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버트는 말한다.
지루한 날들이 계속되는 곳. 지금까지 변화라곤 전혀 없었고, 변할 기미조차 없는 곳이라고.
그가 사는 엔도라는 마치 길버트의 삶과 같다.
램슨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길버트에게 일탈은 카버부인이 사는 집으로 배달을 가는 것이다. 카버부인이 길버트를 선택한 이유는 자신을 떠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거 같아서다. 또한 남편의 죽음 이후 그녀를 의심하는 마을 사람들과 더 이상 그 집에서 살 수 없는 그녀가 가게에 들러 "가족한테 꽁꽁 묶여 자신은 잊고 사는 불쌍한 길버트. 내 애들 말이야, 쟤들도 크면 너처럼 착하게 될까?"
"너처럼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위로인지? 자신에 대한 연민인지? 경멸에 가까운 냉소를 띄며 떠난다.
길버트에게 동생 어니는 살아남길 바라다가도 어떨 땐 그 반대였으면 하는 존재다. 의사는 어니가 10살을 못 넘긴다고 했지만, 곧 18번째 생일을 맞이한다.
카버부인이 말했듯, 길버트에게 집은 온통 가족으로 꽉 막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곳이다.
그 집에서 아빠는 목매 자살했고, 엄마는 정신없이 살다가 7년 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형은 집 나간 지 오래고, 엄마 같은 누나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운데 손가락을 펴는 여동생이 있다. 엄마가 햇살이라고 부르는 어니는 틈만 나면 높은 곳에 올라간다. 경찰이 높은 곳에 올라가 골칫거리인 어니를 데리고 간 날 엄마는 7년 동안 나가지 않던 집 밖을 나왔다. 거구의 엄마는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다.
지치게 만들고, 짐 같은 존재.
멀리서 보면 초라해 보이지만, 안에 있으면 꽉 차 보이는 집은 길버트의 삶. 전부 다.
길버트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그 자리 그대로 머물게 될까?
그런 그와 달리 자유로운 베키는 캠핑카를 타고 여행 중이고, 언제든 떠날 수 있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함께 노을을 보는 순간에도 길버트는 동생 어니를 책임져야 하기에 집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한다.
내일 떠난다고 전하는 베키는 길버트에게 묻는다.
"내가 안 떠났으면 좋겠나요?
길버트는 "아뇨. 가고 싶으면 가야죠"
"잘 가요" 가봐야겠다고 말한다.
- 육수를 부어 간단하게 해 먹는 물냉면을 하려고 재료를 담았다. 장바구니를 열어보니 무슨 정신이었는지 쫄면 면이었다. 사 먹어만 봤지, 직접 해 본 적은 없어 '언제 해 먹지' 하면서도 냉장고 문을 열 때면 신경 쓰였다.
꼭 나 같다.
유통기한이 임박해서야 냉장고에 없는 재료를 샀다.
쫄면 레시피를 검색해 양념장을 만들었다.
학창 시절 맛집에서 먹던 그 맛은 나지 않았다.
무엇을 바랐나?
처음치고는 나쁘지 않았고, 신경 쓰였던 구석을 해결해 속은 후련했다.
- 요즘 나의 화두는 왜?이다.
그것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유 없는 화가 끓어오르고 정리되지 않은 서랍이 가득 차 있다.
이유는 있을 것이다.
이유가 없을 수가 없다.
습관적인 이유 없음이겠지.
목적 없는 그냥 (이상향, 결핍의 해소)은 허공 위 어딘가에 있는데 따라가지 못하는 내가 보인다.
그 '그냥'이 문제다.
무엇인지 모르겠고, 붙잡고는 싶다.
그런 마음과 생각들이 한가득이다.
차근차근 생각해 보면 이유는 명확해진다.
지친 것도 같다. 사실은 괜찮다 괜찮다 한 거였지 나의 상태는 괜찮지 않았던 걸 수도 있다.
변화가 필요하겠다. (그저, 나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나의 정신과 달리 따라가지 못하는 마음이 보일 때, 하나인 내가 불협화음처럼 속 시끄럽다.
그 왜? 는 분명 그런 것 같다.
이런 것들은 어릴 때야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위로받고 반대로 위로도 하며 같은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어떠한 해결도 되지 않는다. 친구와 만나 즐거운 하루를 보낸 것뿐이다.
얼마 전 친구와 즐거운 하루를 보냈고, 그뿐이다.
가끔 비틀거리긴 하겠지만.
나의 생각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서랍들을 꺼내어 하나씩 정리하려고 한다.
해보지 않았던 것도 건드려 볼 생각이다.
길버트가 자신의 삶과 같았던 집을 불태우고,
동생 어니와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말했듯.
내 안에서 머무르던 것들에서 빠져나와야겠다.
나만이 피해자인양 자기 연민을 갖거나 자학하지 않는 것이 정신적으로 좋은 자세를 가진 사람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한다.
나를 지키며,
나답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