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by 초록글씨

고등학생 인지 대학생 인지 모르겠지만, 둥글게 둘러앉아 게임을 시작했다.

여기는 찜질방.

둘째는 그 모습이 흥미로웠는지 누나 형아들을 빼꼼히 쳐다봤다. 뭐가 재밌는지 한참을 눈여겨보았다.


첫째와 나는 계란과 사발면을 먹으며 "쟤는 뭘 그렇게 보니? 노는 게 재밌어 보이나?" 그런 이야기를 나눴고, 누워있던 신랑은 시끄러운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 무리들의 소리와 멀어질 자리를 탐색했다.

구경 다 한 둘째는 옆으로 오더니 "엄마 저 여자가 오래" "풋 저 누나가?" 여자여서 여자라고 말하는 둘째의 멋모르는 정직함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누나가 자기를 불러준 것이 흥미로운 아들과 찜질방 먹방에 심취해 게임을 하든 말든 라면 호로록 먹던 딸, 그 모든 것이 시끄럽고 피곤한 그가 왜 따로국밥 같은지.

우리는 같은 공간, 각자의 바운더리 안에 있는 것 마냥.




다음날은 첫째의 입학식이었다.

날이 풀리는가 싶더니 다시 차가운 바람, 눈이 펑펑 내려서 우산을 들고 걸어가는 길 질척한 눈길이 영 별로였다. 강당에서 입학식을 하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다시 교실로 가야 하는 아이들 우산을 씌워 주고 학부모는 다시 강당으로 향했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교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우산을 씌워 주러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교실과 강당이 멀어 꽤 불편하구나 생각했지만, 온통 하얀 운동장에 눈이 내리는 모습과 알록달록한 학교의 모습이 이뻤다. 그 와중에 손도 시리고.


신랑에게 입학식 풍경을 전해주었다.

교가를 틀어 주었다고 하자, 까마득한 느낌이 들었는지 "기억나?"라고 물었고 뒤에.. (벌써 초등학생이라니..) 우리는 같은 심정으로 그런 말을 내뱉었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고 싶지 않아"라고 했더니 그는 왜?라고 물어봤다.

여기까지 왔는데 시간을 돌려 다시 시작하다니 끔찍하다. 그 세월만큼 지나 온 지금이 좋다고 말하자, 초등학교 때 "재밌지 않았구나?" 물었다. 나는 초등학교로 다시 간다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시절의 추억을 말하는 그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내가 동시에 성립할 수 없는 시간 같았다.


그의 말을 듣고 그 시절을 떠올려보니 이상하기도 했다.

발표를 무서워하고 조용했던 내가, 서기도 하고 부반장도 했다. 반장과 회장은 적극적으로 임했던 아이가 했고, 도와주는 역할을 한 듯하다. 발표를 떨려했는데 합창부도 했다.

친구들과 선생님 집에 놀러 가서 그때 한참 유행하던 가수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던 기억도 난다.

내성적이었던 그 시절에 생각보다 활발한 활동을 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기억을 거슬러 보면 이끌어 주셨던 선생님이 계셨던 것 같다. 운이 좋았던 건지 그 시절 선생님을 잘 만났던 건지. 그래서 막연하게 장래희망이 선생님이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났고 딱히 싫어하는 친구도, 딱히 좋아했던 친구도 없이 맡은 바 잘하려고 노력했고 무난하게 중간에 서 있던 사람 같았다. 그러다 보니 그 시절은 그냥 잘 흘러갔다는 표현이 맞는 듯하다.

따지고 보면 즐겁지도 않았지만 힘들지도 않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커다란 세상을 학습하고 있는 딸은 지금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언젠가는 지난 시절이 될 그때의 시간에 대해 무어라 이야기할지, 나와 다른 딸의 시간이 궁금해진다.

소녀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니...(새삼)

이제는 울타리 속 세상이 안전했는지 조차 생경하다.


입학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11월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