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라 아이들 행사가 많다.
하늘이 높고 바라보기 좋은 만큼 함께 어울려 움직이기 좋은 계절이라 그런가 보다. 학부모 참여수업이며 운동회가 있었다. 엄마 아빠에게 참여하게끔 하는 진행 외에도 엄마가 춤을 추면 점수를 더 주겠다든지, 아빠가 춤을 추면 선물을 준다든지 하는 것이 꼭 있다.
'왜' 시키는지 모르겠다.
못 추어도 웃기고 잘 추어도 뭣 하고 (잘 추지도 못하지만, 둘 다 웃기다는 생각이 있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몇몇 학부모가 나와서 용기를 내는 것이 사뭇 대단해 보이기도 하다. 딸은 "엄마는 왜 나가서 춤 안 춰?"라고 말한다.
나는 "부끄러워, 집에서 너랑 출게" 말한다. 딸이 엄마는 나보다 부끄러운 게 더 중요해라고 하는 눈빛을 보낸다.
응? 응... 어쩌지라고 말하기도 뭣 하다.
다음에도 박수만 쳐야 하나 갈등하는 내가 있다.
벌써, 생각만 앞서고 만다.
- 여섯 살 사내아이가 취향이 있다는 게 웃기다. 모자 달린 옷이 좋다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터벅터벅 걷는다. 아침부터 그 후드티를 찾는다.
아이는 누나 신발 보러 간 건데, 자기가 마음에 드는 신발을 신어 본다. 어두운 색이거나 어두운 색에 화려한 색이 섞여 있어야 한다. 멋지다는 생각이 들면 "이 운동화가 마음에 들어, 나 이거 할래!" 그대로 신고 문밖을 나가려고 한다.
오늘은 너 운동화 사주려고 온 거 아닌데? 설득하다가 설득되지 않는 통에 덤으로 사줄 때도 있다. 대신 한 달 동안 사고 싶은 거 못 산다고 다짐받으면, 당장 운동화를 사야 하니 아이는 끄덕인다.
아무 소용없는 약속과 다짐이란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할 때가 있다. 그런 적이 한두 번이었냔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속아 넘어가고 속아 넘어주고 두리뭉실하게 눈감아 주는 일들.
아이와 함께하다 보면 교육적인 프로그램에서 강조하는 일관성의 중요성, 원리원칙대로 되지 않고 허물어지거나 흐물거리는 나를 볼 때가 있다.
신었는데 이쁘니깐, 그걸 신고 좋아하는 모습이 좋아서.
자기 것 알아서 챙긴다는데 의도대로 의도 없이 선뜻 내준다. 그러면 일관성이 없다 해도 제법 (이미 엄마이지만) 엄마가 된 기분에 빠진다.
제법이라는 말에 무게가 실린다.
착각일지라 할지라도.
- 아들은 "엄마 좋아, 엄마 좋아" "엄마 사랑해 사랑해" (너무 좋으면, 꼭 두 번씩 말한다.) 느닷없이 볼에 입에 뽀뽀를 한다.
청포도를 물고 손과 입은 끈적끈적, 젤리와 과자 청포도가 뒤섞여 단내가 풀풀 난다.
가끔 생각한다.
이 아이가 말하는 사랑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고.
마침, 출출했는데 엄마가 먹고 싶었던 과일을 줬어.
배가 고팠는데 엄마가 밥을 줬어, 오늘은 너무 맛있어서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
엄마 아빠가 아니면 누가 맛있는 걸 줄까?
엄마 아빠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생존의 문제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걸.
욕구가 충족이 되니 그런 걸 해주는 엄마가 너무도 좋아. 사랑스러워하고 말이다.
있는 그대로, 사랑해라고 말하는 아이의 여린 등.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사랑이 순수하다.
참.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단어다.(사랑은)
그리고,
엄마 등뒤에 찰싹 붙어 집게핀을 뺀다.
"엄마 이거 하면 안 이뻐"하고. 집에 있으면 화장할 일이 없고 머리를 질끈 묶고 있으니, 외출할 때 엄마와 집에 있을 때 엄마를 구분하는 방식인지. 등뒤로 안아야 하는데 집게핀이 불편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엄마도 이제 밥 좀 먹겠다는데, 들러붙는 아들이 성가시다. 몇 번을 등 위로 올라타는 아들을 밀쳐내고 "밥 먹을 때 그러지 말라고 했지" 화를 내면 "엄마 미워" 하고 또 쿨하게 자기 할 일 하러 간다.
조금, 미안한 마음에 "엄마가 널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야, 사랑한다고 그렇게 아무 때나 껴안고 하면 엄마는 밥을 못 먹어"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거야. 알았지?"
아마도? 혼자 그렇게 마무리 짓고 나면 먹는 게 뭐 그리 중요한가 싶다.
그런데, 아 진짜 밥 좀 먹겠다는데!
아들과 내가 다를 게 뭐야 생각한다.
사랑보다 욕구 충족이 먼저인 것을.
나만 그런 거 아니겠지.
가볍게 넘기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