제 되지 않을 정도로 넘겼고 크게 모난 사람도 없었으며 잘 이끌어주기도 하고 잘 따르기도 했고, 여직원끼리 화합이 잘 됐고 으쌰으쌰 했다.
각자의 캐릭터 대로 매일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던 공간에 들어가 있었다.
내가 들어오고 한 명이 그만두고 나서야 동갑내기가 입사했다. 재미난 성격에 솔직한 성격이라 누구나 웃게 만들었던 그녀. 사회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 오기 힘든데 꽤나 오랜 시간 친분을 유지했다. 죽이 참 잘 맞았다.
"내일 하루 어떻게 버티지?" 체력하나 믿고, 내일을 잊은 채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다음날 아침 저 멀리 낯익은 실루엣 하나가 다가왔다. 잘못 본 건가? 손 흔들며 느릿하게 걸어오던 실루엣은 동갑내기 친구였다. (어찌나 웃기던지) "오늘 하루 어떻게 괜찮겠어?" 폭소하던 친구와 내가 생생하다.
동질감으로 하루를 버텼나? 재미로 다녔나?
추운 겨울이라 어묵 국물 호호 불어가며 서둘러 출근해 하루를 버텼던 날이었다.
유쾌했던 동갑내기 친구를 비서언니는 딱딱하게 대했다. 조직 체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언니는 내가 먼저 들어왔다고 선배대우 하길 바랐다. 고작 네 달. 직급이 있는 것도 아니니 우리는, 나도 상관없었다.
친구는 사석에서 불만을 토로했지만 먼저 들어온 나에게 비서언니는 많은 부분을 알려주기도 했고 상냥했다. 그래서 친구의 하소연에 맞장구치지 않았다. (뭐어 그런 거다, 그랬으니깐.)
일어는 기본이고 항상 정갈해 보이던 비서 언니는 자기 바운더리 안에서 유연하게 회사 생활을 잘하던 사람으로 첫 직장생활에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비서 언니가 선임 언니를 질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선임 언니에게 무엇 하나 빠지지 않을 텐데 질투할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그 질투 한가운데 유부남 과장이 있었다.
우리는 뭐? 무슨 매력이 있어서 유부남 과장을 좋아한다고? 동갑내기 친구와 나는 의아해했고 믿지 않았다. 선임 언니에게 착각하는 거 아니냐고 우리는 농담을 건넸다.
선임언니와 우리는 회사 밖에서도 자주 만나는 사이라 편안한 사이였지만 그래도 회사 안에서는 예의를 지켰다. 선임언니는 과장이 하는 업무와 연관이 있었고, 신임을 받았다. 과장은 일도 잘하고 센스 있던 선임언니와 대표가 지시하던 일들에 대해 의논했다. 두 사람이 일하고 있는 유리창 너머 부스 안으로 웃는 모습, 심각한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그 앞에 비서언니가 일하던 자리가 있었고, 과장이 신경 써야 하는 일 중 여직원 관리도 있었기에 비서 언니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일차가 끝나고 과장과 몇몇 여직원들은 이차를 가기 위해 포장마차로 향했다.
매일 '좋은 생각' 책을 보던 인상 깊던 언니는 회사 안에서만 우리들과 어울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언니와 나는 비슷한 구석이 있었지만, 나에게 이곳은 궁합이 잘 맞았던 곳이었나 싶다.
항상 흐트러짐 없던 비서언니는 근무와 상관없는 곳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직장 안에서와 달리 편해 보였다. 그 자리를 즐기고 있는 게 보였고 동갑내기 친구도 스스럼없이 약간의 불만을 토로했다. 경계를 풀고 쿨하게 이야기 나누던 비서 언니는 어느 순간 선임언니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제야 동갑내기 친구와 나는 비서 언니가 선임언니를 질투한다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이 언성이 커지자 과장은 중간에서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애쓰다가 심각해짐을 느끼고 비서 언니를 혼냈다. 친구와 나는 조용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다음날 선임 언니에게 넌지시 어제 일은 잘 마무리되었냐고 물었고, 잘 해결되었다는 말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물으면 안 될 일로 보였다.) 비서언니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했고 어색한 분위기는 없었다.
일에 진심으로 보였던 언니가 빠져 있던 건 뭘까? 과장에 대한 신임을 얻는 일이었을까? 아니면, 많은 부분을 함께 하다 보니 존경스러운 부분이 생겼나? (과장은 사람 좋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일적으로 똑똑했고 냉철했다.) 그 사람에게 매료되었나? 알지 못한 채 나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늘 하던 고민은 더 이상 다닐 이유가 없었다. (그때는 진짜 일이 하고 싶어 다니는 건지 무의미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놀라웠던 점은 차갑던 여자 사장이 말단 사원인 나를 본인의 방으로 부른 것이었다. 과장이 설득해도 마음을 굳힌 듯싶어 마지막으로 대화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 당시 사장이 나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고 느낀 건 (순전히 나의 생각이지만) 사장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본 이후였던 것 같다.
