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만에 먹은 술인지. 이틀 내내 부기가 빠지지 않는다. 잘 쓰지 않던 얼음팩은 이럴 때 유용하다. 눈에 얼음팩을 올렸다 떼며 '대도시의 사랑법'에 나왔던 장면을 생각했다. "다시 술 마시면 사람도 아니야" 다음날 해장 하려고 끓인 라면 앞에 재희와 흥수는 알았다는 듯이 소주잔에 술을 따른다. 하. 예전은 예전이다. 부어라 마셔라 소주잔을 부딪히며 아픔도 잊고 나만의 세상이 즐거웠던 20대는 이제 받아들일 수 없다. 즐거움으로 버티던 몸과 정신은 내가 아니다. 아! 하나 후회가 남는다면, 회식 자리에서 재희처럼 멋들어지게 샹송하나 부를걸. (샹송을 배워둘걸 정도) 다 한때, 때를 놓쳤네 영화를 보며 생각했지만.
그날은 신랑과 잘 나가지 않던 모임에 나갔다. 신랑은 일요일이 되면 가끔 운동을 하러 나간다.
딸 소원도 못 들어줘?
애들 크면 같이 어디 가자고 해도 안 따라다녀!
나가는 날 한 명 데리고 나가.
수많은 말을 하고 나서야 타협했다.
이렇게 텍스트로 보니, 굉장히 시끄러운 여자가 된 것 같아 별로지만 어떠한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싸움은 불가피하므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 원점일지라도 싸워야 한다.
오전에 운동만 하고 오면 좋으련만, 의례 점심 먹고 술 한잔씩 하다 보면 사실상 그 하루는 딸에게 없는 시간이 된다. 주말마다 아빠랑 놀고 싶어 하는 딸은 함께 나섰다가 삼촌들이 하는 짓궂은 농담과 지루한 시간들로 이제는 질색팔색 하며 따라가지 않는다. 가끔 아내와 아이들이 와서 운동하는 모습도 보고 밥도 먹는다고 하지만, 내 선택과 무방한 이야기라 흘렸다.
신랑과 나는 참 다르다고 느낄 때가 많다. 기본적으로 신랑은 사람을 좋아한다. 모든 것에 제약을 걸고 통제한다는 건 내 뜻대로만 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사는 건 의미가 없다. 계속 싫은 소리 하면 귀 아픈 소리 밖에 안되므로 타협이 불가피하다 싶을 때 한 번씩 툭 던져야 한다.
아이들도 오고 계곡도 있다 하여 아들과 함께 나섰다. 아들내미는 장난치는 삼촌들이 그저 웃기고 형과 노는 것도 나쁘지 않은지 아빠를 잘 따라나선다. 딸은 차라리 이모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하여 따라가진 않았다. 딸내미는 아빠에게 잔소리쟁이다. "아빠 술이나 담배 중에 하나만 끊어" 걱정 섞인 목소리에도 그는 맞대응으로 답한다. 딸에게 "좋아하는 물건 중에 하나만 가질래?"
"왜 저래" 싶다가도 딸이 웃다가 심통 냈다 토라지는 모습을 보면 어린 시절 나는 왜 저러지 못했나 둘 사이가 부럽기도 하다.
오랜만에 보는 지인들이 하나같이 말한다.
"형수 신랑 좀 풀어줘요"
(나는 생각한다. 자유롭고 싶다면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지)
"가정적이고 잘하는데"
(그건 누구의 기준? 듣고 생각만 한다.)
나는 답한다.
"나도 나가서 술도 마시고 놀고 싶어. 일 년에 나가야 세네 번이야" (이보다 할 말 없게 만드는 답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딸은 아빠랑 놀고 싶어 해. 주말만 기다려" (맞는 말이니깐.)
지인은 "여기 애들 데리고 와서 운동하는 것도 보고 밥도 먹고 해요, 얼마나 좋아요" 이야기한다.
(그 좋다는 기준은 난가? 그 사람인가?)
그렇게 넋두리하면서 건배하고.
