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과 이성 사이
- 인스타를 하다 보면 (지금은 시들시들해져 몇 달간 기록할 엄두가 안 나고, 브런치 스토리에 흥미가 있다.) 어떠한 목적으로 혹은 어떠한 것에 가치를 두느냐는 다르지만 이해 못 할 모습과 상황과 사람을 보게 된다.
어디 인스타뿐이겠는가.
한때 이쁜 몸매를 드러내고 남기고 싶어 비키니를 입고 사진을 찍는다거나 (이해하지 못할 사람에게 오히려 그렇게 보는 사람이 이상한 거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자신의 옷이나 가방 등을 명품으로 치장하고 사진을 찍는다거나 (그러려고 인스타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외형적인 모습을 기록하는 사람, 반대로 일상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사람을 보면 '일기는 일기장에 쓰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 아니겠나?
달리 생각하면 모든 것은 상대적이기도 하니깐.
(따지고 보면 다 보여주기 식이다.)
말하자면, 명품을 집에만 두고 보관하는 건 의미가 없다. 걸치고 나가야 비로소 자기만족을 넘어 개인의 스타일과 정체성이 완성되는 것이다.
나도 매한가지다.
그 기록은 나만 보면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소통을 하는 것도 아니다. (엥? 그냥 그런 게 좋은 사람이다.)
내 인스타 팔로워 측근은 본인 일상 보여주는 것에 관심 없고 그냥 인스타 보려고 계정 만든 친구들 몇 명, 또 몇 안 되는 지인 포함 10명이 안된다.
흐릿하게 이어오는 인연들은 내가 인스타를 하는지도 모른다.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굉장히 피곤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그 외 모르는 사람과 더 많이 팔로워 팔로잉을 하고 있는 이 아이러니. 혼자만의 시간이 좋고 일부러 선택적 고립도 하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주고 관계를 맺는다는 게 얼마나 모순인가?
지금은 오래전 한참 재미를 붙일 때 팔로워 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몇 년 뜸해지고 아이 낳고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어 사진 형태로만 올리던 기록을 끄적이는 형태로 올리다 보니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인스타를 방문하는 정도다.
친구와 수다를 떨다 보면 종종 그 드라마 봤어? 드라마 안 보고 뭐 해? 묻는다.(나는 드라마 보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이런 거 한다. (이런 게 좋으니깐) 궁금한 게 많아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하고.
친구에게 전해 듣는 드라마 내용이 더 재밌고, 간혹 관심 가는 이야기 관심 있는 연예인이 나오면 챙겨보는 정도다.
내 팔로잉 연예인은 최우식 한 명이다. 즐겨보던 서진이네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그냥 웃음이 나서 관심이 갔고 영화 '거인' 보고 좀 놀래기도 했다.
남자라고 쓰여 있는 남자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그런 것은 이제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졌다.
그 사람으로서 매력을 발견한다면 그냥 그 로서 좋은 거다. (본능이 먼저 알아본다.)
그런 면에서 나는 어떠한 매력이 있을까?.....
- 각설하고,
사람은 어떠한 형태로든 사람 안에서 살 수밖에 없다.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의 도움 없이 자립할 수 없고 혹여 다른 이에게 맡겨진다 해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죽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홀로 맞이하는 쓸쓸한 죽음도 사람을 통해 발견되고 묻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말 없는 자는 사라지겠지만.
누구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존재고, 역설적이고 모순적으로 삶을 윤택하고 고귀하게 살아가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니깐)
살아온 삶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진짜 그 사람의 삶이 아니라면 완전하게 그 사람을 이해하기도 힘들다. 생각하는 가치관도 다를 수밖에 없고.
이를테면 돈이 절대적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돈은 도구일 뿐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진짜 아파보지 않으면 진짜 가난해보지 않으면 자신만 아는 아픔과 불행은 타인이 감히 알 수도 없고, 있다는 착각은 오만이다. 다만, 선택적이긴 하지만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거나 한정적일 수밖에 없지만)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꼬투리를 잡자면 끝도 없다.
우리는 각자의 서사가 있고, 이야기꾼이다. 사람을 통해 반추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 말과 글은 독이 될 수도 득이 될 수도 있다. 내 뇌를 흔드는 일은 중요하다. 모든 것을 맹신하지 말고 (좋아하고, 존중하는 것과 별개다.) 깨우치고 나아가야 한다.
글이든 예술이든 사람과 사람이든 형태가 다를 뿐 결국 사람과 연결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엄마 아빠 뜻에 따라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될 것인가? 반대에 부딪힌 자신의 꿈이나 소신을 밀어붙일 것인가? 한 번쯤 미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생일대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다. 개인의 인생에 뭐가 됐든 깨닫는 점이 있을 것이다. 가까운 미래 나의 발언이 후회할만한 일이 생긴다면, 그땐 또 나만의 방법을 찾겠지만 아들딸이 그걸 넘어선다면 이성과 본능이 따로 움직 일지라도 인정해 줄 수밖에 없고. (선하고, 좋은 영향력을 펼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극단적으로, 어떤 사람과 마찰이 있거나 맞지 않아 미친 사람으로 보이거나 남을 수도 있겠지만 진짜로 미친 사람이 되면 안 되는 거다. 나는 진짜여야 한다.
나이스하고 유려하다. 유연하고 유쾌하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런 사람이 좋았다. (지금도 유쾌한 사람을 좋아하긴 하지만) 모든 관계는 상대적이라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가까이 지내보니 실상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끼기도 했다. 저런 뉘앙스가 풍기는 형태는 무겁기보다 가볍다. 그 모습이 능수능란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냥 거기까지. 가까워질수록 먼 느낌도 든다.
그리고, 어쩌면 보이는 면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나의 생각은 조금 바뀌었다.
'진짜' '진심'이 보이는 사람에게 눈이 간다.
그냥 그 사람 자체인 거다. 물론 그 모습은 내가 느끼는 매력과도 맞아떨어질 때 관심이 간다. 어떠한 노력으로 변화한다 해도 본능은 남게 마련이다. 숨길 수 없고 숨겨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런 사람이 좋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에게 얼마나 진심일까?
누군가에게 나도, 눈길이 가는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