일본인 남편이 회사 대표였고 사장이 가족회사로 운영하던 한국에서 좀 더 사람들과 끈끈하게 업무체계가 이루어지길 바랐던 것 같다. 입사하고 몇 개월 지나 사장은 모든 직원과 일대일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장은 나에게 회사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일하는데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물어봤다. 가까이 얼굴을 마주하니 방에 들어가기 전 긴장하던 내가 무색할 만큼 긴장되지 않았다. 그냥 같은 여자로서 사장의 삶, 사장이 된 배경이 궁금했다. 진짜 그랬다. "사장님은 어떻게 사장님이 되셨어요?" 물어봤다. 사장은 크게 웃었다. 궁금하냐고 다시 물었다.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 없었겠지. 또 하나 (앞서 말했듯 이 모든 것은 순전히 나의 생각이지만) 본인의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었을 거고 그런 내가 황당했을 거고 진짜로 궁금해하던 내가 진짜여서 웃었을 거다. 이후 나를 조금 달리 보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사장은 일본 회사에서 일했고 그 안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것들을 자신이 먼저 보았다는 것. 사장의 눈으로 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눈에 띄었을 거다. "사장님은 사장님이 될 운명인걸 아셨다는 걸까요?" 조심스럽게 물었고 한참 후에 가끔 (내가 저런 질문을 왜 했지? 미쳤나 봐) 생각하면 무례할 수도 있던 나를 좋게 봐주셨던 것 같다. 순수한 의도가 귀여웠나.. 흥미로웠나..
불안했던 20대. 사장의 설득은 내 심장에 닿지 않았다. 사장은 지금 어떤 일을 할지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그만 두기 보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혹시 그 사이에 더 좋은 기회가 올지도 모르고, 오래 다녀보면 그 안에서 다른 생각이 들 거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후회가 남기도 했지만, 그때 내 선택은 그러했으니) 그때로 되돌아갈 수 없고 지금을 살아갈 테지만, 인상 깊었던 첫 사회생활은 채워지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뭐 그리) 이렇게 사는 게 의미가 있나?
의미, 무의미에 대해 목말랐을까?
이제와 말이지만, 내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맞이한 것도 없다. 생각이 부족해서 이 모양인가?
차라리 가치로운 삶에 다다르기 위해 노력할 것을.
고작,
산지 얼마나 됐다고.
살다 보니 살아진다는 말이 와닿는 시절로 들어왔다.
살아내는 것이 사는 이유이고, 이번생을 살아내야 하는 존재이유라고 생각한다.
잘 비워내고 잘 채워야겠다.
언제까지 살아남을지 모르겠지만, 자책과 위로 아닌 위로와 위안과 나에 대해 쓰고 있다.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갈 테고 깊은 수렁에 빠질지 모르겠지만 사는 동안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거다.
인생을 포기할 수 없지 않나?
그러니 엉망으로 막 쓸 수도 없다.
되도록이면, 내 글은 꼿꼿하면 좋겠다.
잘 써내려 가보도록 하겠다.
내가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영화 '버닝'은 많은 메타포와 은유가 깔려 있다.
오래전에 보았던 우울하고 머리가 복잡해지는 영화로 글을 쓰다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함께 올려본다.
해미는 종수에게 판토마임을 보여준다.
"여기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먹으면 돼."
"그게 다야"
"중요한 건 진짜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사는 부시먼들에게 두 종류의 굶주린 자가 있다고 한다.
'리틀헝거'(그냥 배가 고픈 사람)와 '그레이트 헝거'(삶의 의미에 굶주린 사람)
해미는 아프리카로 여행 가는 동안 키우는 고양이에게 밥을 줄 수 있냐고 부탁하는가 하면, 종수가 기억하지 못하는 우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해미는 사라지고, 종수는 의문으로 가득 찬 고양이와 우물 존재여부에 집착한다. 정작 중요한 건 사라진 해미인데, 해미가 아닌 다른 것에 집중한다.
평론가 이동진은 "우리의 세상은 미스터리로 가득하지만 그건 안고 가야 하고 풀 수 없다.
우물의 존재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우리의 삶이, 세상이 텅 빈 우물 같고 우리 세계가 끝내 풀 수 없는 미스터리다."
해미가 말한 귤을 의미로 바꿔 말하면,
"삶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삶의 의미가 없다는 걸 잊어 먹으면 돼."
삶이 무의미하다는 걸 잊어야 비로소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
영화가 끝난 후 해석이 재밌는 영화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