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마음에게.
오물오물 빵빵해진 볼. 눈이 뱅글뱅글. 코에서 매콤한 향기가 빠져나간다. 머리가 어지럽다. 눈에 박하사탕이 콕 박혔다. 머리털은 스고 내 몸에 감싸던 연기가 가득 뭉쳐 구름을 만든다. 그렇게 귀로 새어나가던 불투명한 구름은 투명해졌다. 아 살았다. 내 마음도 수채화 물감으로 물든 하늘이 되었다. 다른 맛 사탕은 어떤 색으로 변할까? 궁금해진다. 먹어보자! 어 어디서 말소리가 들린다. 집에는 나랑 우리 집 강아지만 있다. 구슬이가 말을 한다. 늙어서 오래 놀기 힘들단다. 놀기 싫은 게 아니란다. 심심해하던 내가 걱정이었나 보다. 우리 집 구슬이는 내가 말 못 하던 어린 시절부터 함께였다. 그때는 할머니도 계셨지만. 난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아도 심심하지 않다. 정말이다. 구슬이가 나를 귀찮아하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이제 잠을 잘 시간이다. 그런데 분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아빠의 잔소리는 끝도 없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빨간색으로 칠하고 덧 칠하고 뻑뻑하고 거칠어졌다. 그래 도전이다! 이빨 썩게 사탕 하나 먹어야지. 사탕은 달콤하다. 잠시만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들릴 듯 잘 들리지 않지만 무섭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귀 쫑긋. 우선 이불속으로 몸을 감싸고. 뭐라고? 잘 안 들린다. 뭐지? 어? 사랑해 사랑한다고? 정말이야? 사랑 사랑해라고? 아빠다. 몰랐다. 지긋지긋한 잔소리로 귀가 아팠는데 아빠가 나보고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아빠에게 미안해진다. 진심을 몰라줘서 그리고 "고마워 나도 사랑해" 설거지하던 아빠 뒤에 가 꼭 안아줬다. 아 포근하다. 이제 달콤한 잠을 잘 수 있겠다.
백희나 작가의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은 흥미로워한다. 장수탕 선녀님을 보고 첫째는 목욕탕을 궁금해했다. 엄마랑 손 잡고 동네 목욕탕에 가보고 싶다 하여 6살 무렵 세 개의 탕이 있는 작은 동네 목욕탕에 데리고 갔다. "엄마 진짜 장수탕 선녀님에 나오던 목욕탕 아니야" 너스레 떨던 첫째는 선녀가 저기서 나올 것 같다고 좋아했다. 이상하게 요새는 목욕탕을 잘 가지 않게 된다. 찜질방 가서 계란이며 사발면이며 얼음 동동 아이스커피 먹는 재미에 맛 들린 탓도 있다.
얼마 전 개봉한 알사탕은 20여 분간 짧은 단편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 시작 전 첫째는 "엄마 아빠가 저번에 나는 개다 노래 불렀어 아빠 개래" (나는 개다를 읽어주던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는지. 아놔!) 백희나 작가의 또 다른 책 이야기를 하며 극장 불이 꺼지길 기다렸다. "엄마 불 꺼줘야 영화 시작해" 둘째가 알려준다. "맞다 그렇지, 쉿 시작이야" 불이 꺼지고 책에 나오던 장면들이 말을 하고 움직인다.
책에서 읽었던 장면은 작가의 언어와 더해져 몽글몽글 말캉말캉한 뭉게구름이 된다. 같은 공간 무심결에 바라보는 하늘처럼, 덤덤하지만 가끔 잊고 지내던 기억을 보고 싶게 만든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도 누구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아이가 있다. 담배연기에 숱한 상념을 날려 보내던 작아진 아빠의 등을 안아주지 못했던 아이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왜 안아주지 못했을까? 아직 살아 계신다면 덜컥 안아줄 수 있을까? 작아진 아빠의 뒷모습이 떠올라, 안아주지 못했던 나의 마음과 입이 무거웠던 아빠의 진심이 와닿아 눈물이 흘렀다. 그 마음은 숨겼다. 나만 알고 싶은 마음을 조용하게 훔쳤다. 그렇게 잔소리를 듣고 삐뚤어지고야 말겠다는 동동이가 사탕을 먹고 듣는 아빠의 진심을 보았다. 그리고 들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영화가 끝나고 신난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유리창 너머 쨍하고 맑은 하늘이 보인다. 각자 포즈를 취한 아이들은 제각각이다. 사진은 말이 없다. 그날의 하늘은 고요했다.
고마워
미안해.
끝내 전하지 못한, 그리고 끝끝내 헤아리지 못할 당신의 마음과 마음에게.
다음 주 '고백'이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