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해지길 바란다.

by 초록글씨

잠자리에 누워 잠들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말하고는, 나는 영원히 깨지 않는 상상을 한다. 아니 영원히 잠들고 싶다. 내일은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이건 우울하다, 죽고 싶다가 아니라 그냥 본능적인 생각이다. 아침이 되면 알람을 듣고 일어나 똑같은 패턴의 행동을 한다. 영혼 없는 움직임. 아이들 등원 준비에 필요한 옷을 챙기고 늦지 않게 하기 위해 재촉하고, 피곤한 날은 여유 있는 알람시간 보다 오분? 십분? 자다가 겨우 일어나기도 하지만.

같은 시간은 매일 다른 날이다.

밤이 되면 아이들이 잠든 모습을 보며 사랑스럽다고 느낀다. 검은 속눈썹이 한없이 길게 뻗은 모습을 보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고요하게 자리 잡은 시간을 느끼고자 평소보다 늦게 자는 날도 있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잠이 오는지 모르게 잠들 때도 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타협하지 않은 내가 보인다.

어느 날은 이럴 때다. 좀처럼 제 맘대로 되지 않는 딸아이가 난리를 피운다.

"하지 마, 안 하면 너만 손해지" 하면 공이 튕겨 나가듯 딸은 "어, 그렇게 할게" 한다.

그러길래 "너 인생이지, 너 알아서 해" 으름장을 놓고는 번뜩 그렇게 말하는 게 지금 맞는 거야 되묻는 나를 본다.

너무도 시니컬한 태도.

내가 왜 짜증이 나는지 몰라 짜증이 나 있는 아이에게 나랑 상관없으니 알아서 해라니. 그러면 나는 엄마 자격이 있나? 그런 생각이 든다.

이것은 단편적인 예다.


하루하루, 좋은 날이 있다 해도 지나고 보면 깔끔하게 떨어지는 모양새가 아니다. 그런 것들이 끝도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영원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삶이 기대만큼 충족되면 좋으련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렇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게 된다. 퍼석하고 뻑뻑해서 삼키지 못하는 것이다.

애정을 쏟는 것이 필요하겠다.

선물을 받거나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새싹을 심어 가져오면 며칠은 열심히 돌보았다.

어릴 적 아빠는 항상 작은 정원을 만들어 관리했기 때문에 그렇게 물을 주고 새싹이 돋아 나는 것들을 보면 어떠한 심정인지 궁금했고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매번 끝은 시들어 버린 식물을 보는 것.

며칠 관심을 보이다가 돌보지 않는 나를 보며, 애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좋아해서 쏟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본능적으로 그 마음은 노력한다고 얻어질 수 없다는 걸 안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을 보는 것이 좋은 사람이구나 하고. 그리고, 그렇게 식물을 키우고 돌보는 사람들이 신기할 뿐이다.


아이를 돌보며 많은 치유를 했다는 생각이 있다.

전에 없던 형태의 삶을 살아본다는 것.

그 안에서 지나간 나를 본다는 것.

희생은 해 볼 가치가 있다는 것.

오히려 몰랐던 나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

아이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나도 돌봐줘야 한다는 것.

'나를 사랑한다는 게 뭔가'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그런 것들에 목말라하고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허함은 늘 따라다녔다.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이 모든 것은 삶에 있어 필요하고 좋은 것이다.

문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내가 기꺼이 뛰어들 자신도 없으면서 완벽한 상황만을 바라는 것이 허울처럼 느껴졌다는 것.

나는 없고, 사람만이 상황만이 나를 충족해 준다는 생각이 문제였다는 거다.

인생의 흐름 중 그럴 시기가 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이를 낳고 변화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이를 낳아 애정을 쏟고 변화된 나를 느낀다.

어느 날은 나의 시간이 필요해 아이와 떨어져 나만의 시간을 찾으러 나가기도 하지만 다시 제자리.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

힘듦은 당연한 것이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그 사랑으로 나를 돌보는 것이 안정된 삶이란 것을 안다.



사랑은 좋은 것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행위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가끔은 달콤한 디저트가 커피의 맛과 기분을 좋게 한다.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랑을 주는 것도,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나를 돌보는 것이다. 내치지 않는 것이다.

같은 아침을 맞이하더라도 (다른 날이 되겠지만) 지금 숨 쉬는 이 공간이 싫다면 그 공간을 벗어나 내 의지로 걸어서 다른 공간으로 가는 것이 좋다. 나는 그랬다. 가까운 곳을 산책했다.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느껴봐야 하지 않을까.

당연하지만, 당연하게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나의 관찰자다.

이 모든 것은 아이를 낳아야 삶이 달라진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