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타투

by 초록글씨

어느 날, 친구는 발목에 나비 타투를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20대였다.

"너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어?"

"만약에 결혼을 했어. 아이를 낳았어. 늙어서 살이 쭈글쭈글해지면?" 그런 대화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당시 친구는 오래 만났고 자기 인생에 더 이상 없을 사랑을 했다고 말하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뭐. 인간은 내일을 확신할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삶을 마지막처럼 결론짓고 아름다움으로 포장하기도 하니깐. (때로는 말이다.)

워낙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는 편이고, 재미난 친구였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타투가 예전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도 아니고, 온몸에 화려하게만 하지 않으면 크나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평생 몸에 새겨야 하니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혹시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는 게 더 아프데. 괜찮겠어?"

다만, 다만. 우려했다.

결심이 서기까지 여러 날 걸리는 나와 달리 빠르게 결단 내렸다.


며칠 후 친구를 만났다. 생각보다 큰 나비 타투가 발목에 새겨졌다. 제일 먼저 아프지 않았냐고 물어봤다.

친구는, 마치 대패로 살을 긁어서 찢겨 나가는 고통을 느꼈다고 말했다.

경험해 보지 않아도 느껴졌을 단어와 단어사이는 몸이 먼저 반응했는지 듣고만 있어도 아픔이 전해졌다. 나비를 몸에 새기기 시작하자 악 소리가 나오고 도저히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참지 못하고 절로 나오는 악 소리를 듣다가 타투 전문가는 그렇게 아프시면 그만하셔도 된다고, 자기는 상관없다고, 반쪽자리 타투를 몸에 새기면 된다고, 원래 고통을 느끼면서 몸에 새기는 거라고.

무섭고, 차가운 말만 남기고는 결정하라고 했단다.

입을 틀어막고, 앞으로 그 친구를 보지 못하는 고통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참았다고 한다.

(아니 이 무슨. 타투를 하려고 했던 이유가 분명 그 사람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마도 하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을 거다.)

그때 그렇게 말하던 친구의 말이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냥 웃었다.

절대로 연락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고, 이후에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웃기긴 했어도 우습지는 않았다.

혹여, 무심결에 들으면 그딴 일로 나중에 후회할 일을 만드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친구는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였다.




우리가 쌓아온 시절은 영원하지 못했다. 잠시 머무는 인연은 아닐 거라 생각하던 친구였고.

그녀는 나에게 서운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와 내가 보낸 오랜 시간을 무너트릴 만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술 한잔 마시고 풀면 그만이었다.

어느 시절 등장했다 사라지는 인연이었을지, 나 역시 누군가의 시절에 등장했다 사라지는 인연이었을지.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듯 친구도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을 거다. 서서히 정리된 관계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자연스레 멀어졌지만 가끔 그녀를 본다. 버튼만 누르면 연락할 수도 있다.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며 잘 지내고 있구나 생각한다. (친구도 나를 볼까. 싶기도 하고)


지나고 보니, 그 시절 이어오던 인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사뭇 그럴 때가 있다. 좋지 않게 끝난 관계도 있었지만 대부분 자신의 삶을 살다 보니, 시간이 흐르다 보니, 연락이 뜸해지기도 하고.

늘 만나던 사람과 보게 되니 이어져오던 관계는 이어지고 그렇지 않게 되기도 하고. 그렇게 된 것 같다. 결혼하면서 더욱 그렇게 된 것도 같다. 내 삶의 중심이 바뀌었기 때문일 거다. 연결되었던 인연들이 같은 시절에만 멈추었기 때문일 테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서운했고, 누군가에게는 서운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나 역시 누군가와 잘 맞거나 잘 맞지 않았겠지만.

가끔 생각한다.

오롯이 잡것의 섞임이 없고, 전혀 유치하지 않았던 그때 우리를.


이를테면,


영화 '스탠바이미'에 나오는 친구들의 대화처럼.

"엄마 걸고 맹세해?"

"응, 맹세해"라고 말하는 두 친구가 악의 없이 엄마를 걸고 맹세하는 대목처럼.)





한동안 약지 손가락에 작은 그림을 새겨 넣고 싶어서 검색했었다. 검색어는 아프지 않은 부위. 손가락은 아픈 부위라고 한다. 겁이 많다. 단지 이쁘다는 이유로는 하지 못할 것 같다. 더군다나 엄마 따라쟁이인 우리 딸은 분명 어느 순간 하고 싶다고 따라 할 거 같다. 그전에는 사인펜으로라도 그림을 그려 넣을 거다. 혹시 나중에라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엄마도 했으니깐 나도 해봐야지 라는 이유가 되선 안되므로. 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아이들이 태어난 순간 내 얼굴은 엄마라는 타투가 새겨진 거나 마찬가지이기도 하고.

또 그러는 바람에 그 친구도 생각나서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