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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크다스 Jan 01. 2021

더 이상 꼬마가 아니야 03.

Maps03. 나의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03. 나의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숨기고 싶었던 비밀 이야기



중학생 시절의 나는 흔히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던 것 같다. 나는 다른 이들의 사이에 섞여 돋보이고 싶었다. 그것이 공부가 아니라는 점이 조금 아쉽지만 말이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눈을 뜨인 것은 별 다른 사건이 아닌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초등생 시절에 나는 공부방을 다녔다. 그곳에서는 나의 또래의 친구들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학년이 다른 학생들도 섞여 있었다. 나는 또래의 친구들과 원활하게 교우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집으로 돌아가면 부모님의 속을 썩이지 않는 말 잘 듣는 아이였다. 학교에서 사귄 친구들 뿐 아니라 공부방의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집을 드나들며 지내는 그런 평범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날 나는 부모님께 휴대폰을 사달라 졸랐다. 또래 친구들이 서로 집으로 돌아가서도 문자를 주고받는 것을 보고 무언가 내가 모르는 비밀을 공유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랜 설득 끝에 나의 첫 휴대폰은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리저리 친구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묻고 다니고는 했다. 방과 후에도 집에서 친구들과 문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설레는 일 중에 하나였다. 밤새 친구들과 문자를 하고는 학교로 돌아가서도 전날 문자로 이야기했던 것을 꺼내고는 했다. 그것은 일종의 친근감의 표현 중 하나였다. 나는 너희가 모르는 많은 이야기들을 친구들과 문자로 나누었다는 일종의 유치한 자랑 같은 것이었다. 그러고는 혼자 그 상황을 연출해낸 자신을 뿌듯해하고는 하였다.


초등생 시절의 나는 '잘 나간다'라는 것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었다. 단지 같은 반의 친구와 친하게 지내며 노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지내왔다. 하지만 고학년이 되자 반의 분위기는 묘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힘을 과시하는 아이들은 없었지만 무리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내가 있던 반의 '잘 나가는' 아이들은 키가 큰 여학생들이었다. 키 순서대로 자리를 배치하는 것이 관습이었던 반 내에서 그들은 맨 뒷자리 상석의 자리를 차지하고는 무리를 지어 자기들끼리 친하게 지내고는 했다. 이러한 무리가 생겨나기 전의 제일 친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친구는 더 이상 내 자리로 놀러 오지 않게 되었다. 쉬는 시간이면 무리의 중심쯤 되는 여자아이의 주위로 몰려가기 바빴다. 키가 유난히도 작았던 나는 맨 앞자리에서 두 번째 줄을 벗어나지를 못했다. 내가 그들과 더욱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것은 나의 '작은 키' 때문이라 생각했다. 나는 내심 오랜 시간을 그들과 같은 무리라 생각하며 지내왔다. 급식실로 달려갈 때에도 무리의 맨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나의 자리를 지켰다. 쉬는 시간부터 점심시간까지 그들을 따라다니기 급급했다. 같은 무리의 일원이라 생각하며 나의 씁쓸한 마음을 모른 체하며 하루하루 보내던 터였다. 하루는 한 여자아이가 무리의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번 주 주말에 다 같이 시내에 가지 않을래?" 동네 밖으로 부모님 없이는 단 한 번도 나가보지는 않았던 '나'였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좋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우리는 시내 길 잘 모르는걸 어떻게 해?" 한 아이의 말에 옆의 다른 아이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는 시내 길을 다 외우고 있데! 정말 대단하지 않아?" 초등시절의 나는 그것이 매우 대단해 보였다. 벌써부터 혼자서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다니, 그것은 마치 어른들의 이야기 같았다. 학교가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제일 먼저 엄마에게로 달려가 말했다. "엄마! 이번 주 주말에 친구들과 같이 시내 놀러 가도 돼요?" 나의 말에 엄마는 말했다. "그렇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겠니? 너는 아직 버스 타는 방법을 잘 모르잖니, 그리고 길이라도 잃으면 어쩌려고 그래" 엄마의 말에 나는 아까 한 아이가 했던 말에 내 생각을 덧 붙여 외쳤다. "우리 반의 ○○이는 시내 길을 다 외우고 있데! 그래서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애가 버스 타는 방법도 다 알고 있어서 같이 출발하면 문제없을 거야. ○○이라는 친구 정말 대단하지 않아? 나랑 같은 나이인데 언제 시내 길들을 다 외웠는지 모르겠어" 나는 ○○이의 이름을 재차 언급하며 나의 친구가 이만츰이나 어른스럽다는 것을 어필하였다. 계속된 설득 끝에 드디어 부모님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날 학교로 등교를 하였다. 나도 같이 시내에 놀러를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한 껏 들떠 있었다. 교실로 도착하자 그런 허락 따위는 쓸모없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무리의 아이들이 교실에서 시내에 가면 무엇을 하고 놀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계획에 나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여태껏 내가 무리의 일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착각이었던 것이라 알게 되자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그 날은 유독 심술이 났었다. '됐어, 나도 쟤네 친구라고 생각했던 적 딱히 없었어. 쟤네 말고도 친구들은 많은데 뭐가 문제야.' 여태 함께 있었던 자리에 나는 항상 끼이고 싶어 노력했지만 그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듯했다. 유년시절의 '나'는 유치한 외로움에 사로잡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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