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은 왜 이리도 빨리 자라는지.
무심코 시야에 들어온다.
샤워를 마치고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고 손톱깎이를 찾는다. 어디에 둔 거야? 찾지 않아도 되니, 사사로운 일에 신경질이 나지 않는다.
전보다 약해진 손톱을 보며 '약해진 손톱'이라고 검색한다. 읽다 보니, 별안간 손톱에 검은 줄이 눈에 띄길래 그런 경우도 있냐며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 한번 훑어만 본다.
영양부족, 건강문제, 스트레스, 잦은 물접촉과 화학물질. 이 역시 튼튼한 손톱에 비해 조금 달라진 상태라 호기심만 충족한다.
얼마 전 언니는 손톱이며 손에 피도 나고 갈라졌다며 "이거 봐봐" 벗겨진 피부를 보여줬다. "어쩌라고? 약 먹어"란 말이 툭 튀어나온다. "병원을 가라고"
(가족이란? 가족이란!)
살가움 따위 없는 말은 참. 다정하지 못하다.
다정해지자, 다정해지자.
어릴 적 엄마가 거칠거칠한 발 뒤꿈치를 제거하는 것이 신기했다. 지나간 흔적을 이해할리 없었다. 피부에 주름이 생기고 신체에 변화가 일어나고, 기억력이 약해지기도 하고. 요즘은 늙는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엄마를 보며,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엄마의 지나간 삶이란 것이. 앞으로 피어날 아이들의 삶이란 것이. 엄마라 불리는 내가 아이를 낳을지 안 낳을지도 모르는데, 손녀 손자에게 유쾌하고 유니크한 할머니가 되는 게 어떻겠나 생각한다. (유일무이하고 특별한)
아이들이 그래야 하듯 그랬으면 좋겠어서, 나도 그랬으면 하고 말이다.
우리는 외부작용에 의해 부정적인 면을 볼 수밖에 없다. 당장 뉴스만 보아도 그렇지 않나. 불합리하고 불안감을 느끼며 왜곡된 신념이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눈을 가린다.
사회적 기준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보편적인 삶이며 누가 더 월등한 지 서열화한다. 원하는 방향으로 성취를 했다면 만족한 삶일 것이다. 성취만 했다면 언젠가는 불만족을 느낄 수도 있겠다. (성취는 외적동기이고, 성장은 내적동기이다.)
인간존재 현상의 부정적인 측면을 바라보며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나 이상적인 면에 다가가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내면에 귀 기울일 것이다. 신체적 변화처럼 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정체성과 내적자아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한 노력 말이다.
명상을 하거나 기록하며 사유하고 책을 통해 혹은 강의를 통해 성찰하는 행위들.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꼭 심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적동기를 키워주는 것이다. 인생의 방향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내적동기는 성장의 방향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가치 있고 가슴 뛰게 하는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분명 좋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따라올 거라 믿지만 성취를 하지 못하더라도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성장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가치 있는 삶에 가까워질 거라 생각한다. 결국, 인간의 존재이유는 자아실현과 내면적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성장을 기반으로 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딸아이는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직 다행이라 여기는 것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숨김없이 말하는 것이다. 아이의 말을 통해 생각을 읽을 수 있고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해 대화할 수 있다. 성장한 딸아이를 엿볼 수 있다.
가끔 쉴 새 없이 말하는 통에 "어떻게 생각하기도 전에 말이 술술 나오냐고" 대단하다고 엄지를 치켜세우지만, 어떨 땐 귀를 닫고 싶을 때도 있다.
역설적으로, 삶이라 그렇다.
설거지를 하는데 옆에서 들리지도 않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반응을 해줘야 하는데 몇 번 반응을 해주다가 아이도 엄마가 진심으로 듣는지 아닌지를 안다. 때론 아이에게 부정적인 생각으로 부정적인 행동을 할 때도 있다.
완벽한 엄마가 아님을 인정하지만 생각하지 못한 그 이상을 보기 위해 육아 관련 강의를 찾아볼 때가 있다. 그것에 맞춰 모든 걸 바꿀 수는 없지만 생각의 전환을 돕는다.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