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려고 들은 건 아니다.
건너편 테이블에 앉은 두 사람은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여자에 대해 대화했다. 모르는 세 사람 중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여자는 상식밖의 행동을 하는 여자였다. 화장실을 다녀와 시간을 보니 대략 한 시간이 넘었다. 그녀들의 대화 끝은 왜! "그 현장에 짧은 치마를 입고 나타난 건데?"였다.
반복 또 반복이다.
"어울리지 않게 그 색은 뭐고, 다리가 이쁘다고 생각하는 건가?"였다.
궁금해졌다.
묻고 싶었다.
"얼마나 짧은 치마를 입었길래요?"
(조용히 나에게 물어봤다.)
대화를 주도하던 여자는 지지치 않았고, 맞장구치던 여자는 지쳐가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자 빈틈없던 오디오에 틈이 생겨나는 걸 보니 그러했다.
내 의중과 상관없이 그 자리에 없던 여자는 그녀들이 못내 가지지 못한 부러워할만한 것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남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이키며 (혹시 나도 저런 적이?...) 생각했다. 기나긴 시간, 없지는 않았겠지. (난 감정이 많은 인간인데.)
자잘한 기억 대신 한여름 맥주와 치킨이 떠올랐다.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아니 왜 퇴근할 때 꼭 일을 시켜? 왜 퇴근을 안 해? 기분파야 뭐야? 화나는 이유야 많았겠지만 가장 큰 불만은 퇴근만 기다리는 내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상사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
서로 다른 직장, 말로만 듣던 상사 흉을 보던 친구와 나는 왜 직장에 좋은 상사는 없을까 회의감을 느꼈다. 아마 그들도 왜 직장에 괜찮은 신입은 없을까? 했겠지 싶다.
시끄러운 호프집이라 망정이지, 조용한 카페였다면 나 같은 사람이 "회사를 그만두는 게 어때요?"라고 물어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우리는 "당장 갈 곳이 마땅치 않아서요" 허공에 날려버릴지도 모르겠다.
어디 상사뿐일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를 맺으며 얼마나 다양한 사람을 만났나.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나.
차차, 그들이 틀린 것만도 아니며 나쁜 것만도 아니야라고 받아들였다. 생김새부터 다를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모든 사람이 다르다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도 없는 일이다.
누구나 생각하는 또라이라면 차라리 위안이 된다.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피하면 그만이지만 살면서 만나지 않는 것이 더 큰 위안이 된다.
시간을 거슬러, 생각해 본다.
조심스럽게 그 상사에게 나의 의중을 말해 볼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사회 초년생, 회사 분위기, 잘 보이고 싶었던 마음이 컸겠지 싶다.
일대일로 대화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저 불편한 관계, 싫은 사람으로 치부해 버린 것. 내 의견을 듣지 않을 거라는 편견은 어쩌면 그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걸 수도 있다. 어쩌면 생각 이상으로 괜찮은 상사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지금은 문제 상황에 대한 인식과 반응이 긍정적으로 변화했다고 느끼지만,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서툰 감정과 마주할 때가 있다.
좋아하는 부분이 먼저가 아니라 싫어하는 부분이 먼저 와닿는 사람이라 싫어하는 사람, 용납되지 않는 것은 죽어도 하기 싫은 사람이다.
그것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완전하게 알고 있다.
그리고 쉽게 바꿀 수 없는 사람인 것도 같다.
그것은 결핍이라고 생각된다. 그 결핍의 이유가 뭘까를 찾는 것과 부정적 신념을 긍정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평생 숙제가 될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런 숙제가 있을까?
가로막던 벽이 있었을까? 단단하게 쌓인 벽이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역시나 숙제가 될 것 같다.
시끄러운 공간에서 나왔다.
괜히 아이스로 먹었나,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마실 걸. 추위가 두배로 느껴진다. 숨 쉬는 구멍으로 찬기운이 들어온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겉옷을 여미었다.
걸어가는데 금세 공기가 바뀌었다.
등원길 학교 정문에서 차량통제하고 아이들 안전을 위해 봉사하는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가 대뜸 고함을 질렀다. 화가 난 할아버지는 사람이 먼저지 차가 먼저냐고 시비를 걸었다.
저렇게 별거 아닌 걸로 작정하고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했다.
그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할아버지를 차분하게 설득하며 돌려보냈다. 보고 있던 엄마들은 애쓰시는 할아버지를 위로했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되고 듣고 싶지 않아도 듣게 되는 것들.
할아버지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부정적인 신념이 뭐길래? 생각했다. 내 안에 부정적 감정이 가득 차면 부정적 행동이 나온다. 만약에 내 안에 감사함, 평화, 안정감이 가득 차있으면 긍정적 행동이 나오게 마련이다.
건강한 생각이 자리 잡도록.
내 안의 에너지에 집중하고, 입은 무겁게 잘 간수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