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by 초록글씨

고등학교 2학년으로 기억한다. 그날은 아빠에게 혼난 날이었다. 처음이었다. 이제 공부를 좀 해야 하지 않겠냐고, 정신 차려야 하지 않겠냐는 함축적인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빠가 아무리 그래도 난 기죽지 않아"라는 얼굴로 묻는 질문에는 건성으로 대답했던 것 같다. 아빠는 본인 감정이 묻어나지 않게 나지막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빠에게 혼나고 분한 나는 눈물을 삼키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와 반성보다는 싫어하는 아빠가 내게 훈계를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어릴 적 내게 아빠는 그냥 무섭고 싫은 존재였다.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현관문 앞에 앉아 동네 떠나가라 울었다. 그 사실은 동네 아주머니들을 통해 자주 들었다. 나를 보면 늘 그 이야기를 하셨다. "엄마만 없으면 그렇게 엄마 찾고 울었던 거 기억나니?" "언제 이렇게 컸데"

진짜. 그 어린 꼬마가 뭘 알았을까? 그때부터 아빠는 이미 무서운 존재였나?(내가 엄마가 돼 보니, 아이들은 부모의 감정을 금세 알아차린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내가 말 못 하던 시절 아빠는 내게 어떤 모습이었나? (그때의 나 그때의 아빠가 보고 싶다.) 알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엄마에게 듣는 잔소리는 일상이 되었지만, 아빠는 내게 뭐라고 잔소리를 한 적도 없다. 대신 늘 엄마에게 화를 내셨다. 그러고 보면 나는 효녀는 아니었다. 그 장면을 매번 보면서도 엄마는 항상 나를 감싸주는 사람, 아빠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그랬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조마조마했다. 직접 아빠가 내게 뭐라고 하면 나는 다음에 아빠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무너지는 모습조차 들키기 싫은 존재. 산 같은 존재. 함께 있지만 공존하지 못하고 불협화음 같은 사이가 불편하고 싫었다. 두렵고 무서운 존재로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아빠에게 혼나던 날 여러 감정이 들었지만, 차라리 속 시원하기도 했던 것 같다. 늘 지켜보던 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으니깐.


아빠는 엄마와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났고, 내가 어릴 적에도 지금으로 치자면 젊은 할아버지였다. 엄마에게도 사연은 있었다. 아빠에게는 골칫덩이 아들이 있었다. 아마도 아빠가 죽기 직전까지 풀지 못했던 마음의 숙제, 상처 아니었을까 어렴풋하게 짐작해 본다. 아픈 부인이 있었고 돈을 벌어야 하는 가장이다 보니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빠는 국가유공자이기도 했다. 미군부대에서 일을 했고 영어도 잘했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내가 본 적은 없고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라 확인할 방법은 없다. 퇴직금을 받아 직원을 두고 택시사업을 했다고 했다. 관리하면서 사고도 났고 직원들도 속을 썩여 해결하느라 꽤나 고생했다고 들었다. 그 과정에서 아빠는 법 관련 공부를 했고 그 일은 접고 그렇게 법무사 사무실을 차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법무사 일은 중학교 시절 즈음에 정리하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래층과 슈퍼, 이층 한편에 딸려 있던 작은 방은 월세를 주었다. 다른 삼층집도 있었지만 오빠가 결혼을 하고 그 집은 오빠에게 물려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법무사사무실을 정리했지만 가끔 지인들이 도움을 청하러 집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아빠는 밖에서는 호탕했다. 따르는 사람도 많았고 많이 도와주기도 했다. 그런 아빠가 싫었다. 정작 집에서는 말이 없었고 엄마를 사랑하긴 하는 걸까 밥 차려주고 말 잘 듣는 여자라고 생각하는 걸까. (전형적인 옛날 남자, 우리 엄마는 전형적인 옛날 엄마였다.) 우리 엄마도 그럴 것이 그 시절 할머니에게 여자가 무슨 공부냐고 아들만 차별대우 하던 엄마 밑에서 반항 한번 하지 않고 그 삶을 받아들이고 자랐다고 했다. 아마 그 시절 그 세대 그런 엄마가 또 아이를 낳아 그렇게 자랐으니 엄마의 삶을 보자면 슬픈 생각이 든다.

삼촌에게도 딸과 아들이 있었다. 딸은 공부를 잘했고 시골에서도 서울에서 알아주는 대학교를 들어갈 만한 실력이었다. 삼촌은 대학교를 보낼 형편이 되지 못할뿐더러 그렇게 교육받고 자라왔듯이 여자가 무슨 공부냐고 대학교 입학을 반대했다. 아빠는 삼촌을 설득했고 딸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가끔 (평소 재밌고 할 말 다하는 유쾌한 이모로 인식된) 왈가닥 이모는 미운 삼촌이 없는 자리에서 어떻게 저런 딸이 나왔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딸은 이후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녔다고 들었다. 그렇게 믿고 따르던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삼촌은 대성통곡했다. 왈가닥 이모는 슬프다고 술을 그렇게 마시냐고 적당히 하라며 큰소리를 쳤고 한바탕 싸움이 날 뻔했다.

