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분리된 또 다른 나와 연결된 생명체를 보며 가끔 초현실적인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제는, 엄마라고 부르던 이름이 낯설지 않던 순간이 언제였지? 그런 기분도 점점 흐릿해져 사라졌다.
현실 속 구름과 하늘은 경계가 파랗고 선명하다.
전날 비가 와서 운동회가 취소되나 싶었지만 날이 좋아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잘 뛰는 아이 몇 명이 계주 대표로 나간다고 기대를 잔뜩 하던 딸은 결국 뽑히지 못하고, 반별로 뛰는 아이 중에도 일등을 하지 못했다.
속상했을 딸은 멀리서 나를 보며 잠시 손을 흔들었다.
예전에 나는 어땠지?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듯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함께 하지 못했지만, 초등학생이 된 아들이 뛰는 모습도 상상해 본다. 아이들은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정작 나는 아이들을 통해 지나간 시간을 반추한다.
처음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분명 자리 잡고 있던 태아가 두 번째 검진하러 간 날 사라졌다. 기쁨도 잠시, 내 안에 생명이 꿈틀거리기도 전에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생각하다가 체념하고 돌아섰다. 얼떨결에, 오는지 모르게 왔다가 또 그렇게 가버리니 더 애틋해졌다.
갈색 멧돼지가 마당 구석구석을 휩쓸고 뛰어다녔다. 새끼 멧돼지는 기운이 넘치고 통제할 수 없이 방방 거리다가 내 손을 콱 물었다.
하필 왜 물어?
꿈을 잘 꾸지 않던 나는 혹시 태몽일까 기대했고, 느낌이 이상했다. 기다리던 첫아이가 온 순간 뜨거운 감정이 밀려왔다. 그 꿈이 '너였구나' 생각했다. 동시에 잘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과 불안감이 엄습했다.
임신 초기 피가 보여 예민해지기도 하고, 안정될 수 있게 움직이지 말고 누워 있어야 한다고 해서 침대에 누워 딱 붙어있으라고 소망했다. 그렇게 태명은 어디 가지 말고 단단하게 붙어있으라고 딴딴이로 정했다.
임신 초기를 지나 안정기에 들어섰을 때도, 좋아하던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초코파이며 초콜릿이 너무 먹고 싶은 날에도 유난이다 싶을 정도로 참았다. 카페인 섭취가 자궁 혈관을 수축시켜 배통증이 심해지면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출산 두 달 전, 조심스레 한 모금씩 먹다가 안심이 된 나는 그동안 참았던 것들에 보상이라도 받듯 휘핑 가득 올린 카페모카를 마셨다.
정말이지. 내 노력은 소용없나 싶을 정도로 몇 번의 배뭉침, 배통증이 찾아왔다.
산부인과 가는 길에 정차되어 있던 차를 누가 뒤에서 박질 안나. 경미한 정도라 다치지 않았고, 초음파로 본 아이도 잘 지내고 있었지만 그날은 하루 종일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게 무난했던 둘째와 달리 첫째는 임신부터 불안정했다.
이제 좀 쉬려나 했지만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지 않아 일찍 데리러 갔고, 7살이 되어가는데도 한참 등원 거부를 한 탓에 도대체 왜 그럴까 "나 힘들게 하려고 태어났니?"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힘 좋던 새끼 멧돼지가 내 손을 콱 문 게 생각났다. 괜히, 못난 마음이 앞서갔다.
내 맘처럼 되지 않아 화도 많이 냈다. 서툴렀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안심이 되지 않아 내 힘으로 조금 더 돌봐주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딸과 나에게 독이 되었다. 잘해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있다. 어쩌면 내 욕심일 수 있겠구나 그랬다.
딴딴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매일 말을 걸어주고 책을 읽어주고 편지를 쓰던 다정한 엄마는 없었다가 있었다가 했다. 평정심, 일관된 육아를 할 수 있긴 한 거야 의구심이 들었다. 조절되지 않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수시로 올라왔지만 불쾌한 감정들을 애써 눌렀다.
우는 아이 돌봐줘야 하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밤에 깨어나 잠 못 자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지 했다.
아이를 품에 안고 같이 잠들면 행복하고 따뜻했다.
투정 어린 마음도 사라졌다.
비록 잠시잠깐이고 다시 우는 아이 달래줘야 하지만. 오락가락한 마음도 잊고, 많이 안아주고 많이 사랑해 줘야지 했다.
아이와 한 몸이던 그땐, 아직 준비되지 못한 채 육안으로만 확인된 임산부였다. 아이가 태어나자 엄마가 되기 위한 연습을 했다. 첫째에게 이미 완성된 엄마는 없었다.
딴딴이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 나를 힘겹게 쳐다보다가 힘없이 눈을 감았다. 고통 끝에 마주한 신기한 생명이 알 수 없던 눈빛을 보내던 순간은 가슴에 남았다.
처음 나에게 찾아온 감정과는 또 다른 뜨거움이었다.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연령별 육아와 놀이에 신경 쓰던 첫째는 온갖 정성을 기울여 키웠다.
달리, 둘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무 생각 없이 칠렐레 팔렐레 할 것 같던 둘째는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들에게 최고 인기남이다. 의젓하게 아이들을 통솔해서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선생님께 전해 들어 놀라기도 했다. 맨날 어리광만 피우는지 알았더니만 언제 이렇게 컸나 울컥했다. 여섯 살 아들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거니 집에서는 많이 안아주라고 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하네, 뼈 있는 말을 할 때가 있어 다 보고 듣고 있구나 움찔하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과 달리 아이들은 잘 크고 있구나.
벌써 각자의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보며 자신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구나, 한계에 갇히지 말고 나아가길 바라본다.
그랬으면 좋겠다.
너 나 우리는 든든한 뿌리를 내리고 내딛는 나무처럼 깊숙이 뻗어 이어져 있으면 좋겠다.
그 힘으로 잎도 피우고 꽃도 피자.
무너지지 않는 근간을 심어주고 싶다.
그리고?
그리고,
그 후 난 자유로울 테다. 꼭.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