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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크다스 Dec 30. 2020

더 이상 꼬마가 아니야 01.

Maps 01. 나의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01. 나의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 숨기고 싶었던 비밀 이야기



어린 시절의 나는 똑똑한 아이인 줄 알았다.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 우리 부모님 또한 나를 희망이 가득한 아이로 키웠을 것이다.

내가 하는 사소하고 아주 작은 행동들까지 나를 똑똑한 아이라고 칭찬이 베여 있었다. 이후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부모님이 나를 더 아껴 주었던 이유가 있었더란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한번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나는 이 나이 때의 여느 아이들처럼 상상력이 풍부했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유치원을 다닐 때에는 항상 칭찬 스티커가 벽에 줄 을지어 1등을 차지하고 있었다. 달을 그릴 때 달을 피자로 그리기도 하고, 화장실의 변기 뚜껑을 등에 뒤집어쓰고는 거북이라며 부모님을 불러 보여줬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은 남들이 볼 때는 별거 아닌 나의 장난에 천재라는 말을 항상 달고 사셨다."우리 애가 창의력이 뛰어나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어린 시절의 나는 이렇게 어른들의 찬사를 받으며 똑똑한 영재아이라고 생각했고, 어른들도 그런 것을 바랐을 것이다.


하루는 유치원에서 말썽을 부린 적이 있었다. 그 말썽이 어떤 말썽이었길래 1등을 달리고 있던 나의 칭찬 스티커에 선생님께서 하나의 스티커를 반쯤 떼어냈다. '나는 항상 1등이어야 하는데' 나는 승부욕이 있는 아이였다.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에게 둘러 쌓여 정신이 없을 즈음 내 스티커를 다시 붙여버렸다. 시간이 지난 후 선생님께서 다시 제자리에 주름이 잡힌 채로 붙여진 칭찬 스티커를 보고 말씀했다. "이 스티커, 선생님이 떼어 놨는데 누가 다시 붙여놨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누가 봐도 범인은 '나'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까지 미치치 못하는 어린아이였다.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모른 체하였다. "누가 이 스티커 다시 붙였는지 알고 있니?" 선생님은 내가 범인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분명 내가 솔직히 이야기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다. "저도 모르겠어요. 어디 다녀오니까 이렇게 다시 붙여져 있었어요." 나의 거짓말에도 선생님은 모른 체해주었다. 분명 선생님은 범인이 '나'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의 선생님은 나의 거짓말에 눈을 감아주었다. 왠지 모르게 심술이 났다. 칭찬 스티커를 주었다가 다시 도로 빼앗는 선생님의 행동이 마음에 썩 들지 않았지만 그것을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나는 어른들이 보는 나의 모습이 똑똑한 영재이고 착한 아이이길 바랬다. 그토록 아무것도 잘 모르는 유치원생 주제에 '우월감'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는 노릇이었다.


-


나는 유치원 때부터 아주 비열한 아이였다.

하루는 그런 일이 있었다. 유치원의 아이들은 밖에서 놀이를 하고 나면 모두들 세면실로 달려가 손을 씻어야 했다. 나 또한 놀이가 끝나고 순서를 지켜 제일 마지막에 세면실로 들어가 손을 씻었다. 그 날은 '그것'이 눈에 띄었다. 유치원 세면장에 왜 이게 있었는지는 아직까지 모르겠지만 세면대 바로 옆쪽에 '면도기'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빠가 턱에 대고 문지르는 걸 본 적이 있어.' 나는 그것을 들어 비누칠도 않은 채 턱에 '그것'을 대고 문질러 보았다. 하지만 이내 자리에 '그것'을 두고 교실로 돌아갔다.


자리로 돌아간 나를 보고는 선생님이 그렇게 놀라는 것은 아마 처음 보았던 것 같다. 선생님은 놀라 나에게 물었다. "세면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유치원 때의 나는 '면도'라는 것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저 아빠를 따라 했던 나의 턱에는 피가 조금씩 흘러나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아픈지도 모르고 선생님의 말에 나까지 놀랬다.

