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 일은 벌어진다.
햇살은 따뜻했고 찬란한 순간을 담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 사월은 흩날리는 꽃잎을 보러 나간다. 멀리 가지 않아도 가까운 동네를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내아이는 킥보드를 챙겼다.
이제 막 새로운 세상이 열린 듯 사람들 보다 앞서 나아간다.
다섯 살 꼬마는 팔에 힘을 주면 남자 어른을 능가하는 힘이 생겨났고, 자동차로 변신하는 로봇은 자유 의지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대상이 됐다. 자신보다 큰 누나가 가지고 놀던 물건이 탐나면 힘으로 뺏어도 보지만, 어림없지. 누나에게 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언제나 방패막이가 되어 주는 건 엄마다.
자신이 보호를 받는 동시에 지켜줘야 하는 사람도 엄마라 남자아이라도 허세본능은 작동한다.
그날도 그랬다.
"엄마, 커서 이 옷도 사줄게! 저 목걸이도 사줄게!" 하던 녀석은 보호를 받지 않아도 혼자 앞장서서 그곳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한동안 그랬다.
누나 보다 먼저 앞서 간다거나 가는 길을 방해받고 싶지 않거나. 그래서 그런 건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몇 번을 혼내도 그때뿐이고 (그러니깐 아이이고, 계속 알려줘야겠지만.)
앞으로 많이 갔다 싶으면 멈춰서 기다리게 하고 딸이 뛰어갔다가 내가 뛰어가서 제지시켰지만, 그래도 안 되겠는지 그때부터 초록색 킥보드는 멈추지 않았다. 멀어져도 한참 멀어졌다.
딸을 붙잡고 뛰기 시작했다.
한 번씩 뒤돌아 보던 아들은 그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듯 더 신나게 나아갔다. 뛰어가면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녀석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든 말든,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평일이고,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가다가 엄마가 안 보이면 서 있겠지.
설마.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주차장이 보이니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옆으로 오르막 길도 보이고.
그때부터 큰일 났다 싶었다.
차에 치이면. 오르막 길로 올라가 다른 길에서 헤매고 있으면. 별의별 생각에 눈앞이 뿌예졌다.
연인이 손을 잡고 지나가고, 부부가 대화를 하고 지나가고, 아들과 엇비슷한 또래가 엄마와 산책을 하고.
그들과 달리 멈춰진 시간에 놓인 사람 같았다.
오히려, 잠시 멍해졌다.
나사 빠진 듯이, 어떡해만 할 것이 아니었다.
112 버튼을 눌렀다.
버튼을 누르는 와중에도 알면서도 잠시 당황했다. 이런 일을 겪어보니 그렇게 되더라. 경찰 얼굴을 보자 안심이 되는 동시에 안심이 되지 않았다. 아이가 입은 옷을 물어보는 순간, 바로 입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어떡해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속으로 되뇌면서도 믿기지 않았고,
(제발, 얼굴 좀 비춰줘! 제발.)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킥보드 타고 가는 아이를 봤냐고 물어보는데, 아주머니가 손으로 가리키면서 그쪽으로 쭉 내려갔다고 했다.
그분의 말이 맞다면 일단 주차장 쪽으로 방향을 꺾지 않고 가던 방향으로 직진했겠다 싶어 계속 앞으로 가보기로 했다. 나와 함께 가던 경찰은 다른 경찰에게 인상착의와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삼십여분 지났을까? (생각보다, 빨리 발견한 터라)
허망한 듯 하늘을 보고 서 있는 아들이 보였다.
이 녀석.
울지도 않고, '이제 나타난 거야? 기다리고 있었어'라고 말하는 듯한 저 얼굴.
뭐지?
당황하지도 않고, 멋쩍게 나를 보며.
언제부터 서서 기다렸을까.. 생각하니 거기 잘 있어줘서 고맙다는 생각만 들었다. 보자마자 와락 안고 펑펑 울었다. 그렇게 혼자 가면 어떡하냐고 화를 내면서도, 놀랐을 그 아이가 거기 있어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 생각뿐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상관없었다.
이놈은 어떤 얼굴로 가만히 안겨있는지 몰라도 조용한 온기가 가득했다.
마치, 우리는.
("끝도 없이 달려온 기분이 어때?"
"모르겠어. 엄마가 보이지 않았어, 기다리면 오겠지 생각했어") 대화하는 것 같았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다행이야, 토닥토닥 등을 매만졌다.
가끔 아들은 "엄마 저번에 나 없어져서 울었잖아" 말하면서 멋쩍게 웃는다. "그때 잘 가다가 왜 멈출 생각 했어?" 물어보니, 갑자기 무서웠다고 한다. 하늘은 왜 멍하니 보고 있었을까?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만약 지금 여섯 살이 된 아들을 볼 수 없었다면, 평생 죄인이 되어 심장에 새겨져 있었겠지. 주홍글씨처럼. 밤마다 사랑이 둥둥 떠다닌다. 내 옆에서 자야 하는 아이들 사이로 자리를 잡는다. 짓궂은 아들은 잠들기 직전까지도 엄마를 독차지하기 위해 누나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누나는 잠을 자지 않겠다고 소리 지르고 동생을 때린다.
잠시, 실체가 없는 것이 왔다가 사라진다.
달콤했던 모양은 변질된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화를 내고 있는 건지.
눈 깜짝할 사이 일은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