아빠가 사고를 당한 날은 비가 왔다. 장마철이라 걱정이 되었던 아빠는 손녀 집에 물 새는 곳은 없는지 수리할 곳이 없는지 확인하러 나갔다가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는 늘 걱정거리던 아들이 낳은 딸을 많이 아꼈다. 평소 내색을 잘하지 않던 아빠가 손녀에게만큼은 이쁘다 이쁘다 해주고 눈에 보일 정도로 애정이 묻어났다. 아빠의 흔적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지갑 속에도 환하게 웃고 있는 손녀사진 한 장뿐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속내를 알 수없던 아빠의 마음에 늘 품었던 걱정이 보여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아빠가 떠나간 자리는 믿기지 않았고 허망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가족은 매년 여름이 되면 바닷가가 있는 작은 아빠네 집으로 놀러 갔다. 비릿한 생선 냄새, 작은 엄마가 끓여 주던 고기 듬뿍 넣은 김치찌개가 놓인 상. 친척들과 삥 둘러앉아 농을 주고받던 장면들이 가끔 생각난다. 작은 아빠는 엄마와 나를 보며 아빠가 그렇게 걱정했는데, "엄마 없었으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어" 엄마에게 감사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알았다. (어쩌면 아빠와 엄마 사이에 나는 없는 존재가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어쩌겠나. 그게 우리고 나란 사람인데. 있는 사실 그대로 태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렸던 적이 있었기도 하지만) 아빠가 열심히 이루었던 길, 단편적으로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 내가 보았던 아빠의 성격과 모습. 자식만큼은 뜻대로 될 수도 없고 되지도 않는 일이라고. 어찌 보면 실패했고 한으로 남아있었을 거다. 더군다나 아빠는 노쇠해져 가고 나이도 있으니 혹여 자신이 없는 자리에 남았을 많을 것들을 생각하면, 엄마와 아빠 사이에 연결된 나는 큰 문제였을 거라고 생각된다. 몇 날 며칠 작은 아빠에게 고민을 털어났다고 했다.

자유를 만끽하던 대학교 시절에도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깨달았지만) 아빠는 다 알면서도 한 번씩 언질을 주었다. 자유를 주지만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무언의 압박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 몫은 엄마였지만 일말의 양심을 느끼던 나는 혹여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 일들에 대해 흐트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엄마가 전부라고 생각했고 내 안에 내어주지 않던 자리에 아빠는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내 정신을 지배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보면 아빠는 무심해 보였지만 나를 꿰뚫고 있었나? 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벌을 주거나 체벌을 한 적이 없었지만 마주 보고 있는 것조차 무서운 사람. 아빠였다.


내가 보는 아빠는 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빠가 내게 할 말이 있는 듯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생각난다. 그때는 그 모든 게 싫었고 혹여 무슨 말을 시키기라도 할까 봐 피했다.

집에 작은 정원이 있었는데, 아빠는 꽃을 심었다가 옮겼다가 큰 돌을 옮기고 시멘트치도 하고 작은 연못을 만들기도 했다. 치우는 건 엄마도 거들어야 해서 그것도 못마땅했고 왜 제자리에 있는 것들을 다시 부수고 옮기고 할까?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기 싫었다. 차후 연못은 없애고 집 안에 큰 수족관을 들였다. 날을 정해두고 관리를 해야 하지만 아빠와 엄마 몫이니 나는 다양한 색 물고기를 보며 즐거워했다. 아빠는 붓으로 한자를 쓰고 책을 읽거나 마당에 나가 일을 만들었다. 왜 쉬지 않고 일을 만들까? 어린 눈엔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뒷모습, 아빠의 작아진 등이 떠오를 때면 싫어했던 마음은 보잘것없고, 어루만져주지 못했던 아빠의 인생에 미안해진다. 따뜻한 온기로 한 번이라도 안아줄걸. 쌓인 세월만큼 잊혔던 아빠가 생각날 때면 마음이 아리다. 온전한 정신으로 살기 힘들었던 걸까? 자신을 놓지 않으려 무던히 애썼던 걸까? 이제야 보이는 것들은, 어쩌면 평생 헤아리지 못할 마음은, 애써 당신을 다 안다는 오만한 생각은 아빠에게 가닿지 못한다. 아빠 마음에 피어나지 못한 꽃이 있었나? 아름다운 꽃을 보여주고 싶었나?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나는 봄이 왔구나 좋다를 느끼는 사람이지, 꽃을 심고 가꾸는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봄이 되면, 꽃을 보며 아빠 생각을 한다. 혹시나 영혼이 존재한다면 다음 생에 나는 당신이 못 피운 꽃이 되고 싶다. 자유로운 나비가 되어 나에게 날아와 줄래? 아니면, 좋은 인연으로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어른이 되어도 가끔 진짜 어른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나를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실까? 전하지 못했던 말은 뭐였나? 엄마가 된 나를 보면 어떨까? 내 아들 딸을 보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무수한 말을 뒤로하고 난 여전히 알고 싶고,

보고 싶다.


당신이 그립다.


어떤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