'내가 세면실에 있는걸 마음대로 사용한 것을 알면 혼나겠지?' 선생님께 혼날까 봐 그 작은 머리로 생각이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바로 내가 혼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아주 치졸하고 비열한 방법을 말이다.


우리 유치원에는 조금 부족한 아이가 있었다. 어린 내가 보았을 때 '약자'라고 칭할 수 있는 아이 말이다. 그 아이는 또래의 남자아이 었는데, 늘 자신의 의견도 잘 말하지 못하는 소심한 아이 었다. 평소에는 그 아이랑 이야기하며 놀았던 기억조차 없다. 하지만 그 아이 심성이 나쁘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작은 목소리의 그 아이의 말은 늘 당당했던 나와는 매우 대조되는 아이였다. 나는 유치원 내에서 평판이 나쁘지 않은 아이 었다.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으며, 똘똘한 나의 말은 선생님들은 곧 잘 들어주었다.


"세면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선생님한테 말해줄 수 있니?"라고 물어보는 선생님의 문 뒤로 그 소심한 남자아이가 보였다. 짧은 시간 안에 영악한 나는 생각을 하고 선생님에게 그 아이를 일러바쳤다. "선생님, 제가 세면장에서 줄을 서고 있었는데 ○○이가 제 뒤에서 저를 밀어서 넘어졌어요. 그래서 피가 나는 것 같아요!"

어린 나의 생각에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놀란 선생님이 그 남자아이를 불러 이야기했다. "네가 밀었니?" 선생님 님의 말에 당황한 남자아이가 눈이 휘둥그레져 말했다. "선생님 저 아니에요!" 하지만 내 생각대로였다. 선생님은 내 말을 믿었고, 내 편이었다. 내 계획대로 내가 아닌, 그 아이가 나를 대신해 혼나게 된 것이다. 그 남자아이가 거짓말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탓인지 선생님은 아이의 팔을 잡고 끌어 상담실로 데려갔다.


그 후, 그 남자아이가 혼나고 오늘 하루가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나를 그냥 집에 돌려보낼 수 없는 노릇이었던 것이다. 유치원이 끝난 늦 오후 즈음 선생님은 나를 집에 돌려보내지 않고, 상담실에 나를 불러앉혔다. 그 자리에는 그 남자아이와 그의 엄마로 보이는 분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남자아이는 한 껏 대성통곡을 하며 울고 있었다. 아마 나와의 일 때문에 누명을 뒤집어써 혼이 난 것 같았다. 그의 엄마와 그 남자아이는 나에게 사과를 하였다. 자신이 잘못을 하지도 않았던 일에 대한 사과 말이다. 나는 꽤나 당황스러웠다. 내가 한 거짓말로 인해 그 남자아이의 눈물을 마주 앉아 이토록 지겹게 보게 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친구한테 사과해야지!" 선생님과 그의 엄마조차도 그 아이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아이를 나무랐다. "내가 미안해.." 이 날의 진실은 아마 아직까지도 그 남자아이와 나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날은 그 남자아이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던 것 같다. 그 남자아이는 그 후로 유치원에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유치원에 여느 때처럼 나와 나에게 따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기억 속의 그 아이의 마지막은 이 것이 전부였다. 그런 치졸한 짓을 하고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유치원에 다시 등원을 하고 착하고 똑똑한 아이로만 기억되었다. 그 어린 나이에 나는 모두를 속이고 누명의 씌우고 사과까지 받아내었다. 시간이 지나 중학생 때 쯔음 그 일이 문득 생각이 났다. 나 자신에게 환멸이 느껴지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남자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제와 미안한 마음이 들다니 웃긴 노릇이었다. 나의 못된 심성 덕에 그토록 울고불고 난리를 쳤었던 그 아이가 아직도 한 번씩 생각이 난다. 그리고 살면서 한 번쯤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꼭 말하고 싶다. 그때는 미안했다고. 나이가 들어 잘못을 저지른 일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유년시절의 죄책감이 아직까지 생각이 난다 하면 이 마음을 무어라 칭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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