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걸어가는 길 아기띠 한 엄마와 아이를 보았다.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러 나왔는지, 딸아이와 내가 스쳐 지나갔다.
그 앞은 어린이병원이라 아픈 아이들이 입원할 수 있는 병동이 있다. 고열이 떨어지지 않아 잘 보이지 않던 혈관을 찾아 바늘을 찌르고 붕대를 감고 있던 딸이 안쓰러웠는데, 이제는 자기 목소리를 내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언제 지나가나 하던 시절도 금방이고, 라라랜드의 오프닝처럼 아침은 다시 돌아오고 새로운 태양은 떠오르니까 삶을 사는 건지.
그럴 때가 있다.
- 모두 내 마음 같지 않다.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사이는 각자 다른 차이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하는 거라고. 그렇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며느리인 나도,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어렵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아침이다.
따뜻한 커피를 마실까 하다가 아무래도 지금 내 속은 '아아'로 속을 달래야 할 것 같다. 반가운 바람이 좋으면서도 목에 뭐가 걸린 듯 답답하고 가슴은 뿌연 연기로 가득해 빠져나올 구석을 못 찾고 있다. 지나가던 마음도 붙잡던 마음도 갈피를 못 잡고 어영부영 지나갔는데, 달력 한 장 넘기면 피할 수 없는 추석이 코앞이다.
시어머니와 관계가 틀어지고 그날 이후 그도 그렇고, 그것에 대해 어떠한 의논도 하지 않았다. 아마 서로 미안하기도 하고,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쿨한 부분이 있고, 본인의 삶이 더 중요한 분이라 생각해 보면 며느리인 나는 편한 부분도 있다. 객관적으로 그렇다. 반면 엄마는 여자로서의 삶, 희생을 강요받으며 자라오기도 했고, 사위를 아들처럼 챙긴다. 엄마는 시어머니 앞에서 자신의 아들도 아니면서 그렇게 칭찬을 한다. 그런 걸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엄마의 과도함이 불편하고, 불만이다.
시어머니는 (나에 대해 진심으로 하실 말씀이 없는 건지, 내색하기 싫으신 건지 모르겠지만.) 한마디 하실 만도 한데 넘겨 버리고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며 맞장구를 치신다. 엄마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나를 위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수십 년 그렇게 살아온 엄마를 무슨 수로 바꾸나?(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그게 바로 엄마야) 나는 그냥 입을 닫는다. 속에서 화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만약, 달리 생각해 엄마가 시어머니였다면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앞세워 집에 수시로 찾아오고 엄마만 좋은 참견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객관적으로 그렇다. 모든 건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다.
시어머니를 뵙고 오는 날이면, 찝찝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심드렁한 채 어머니에 대해 곱씹는다.
그래도 겉으로는 싫은 소리 안 하시지만,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런 말을 매번 하신다.
"우리 애들은 어릴 때 순하고 말도 잘 들었는데 누구 닮아 그런 거야?" 웃으면서 농담인 양 아닌냥 말씀하신다.
바꿔 말하면. (그 누구는 나인 거고, 아이들은 순하고 말 잘 들어야 하는데 이 손주들은 왜 그렇지가 않니?)가 된다. 처음에 그러려니 했고 웃어넘겼다.
일 년에 몇 번 뵙지도 않는데 뭘.
어느 순간, 진짜 뭐지?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면. (나를 보면 할 말이 없으신가?) 나쁜 쪽으로 생각하자면. (태생부터 날 닮아 말을 안 듣는다구요? 더군다나 내가 알고 있는 장난꾸러기 아들은 안 그랬을 텐데요? 이것이 팩트다. 아이를 키운 지 한참 지나서 잊으신 건지 잊고 싶으신 건지. 네가 교육을 제대로 못 시켜서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으신 건지. 같은 여자로서 아이 키우는 게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부분이 아닌 걸 아실 텐데 전적으로 나에게 책임 전가하고 하자 있는 며느리로 만들고 싶으신 건지. 매번 그런 말을 하시는 저의가 뭔지.)
죄송하게도 나쁜 쪽이 더 많다.
어머니가 생각하는 나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날 이후 부정적인 생각이 많으실 거다.
받아들여야겠지..
며느리로 시작하는 시작점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걸 알고 선택한 결혼이었다. 당연하게도, 살다 보니 더 피부로 와닿는 걸 깨닫고 있다. 둘만 잘 산다고 될 문제는 더더욱 아니고 결혼 전 효자가 아니었던 사람도 효자가 된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그렇다.
선택에 대해 후회를 하지 않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맞지 않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은 해봤다.
혼자 보다는 둘이 좋고, 엄마가 된 삶에 감사함을 느낀다. 아직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나는 어떤 민낯으로 시어머니를 봬야 할까?
고민하고 있다.
- 팔자와 운명을 믿는 편이다.
지금까지의 삶도, 운명적으로 정해진 답안지가 있었다면 나는 여기까지 왔을까? 오지 않았을까? 그 답안지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이라고 되어 있었다면, 그 길로 갔을까? 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운명이 드러내 보여주기까지 끊임없이 추측할 수밖에 없고 맞는지 확인할 수도 없다. 그 선택이 실패할지라도 지상에서 발 딛고 사는 우리는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
정해진 운명에 저항할지라도.
가족 같은 회사, 가족이 된 며느리에게 딸처럼 생각한다는 말. 이해할 수 없는 말 중 하나다. 애초부터 가족이 아닌데 가족이길 바라는 마음은 욕심이고, 그 관계는 거기서부터 어긋난다. 적당한 거리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시어머니와 나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고 생각했다.
그날은 결혼 전부터 매듭지지 못했던 일에 관한 것이었고, 그는 화가 났고 시어머니도 먼저 보지 말자고 언성을 높였다. 나에게도 심한 말을 하였기 때문에 마무리하지 못한 채 집을 나왔다. 나도 화가 난 지라 "어머님이 먼저 보지 말자 했어, 난 앞으로 어머님 뵙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지만 며칠이 지나니 앞으로 이 사태를 어떡해야 하나 막막했다.
어느 날 아들이 나를 쳐다보며 "엄마, 근데 할머니랑 왜 싸운 거야?" 물어보는데 말문이 막혔다.
엄마로서의 나는 또 이건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고, 말똥말똥한 아들의 눈과 말은 결정적으로 나를 움직이게 했다. 납득이 되지 않으면 잘 움직이지 않는 나인데, 억지로라도 이해를 해봐야 하나. 마찬가지로 어머니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시겠지 등등 온갖 생각을 하다가 넘겼다.
저녁을 먹고 쉬는데, 그에게 슬쩍 추석에 어머님한테 가봐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내심, 그렇게 물어봐주길 바랐던 듯싶다. "혼자 가보던지 할게" 하길래, 아이들도 데리고 가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해놓고 정작 나는 속으로 (앞으로 어떡해야 하지.. 할까?) 그랬다. 속없이 웃으면서 아무 일 없던 일처럼 봬야 할까, 그 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산을 넘어야 하나 뇌가 정지된 상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는 어렵다. 어차피 며느리인 나는 을이다. 이번 추석에는 나의 의지라도 보여주고 싶다. 그를 통해 어머니의 생각과 그의 생각을 듣는 것이 좋겠다. 다음번에, 나의 생각을 어떻게 이쁘게 다듬어서 뵐까 고민해야겠다.
내일은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정해진 운명은 찾아올 테니. 끊임없이 추측하고 결정을 내릴 수밖에. 그리고,
명절이 싫다.
힝.
응?
결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