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계속.
모르긴 몰라도 일곱 살? 그보다 이전? 인 것 같다. 거꾸로 되돌리기. 되돌려 봐도 같은 장면.
웅성이던 사람들은 뒤로 밀려 나가고, 한가운데 엄마와 나만 남았다. 검은 눈망울은 동그랗게 커지고, 엄마는, 엄마의 얼굴은. 생동감이 넘쳐흘렀을까?
곱지 않던 친절한 손이 나를 잡고 상냥하게 걸어가는 걸 보면 안색은 밝았겠지. 모르는 아주머니와 흥정하던 나긋한 목소리도.
시장을 가면 엄마와 나란히 앉아 부침개를 먹었다. 시장을 몇 번 갔는지 몰라도 자연스레 부침개 먹던 엄마와 나의 뒷모습이 뇌리에 남는다.
그때가 제일 좋았을까?
손잡고 시장을 걸어 다니던 것이. 목욕탕을 갔던 것은, 엄마 없으면 울었던 것은, 뭉뚱그려 떠오르던 장면은 꿈이 아니다.
차분하게 생각하면 엄마 얼굴이 보인다.
언제나 내편. 세상에서 제일 착한 엄마. 참아내는 사람. 그렇게 살아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잊어버렸을까? 아마 그랬을 것 같다.
희고 고운 얼굴만, 젊었던 엄마 얼굴이 보인다.
어렴풋이 엄마와 언니가 지내온 시간이 녹록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죽을 때까지 물을 일이 있을까 싶다.
여태 그렇게 길들여지진 탓이겠지. 서로에게.
오래전 엄마 가슴에 남아있던 것이 있다면 용기 내어 해체하고 어루만져주고 싶다는 생각만.
생각이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모르겠고,)
평생 그럴 것 같다.
지나간 시절 함께 일했던 동료는 그 말을 꺼내기까지 엄마를 원망했을까? 지금도 그리워할까? 다시 살아온다 해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묻지 못했다.
그녀와 만난 시간이 짧기도 했고, 속속들이 알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서 거기까지만 들었다.
그녀가 먼저 엄마에 대해 꺼낸 말은 아니었고, 퇴근길 내가 먼저 엄마 흉을 봤던 것 같다.
(마치 딸이 이모에게 엄마가 이랬어 저랬어 흉을 보듯. 딸들은 원래 그런가? 나만 그런가? 보통 엄마들은 딸 흉을 보지 않잖아. 내 딸은 나를 닮았다.)
"우리 엄마는 왜 그런지 모르겠어" 같은 이야기를 꺼냈던 것 같다. 나보다 네 살 어렸던 그녀는
"언니, 저희 엄마는 집에 안 계세요"
"어릴 때 학교 와서 보니 엄마가 장롱에서 목매달아 자살했어요"
"항상 우울증 약을 드셨어요"
아니..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런 말을 하면 당혹스러운 내 얼굴은 티가 나나? 나지 않을까? 말문이 막혔다.
"그러면 지금은 집에 오빠랑 살아?" 물어봤다. 그녀는 더 이상 그런 일은 문제 될 게 없다는 듯 아빠도 함께 셋이 산다고 대답했다.
평소 그녀를 보자면, 기분이 나쁘면 나쁘다고 표현하고 기분이 좋으면 좋다고 내비치는 숨김이 없고 투명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전부를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수수께끼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살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고, 잘 살아있구나 안심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지긋지긋하지 않았을까? 숨기지도 숨기기도 싫은 현실을 꺼내지 못할 이유도, 이제는 무던해진 이유도, 아니면 내가 깨닫지 못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내가 지껄이는 말들은 그녀의 의중과는 전혀 상관없겠지만, 그때 그녀에게 엄마는 고통과 상처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인간은 생각보다 강인하게 태어났다고 믿는 편이다.
경험과 자기 극복을 통해 강인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순전히 그런 생각이 깃들어 있다.
그녀는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엄마가 사라졌거나 사라지지 않았거나.
딸에게 꼬치꼬치 물어볼 때마다 엄마를 떠올린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봐 모든 걸 알려는 엄마가 싫어 밀어냈고, 딸에게 모르는 일이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는 엄마는 다 알고 싶어 했다. 적당히 하자 생각한다.
잡히지 못하는 사람.
엄마와 나 같다.
모르겠지만 알 것도 같은 사람, 엄마는 잡히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관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