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기운이 스며드는 계절이라도 눈을 봐야 겨울이 온 듯싶다. 마침 퇴근 시간에 내리던 눈이 도로 위 그를 고생스럽게 만든다. 매년 매번 내리던 눈을 만져보고 싶어 장갑을 끼는 건 아이들이다. 눈이 흩날릴지라도 침묵하고 싶어 지는데, 아이들은 아무 상관없다. 웃음소리가 나쁘지 않다.
그나저나 겨울이다.
딸은
"엄마 이번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선물 세 개 있어"
"세 개나?"
"응, 산타할아버지한테 소원 들어달라고 빌 거야"
(야야야 엄마는 네가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 세 개 준비하라고? 그중에 하나 고르라고?)
딸내미도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걸 엄마가 알고 있다는 걸 알면서 웃는다.
이건 암묵적 합의다.
지나치려고 했는데,
"엄마 트리 장식은 안 해?" 묻는다.
(이번 연말은 조용하게 선물만 준비하려고 했는데)
또 물어본다.
안 하면 서운하겠지?
크리스마스 장식 꾸러미를 열어야겠다. 귀여운 눈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어릴 적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적이 없다. 그런 것에 메말라 있었고, 연말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는 매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려고 한다.
선물은 있다가 없다가 했던 것 같은데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은 과자선물세트였다. 산타할아버지가 신는 빨간 장화 안에 과자가 한가득이었고, 그날 무엇 때문인지 기분이 좋았다. 그 선물이 맘에 들었다.
아이들에게 과자선물세트를 해주면 당연히 좋아하지 않겠지? 왜인지 예스럽다고 느껴진다.
(예스러운 게 꼭 나쁜 것만도 아닌데.)
아들내미는 울 것도 같다. 아이들도 어른들이 그러하듯 끝마무리는 좋아야 하니깐 원하는 것으로 준비해야겠다.
브런치에서 알람이 온다. 내일은 연재하는 금요일이라고 글 쓰란다. (이 글을 쓰는 건 금요일이었다.)
손이 굳었나. 머리가 굳었나.
전에 써두었던 몇 개 안 되는 글을 꺼내려다가 쓴다. 언제까지 써야 할까,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란 생각으로 쓸 때가 있다. 무모하다는 생각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처음 마음을 생각해 내면 끝을 생각하지 않게 된다. 올해 브런치를 시작한 것은 분명 잘한 일 같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을 응원하고 싶다. 만족이란 걸 하고 싶다.
'언제, 어느 때 마음이 흡족했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 감각을 느낀 지 오래된 것 같아서.
겨울이니깐, 보이지 않는 군고구마를 여기에 두고 달콤한 맛을 느껴보고 싶다.
겨울은 아들의 날이다. 딸은 여름에 태어나서 여름은 나의 날, 겨울은 동생의 날이라고 한다. 축하를 해주고 잠자리에 누웠다.
느닷없이 "고맙습니다" 하는 것이 놀라워,
"어머 생일축하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거야?
"아니 태어나줘서"
"아아 태어나게 해 줘서 고맙다고 하는 거야?"
"네"
아이고, 숨은 쉬지? 꽉 껴안는다.
뜬금없이 존댓말로 어마어마한 말을 할 때가 있다. 고슴도치 엄마에게 연달아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엄마 근데 로블록스 아이들처럼 나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로블록스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라고 알고 있다.)
아이들이 엄마는 나 사랑해? 할 때마다 내 가슴에 아이들 손을 얹고 "이게 뭔지 알아? 엄마 심장에 사랑이 가득해" 말하면 아이들은 좋아서 키득키득 웃는다.
보이지 않는 사랑이 만져지는 것처럼.
아이들 앞에서 오글거림은 없다. 마법처럼 유치하지 않게 된다. 아들내미에게 내 손을 얹자마자 웃는다. (딘스무어처럼 나쁘게 세뇌한 것은 아니다.)
"당연하지, 강한 심장을 가졌잖아."
아들은 키득키득 웃는다.
찰스디킨스의 소설이 원작인 '위대한 유산'에 나왔던 영화의 한 장면이다. (감독 알폰소 쿠아론)
말로 '사랑해'하는 것보다 좋아한다.
(굉장히 좋아한다.)
마을 최고 갑부인 딘스무어는 약혼자에게 버림받고 미쳤다는 소문이 있다. 조카 에스텔라와 춤을 추게 했던 딘에게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이게 뭔지 아냐고 물어본다.
'멍든 가슴'이라고 말한다.
(에스텔라와 딘이 분수에서 입 맞추던 장면이 유명하지만.) 바로 그 장면을 써먹었다.
(굉장히 좋아한다.)
매년 만나도 매번 다르다.
겨울이다.
서둘러 크리스마스 맞이를 해야겠다.
늦은 감이 있지만, 딸이 물어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