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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로의 문전박대 (1)

by 서문교 Mar 16. 2025

최근 들어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관심 있어했고, 지금도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관심을 가질 일이다.

아마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업무와 관련해 얼마나 관심을 쏟았고 또 일하게 되었을 때 기뻐했는지 다들 알 것이다.

오늘부로 일한 지 2달 하고도 3일. 그렇게 재밌어하는 일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오해가 있을 수 있어 사족을 붙이자면, 결국 흥미가 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가면 갈수록 재밌고 함께 일하는 분들도 좋으며, 나는 매사에 만족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버겁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점이다.


나는 나 스스로를 80프로대의 남자라고 소개한다.

우등생은 절대 아니었고 열등생이라고 얘기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그야말로 어중간한 2등급 정도의 사람.

그것에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으며, 항상 쏠쏠하게 잘 먹혀들었다.

하지만 일하고 나서부터는 2등급이 아니라 3,4, 어쩌면 5등급 이하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나 스스로를 옥죄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회사의 판매 경로가 더욱 확대되어, GS25로까지 판매 범위가 확대되었다.

양조장에서 각 편의점까지 판매하는 과정의 관리를 내가 전담하게 되었고, 나름대로 기대가 되고 자신도 있었다.

어쨌든 주문을 받고, 그걸 운송 업체에다 알려주고, 편의점에 내보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날부터 꼬여버렸다. 

운송 업체의 전산망에 맞춰 발주를 넣었는데, 그게 중복 적용되어 과도하게 들어갔다.

취소하는 방법을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게 되었고, 결국 발주 마감 시간보다 30분 지체하여 출고 등록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GS와 배송 업체와 가진 소통은 최악이었다.

나중에 내가 얘기한 녹음본은 들었을 때 나는 말하면서 더듬고, 빙빙 돌리면서 말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마음속에 불안의 싹이 심어졌다. 그리고 실수가 나를 좀먹게 되었다.


실수의 구멍은 점점 커져갔다.

반품 재고 수량 파악에서부터 간단한 계좌 번호 입력까지, 신입이 할만한 실수라 하기에도 민망한 실수들이 점점 비일비재해졌다.

실수의 횟수는 점차 증가해 갔으며, 그와 비례하게 나의 변명도 점차 길어져 갔다.


평소 나는 만연체, 간접화법을 잘 사용한다.

최대한 남에게 나의 생각을 에둘러 표현하고, 또 타인이 내가 발언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도 다른 식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근 25년 간 살아온 나는 올해 내 삶의 방식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우선, 비즈니스 대화에서 만연체는 금기시된다.  그도 그럴 것이, 바쁜 현대 사회에서 조선시대식 화법에 어떻게 통용되겠는가?

뿐만 아니라 우리 측의 의도와 방식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간접 화법을 지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시민적 사고관을 가지고 있었던 이 사람은 비즈니스 수사법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타성에 젖어 자기가 하던 방식으로 업무에 적용하고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다.

사실 이 병이 언제 나을지는 모르겠다. 일주일, 한 달? 어쩌면 일을 그만둘 때까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업무에 대해 인정받기까지 마음속의 막은 벗겨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업무에 대해서만이라면 그래, 사실 나는 좀 일머리가 부족하다고 혼자서 생각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참을 수 없었던 사실은 바로 스스로의 인성과 예의에 대해 재고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도달했기 때문이다.


저번 주 금요일, 계좌 번호를 두 개나 오기입 한 나는 낙담한 가슴을 앉고 대표님께 민속주 안동소주를 드렸다.

2002년 9월 증류분으로, 대표님께서도 맛을 보시고 독특하다며 나를 격려하는 글을 SNS에 게재하셨다.

이 글에 전통주에 매한가지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 지인이 해시태그를 걸고 답글을 달았다.

나는 "부끄러운 많은 삶을 삽니다,,,"라고 화답하였고 웃음으로 답글을 마무리하였다.


자정으로 넘어가기 몇 분 전, 대표님께 문자가 날아왔다.

대표가 쓴 글에 이런 댓글을 남기는 게 맞는지에 대해 얘기하시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서늘하고 건조한 문체로 말하셨다.

사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해시태그가 걸렸고, 요새 너무 일을 못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 부끄럽게 산다고 적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표님께서는 기본적 예의에 대해 말씀하셨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항상 중요시해 왔고 무엇보다도 다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는 덕목에서 말이다.


업무적에서도 빨간 불이 켜졌고, 이제는 태도적 측면에서까지 빨간 불이 켜졌다.

나는 어떤 점에서 이곳에 기여를 하고 있는 걸까? 아니 애당초 내가 기여를 하고 있었는 걸까, 어쩌면 도리어 폐만 끼쳤는 게 아닐까?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우울하고 힘이 쭉 빠지며,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의 업무를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든다.


최근 들어 매일 듣는 노래다 있다. 인디밴드 중식이의 "나는 반딧불"이다.

스스로에게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다 지치고 무력감을 느껴 성공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내용의 가사이다.

분명 해피엔딩의 가사이지만 왜 나는 전반부만 머릿속에 맴도는지,,,,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2호선에서 한 번씩 나는 이 노래를 듣고 운다.

그래도 괜찮다. 그 내게는 퇴근한 직장인이라는 대나무밭이 사방에 자리 잡아 있고, 어차피 그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게임 속 NPC와 진배없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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