혼자 아들내미 키우는데 고민은 없는지, 아들은 잘 지내는지 자식 이야기 하면서 또 마시고.
우승한 팀 축배 들다가 짠 하고.
먹고사는 이야기 듣다가 또 하다가 짠 하고.
낮술이 나를 잡아먹는 건지, 오랜만에 느끼는 취기로 헤롱헤롱했다.
싫은 자리는 굳이 가지 않는 게 좋고, 이왕 가기로 마음먹었다면 확실하게 즐기고 와야 좋다는 생각이다. 덕에 오랜만에 회식분위기도 떠오르고 즐겁기도 했다. 덕에 (그를 자주 내보낼 수 없다는) 말도 여러 번. 지금은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우선이다. 그때뿐이므로 그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가끔, 그러면 나의 시간은? 농담과 진담사이를 오가는 그에게 그러면 내 시간은 설왕설래하는 것조차 입이 아프므로 한 대 때릴까 싶기도 하지만 기분이 괜찮을 땐 서로 그냥 빠르게 넘기는 게 낫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사람이 살면서 평생 해야 할 '지랄' (반항적 행동)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지랄총량의 법칙을 들은 적 있다. 괴학적 근거보다는 심리적 위안과 통찰을 제공하는 개념으로, 삶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태도를 강조한다고 한다. 요즘 딸은 그 시기인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았나?.. 꼬박꼬박 말대답하고 벌써부터 엄마 아빠를 이겨먹으려고 한다. 버릇없는 행동이 보이면 통제 불가능한 사춘기 때 저 아이를 어떻게 설득시켜야 하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머리가 아파온다. 그런 딸을 보면 신랑은 호되게 야단친다. 딸은 서러워서 문을 닫고 펑펑 운다. 그래도 똑같은 행동은 반복된다. (그러니깐 아이이고, 계속 알려줘야겠지만.) 반항은 멈추지 않는다. 그는 너 그러다 한번 크게 혼난다고 겁 주다가 달래도 보고, 둘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사랑 싸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무한반복 또 반복이다. (그러니깐 아이이고, 계속 알려줘야겠지만. 반복 또 반복!)
어떤 날은 명령하고 매를 들까 싶다가 나도 모르게 등짝 스매싱을 날리고 지친 하루를 보내며 아마 신이 내게 인내하라고 보낸 고통 인가 생각한다.
어떤 날은 (치약 맛 나는 아이스크림이라며 그 맛이 재미났는지) 민트 초콜릿에 빠져 있는 딸이 두 볼에 아이스크림을 묻히고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기쁨과 희망을 주신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엄마가 느껴졌는지, '나 귀엽지' 무언의 말을 쏟아낸다. 입 주변은 아이스크림 범벅이 된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나의 마음도 잠시 평화롭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 아이들이 충분히 사랑받고 있구나 느끼게 해 주고 싶다.
어떤 날은 비 오는 하원 길 "엄마 잠깐만" 하더니 우산을 피해 아들이 집으로 뛰어간다. 슈퍼소닉을 외치며 달리는 사랑 덩어리. (콱 깨물어 주고 싶다.)
부디. 아이들이 내딛는 걸음 앞에 어린 마음이 덜 상처받고, 깊은 우물을 들이지 않길 바란다.
첫째가 사진을 보여줬다. "엄마 기억나?"
둘째를 임신해 볼록한 배를 하고, 지금의 모습과 딴판인 개구쟁이 첫째와 큰 곰돌이 인형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놀랬다.
'나 왜 젊었지?' 그때는 '나 언제 이렇게 나이 먹었지' 그랬는데. '지금이 가장 젊을 때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이들과 함께 커 나가는 나의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할 때도 있다. 성인이 된 아이들을 상상하며 축하 선물은 뭘 해줄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때는 다시 그때로 기억되겠지만, 아이들과 술 한잔 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되면 소중했던 우리의 시간들을 바라보고 싶다.
그렇게
건배.
인내의 상자도 열어볼 테다.
투정도 부릴 테다.
또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