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건

글을 쓴다는 것.

by 초록글씨

학교 끝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허리 밑으로 내려다보던 아이는 어디로 가고, 함께 쓰던 우산으로는 비를 피하기 힘들다. 우리는 각자 우산을 썼다.

알록달록 무지개 우산을 쓴 딸은 "비 맞을까?" 한쪽 어깨를 내밀었다. 딸을 제지하며, 벌써 그 시절이 그리워? 물었다. 엄마도, 하늘색 우비와 장화를 신고 톰보이 같았던 계집애가 그립다. (아이나 어른이나)

걸어가는 길 아스팔트 바닥으로 빗물이 철철 흘렀다. 비가 우리를 따라왔는지 집에 다다를 때즘 비는 잦아들었지만. 이상한 날씨의 연속이다. 해가 반짝한다고 우산 없이 나갔다가 퍼붓는 비에 당황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발에 묻은 빗물을 닦아내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내 발은 선명한 흔적이 남아있다. 여름 내내 신었던 쪼리는 고왔던 모래, 끈적이던 땀방울이 흘러내리던 몸을 기어이 기억해 냈다.

좋아하는 가을이 사라질 때쯤 경계가 진 자국도 희미해지겠지. 눈 내리는 어느 날 흐릿해진 여름을 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하듯. 놓았던 기억은 선명해졌다가 흐릿해지기도, 흐릿해졌다가 선명해기도 한다.

출출한 아이의 간식을 챙기고, 주방 찬장에 손을 넣어 티백을 꺼냈다. 가끔 마시던 보이차를 꺼내다가 무민이 그려진 사탕봉지를 발견했다. 이런, 3개월이나 지났다. 사탕이라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나 뜯어 냄새를 맡았다. 상쾌한 박하향이 나쁘지 않다. 입으로 가져가니 안에 초콜릿과 섞여 흐물거리고 끈적한 질감이 느껴졌다. 반이나 남았지만 먹지 못하니 버렸다.

어제가 어제였는지 모르게 시간은 잘도 간다.

어제 뭐 했지? 그제는? 그런 걸 보면 말이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아이들에게 묻고, 그에게 묻고, 아니면 내가 먹고 싶거나 냉장고를 열며 여름 불 앞에 서 있기 버거우면 배달을 시킬까 고민한다.

먹는 거 조차 고민이며 선택이다.

늘 반복되는 하루다.

얼마 지나 저녁시간이 다가왔다.

변덕스러운 비는 잠깐 멈췄지만 밤에도 내릴지 모른다. 아침 아이들 등원길엔 해가 뜨길 바란다. 무거운 가방이며 우산이며 비조차 버거울 테니.

새로운 달력을 산 지 얼마나 됐다고 9월에 서 있다.

아마 두꺼운 옷을 꺼내어 정리할 시간도 금방 찾아오겠지. 흰 눈이 내리다가 (처연하게 떨어지는 눈을 보게 될는지) 벚꽃이 흩날린다. 어김없이 개와 늑대의 시간은 (단순히 시간대를 넘어, 상징적 의미로) 찾아온다.

잠시 멈춰 바라본다.

사색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할 것 같다.

다시 새벽은 찾아온다.


글을 쓴다는 것.


마찬가지로. 쉼, 일상을 살아내는 것과 같다.

삶을 살아가는데 호흡이 필요하다. 멈춤과 이완, 복잡한 머리는 아까운 사탕을 버리 듯 미련을 버리고 정리한다. 또다시 샘솟는 생각과 마음들은 붙잡아 가둬두기도 한다. 소중한 것을 지켜내려는 의지이며, 정도 (올바른 길. 또는 정당한 도리)이다. 희미해진 마음을 붙잡아 차곡차곡 쌓고, 붉은 심장이 선명해짐을 보는 것이다.

자유로운 나로, 빛나는 나로 숨 쉴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쓴다.

쓰기로 했다.

글을 쓴다는 건.


청개구리 같은 심보에도 중심을 잘 잡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멀리 갔을지언정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다잡는다. 학교를 왜 다녀야 할까? 무기력한 시절이 있었다. 항상 상위권 성적이던 나는 중학교 3학년때부터 공부를 하지 않았다. 공부는 내게 새롭지 않았고, 온통 다른 생각이 그득했던 것 같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공부만큼 새로운 게 어디 있으며 그때 그렇게 열심히 해본 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깨달았지만, 너무 늦게 깨달은 탓은 고스란히 나의 몫이다.

다행인지 아닌지 그때 내게 새로운 세상은 영화였다. 영화 포스터를 방안에 붙이고 그런 걸 좋아하는 내게 친구들이 영화 관련 선물을 주기도 했다. 내 세계가 되어준 영화가 있어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가는 게 즐거워지기도 했으니. 산 같았던 아빠는 너무 무서웠고 공부에 대한 열망도 없었으니 그 세계가 없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답답했던 그 시절은 영화가 있어 탈출구가 되었다.

지금 내게 글쓰기는 그 시절 영화 같은 것이다.

아이를 낳고 가끔 내가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어 흔들릴 때면 보는 것, 느끼는 것에 대해 기록했다. 그때 나에 대해 진지하게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감사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이기도 하지만, 나로서 흥미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내가 가진 감각을 잃지 않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글을 쓰고, 생각을 듣고, 보고, 느끼고, 영감을 받고, 담는 것이 중요하다.

글을 쓰고 나면, 어떤 글은 계속 생각나고 마음이 아프다. 반성이자 죄책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놓아주고 싶지 않다. 점점 머리는 차가워지는데, 심장도 차가워지는 것 같다. 단단한 돌덩어리가 앉아 있는 기분이다.

나는 심장이 뜨거워 지길 바란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끼고 채우고 어루만지고 싶다.

그래서 가짜일 수 없다.

가짜라면 내가 나를 보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러기로 했다.

진짜가 되기 위해 '진짜'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재미로 끄적이던 글이 요즘 들어 조금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쓸수록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헐렁하게 쓰던 문장을 여러 번 들여다보게 된다. 연습이 된다고 생각하면 좋은 일이지만 가벼웠던 마음이 진지하게 바뀌니 버겁기도 한 건 사실이다.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약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도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마치, 아이에게 정성을 쏟다가 힘에 겨워 포기하고 싶지만 놓아 버릴 수 없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점점 욕심도 생긴다.

이것은 애정? 아니면 애증?

부디 놓지 않길. 지치지 않길 바란다.


돌덩어리 심장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