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라면 귀신

by 초록글씨

우리 집에는 토마토 귀신이 산다.

딸이 발표시간에 좋아하는 과일에 대해 말하자, 아이들이 "너 정말 토마토 좋아해?" 물어봤다고 한다. 딸은 토마토 싫어하는 친구들이 많구나 생각했단다.

그는 짬뽕 귀신이다.

"아빠는 또 짬뽕 먹고 싶어?" 딸은 매운 짬뽕이 맛있다는 게 놀랍다. (착한 맛 떡볶이도 물에 헹궈먹는 마당에)

"엄마는 커피 없으면 안 되니깐 커피귀신해" 그렇게 해서 나는 커피 귀신이다.


아들은 딱히 잘 먹지 않는다.

배고픈 시간에 소량의 음식으로 배만 채우면 그만이다. 밥보다 군것질을 좋아하고, 과일을 잘 먹는다.

딸은 잘 먹지 않는 동생을 무슨 귀신으로 할지 생각하다가 과일 귀신으로 정했다. (이야기 만들기 좋아하는 딸은 동생도 귀신무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과일을 집어넣었다.)

그러고 보면 나와 아들은 귀신으로 불릴만한 음식이 없다.


대신, 나에게 죽기 전까지 절대 끊을 수 없는 먹거리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라면이다.




신랑은 일찍이 혼자 생활한 덕에 요리하는 게 어렵지 않다. 어려웠던 시절이 있어 먹는 것에 보상이라도 받듯 잘 먹으려고 한다. 그는 되도록 꼭 들어가는 재료가 들어가야 하고 풍성하게 요리하려고 다른 조리법을 찾아보고 일을 만들어할 때도 있다. 냄비며 그릇이며 주방에 한가득이다. 후다닥 빨리 해야 하는 성격이라, 중간중간 치우면서 하는 나와 달리 다 벌려놓고 한다. 뒤처리는 내가 하니,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당신이 치워" 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맛있는 거 해주면 맛있게 먹어준다. (아니 먹는다.)


나는 요리에 큰 취미가 없다. 결혼하기 전에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스파게티나 카레, 김치볶음밥 정도 먹고 싶을 때 만들어 먹었다. 결혼하면서 레시피 찾아가며 음식 만들었고, 훌륭하지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괜찮다 정도로 해왔다.

내게 요리는 어렵지 않지만 손이 많이 가고 귀찮은 행위, 먹고살기 위해 하는 것 정도다.

혼자 보내는 시간은 간단히 먹는다.

치우는 것조차 일이라 샐러드나 전날 해놓았던 찌개에 밥, 라면 또는 냉동고 어딘가에 있는 빵 정도로 배만 채우고 다른 할 일을 하는 게 좋다.

그러니 요리하나 두고도, 그와 나는 한참 다르다.

그럼에도 영양가 있게 해 먹는 음식이 여러모로 좋기에 요리하는 것에 애정을 갖으려고 한다.

좋은 쪽으로 따라가려고 한다.




출출한 신랑이 라면 먹을 건데, 먹을 거야? 물어본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한 젓가락만 먹을게 한다. 그는 "또 시작이네?" 한 봉지 더 뜯는다. 한 젓가락만 먹는다고 해놓고 손을 대니 이젠 속지 않는다.


살 뺀다고 한 젓가락만 먹는다고 말하는 나나, 매일 몸무게 재는 나에게 살 언제 빼는데 하면서도 그냥 먹어하는 그나. 웃기다.


그는 라면이라도 그냥 먹는 법이 거의 없다.

냉장고에 있는 부수적인 것들을 추가한다. 그날 어묵이 있으면 어묵을 넣고, 버섯이 있으면 버섯을 넣고, 여러 가지 재료를 넣거나. 그러다 보니 물양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싱거워지거나 라면 그대로의 맛이 덜 날 때가 있다.

(아니. 왜 간단하게 먹는 간단식을 복잡하게 만들까.)

라면은 봉지 조리법 그대로 따라 하는 게 제일 맛있다고 생각한다. 곁들인다면 계란 탁, 파, 청양고추 정도.

가끔 김치나 만두를 넣어서 먹을 때도 있긴 하지만.


요리를 잘하는 그가 끓이는 라면은 성에 안 찰 때가 있어 "당신은 다른 음식은 맛있게 하면서 라면은 맛없게 끓이더라" 말해놓고 민망하게 웃다가 또 같이 호로록 먹는다.

(정작 그렇게 해달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거야. 그런 거다.)

마찬가지로 그도 내가 성에 안 찰 때가 있으려니 한다. 사소한 것이지만 그런 것들이 쌓여 그가 그런 사람이 되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된다.

(그에게나 나에게나)

그런 날은 평평하던 줄이 누구 하나 놓아버리면 팽하고 바닥으로 내팽개칠 것 같은 흐린 날이다.

그러다, 가엾다는 얼굴로 바라본다.


우리는 평생 끊지 못하는 라면을 호로록한다.

또다시 흐린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