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ps04. 나의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04. 나의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숨기고 싶었던 비밀 이야기
나에게 휴대폰이라는 것이 처음 생긴 것은 초등생 시절이었다. 이 휴대폰으로 인해 친구들과 매일같이 문자를 주고받는 '나'자신이 뿌듯하게 느껴졌다. 이토록 이만큼이나 내가 교우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는 일종의 겉치레였다. 이런듯 '나'에게 있어서 휴대폰은 손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소한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휴대폰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 후회할 만한 사건이 생기게 되었다. 하루는 '발신번호 제한'이라는 번호로 나에게 이상한 문자가 도착했다. "야이 XXX아."라는 짧고도 명확하게 불쾌한 내용의 문자였다. 나는 이 문자를 확인하고는 아무에게도 이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모든 이들이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지금 나와 같이 지내고 있는 친구들 중 하나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 날 며칠을 '이 문자를 보낸 것이 누구이며, 왜 나에게 이렇게 말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이라면 그냥 무시하고 넘기면 될만한 작은 일이라 생각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절대 그러지를 못했다. '아, 나는 어쩌면 누군가에게 이렇게 미움을 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그 사실이 나의 마음에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내게 만들었다. 이때의 감정을 말하라고 한다면 무어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름은 신선한 충격과 함께 상처 따위를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익숙해지며 이제는 당연하게 있을 수도 있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는 누군지도 모를 이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이 '처음'이었다. 마음에 돌을 얹은 듯한 기분으로 학교와 집을 오갔던 날이었다. 친구들 2명과 함께 집으로 하교하던 중 친구들 2명이 이야기했다. "나 얼마 전에 이상한 문자 받았었어. 근데 그게 얼마나 기분 나쁘던지." "왜 무슨 문자였길래 그래?" 한 친구의 말에 나는 물었다.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나한테 왜 자기 친구를 뺏어가냐는 둥 이상한 문자가 왔었어. 내가 무슨 자기 친구를 뺏어? 이상하지?" 친구의 대답에 나도 여태 내 마음에 돌을 얹은 그 문자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였다. "나도 사실 이상한 문자 얼마 전에 받았어. 그런데 다짜고짜 욕을 하길래 너무 깜짝 놀랐어.." 나의 대답에 2명의 친구는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이상하다는 듯이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다른 또 다른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사실 그 문자, 내가 보낸 거야." 친구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는 너무 깜짝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느덧 집 앞에 도착했지만 나는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물었다. "왜?" 나의 놀란듯한 물음에 친구는 대답하였다. "○○이 한테 왔던 문자 나도 같이 봤어. 그 문자 보냈을 것 같은 의심 가는 사람한테 보낸 거야. 만약에 네가 정말로 그 문자 보낸 사람이었다면 네가 그 문자를 받고 우리한테 와서 이 문자를 우리가 보냈냐고 물어볼 거라 생각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네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고. 그 걸 보면서 네가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지금 이야기하는 거야." 친구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범인이 실은 바로 '나'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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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셋은 학기 초 가장 친한 친구사이였다. 하지만 셋은 공평하게 친해질 수 없다고 하였던가. 우리 셋 중 '나'는 단연 소외되기 마련이었다. 몸은 같이 다니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외로웠던 것이다. 내가 소외되고 있는 탓을 다른 친구에게로 돌려버렸다. '걔가 오기 전에는 우리 둘이 제일 친했었는데.' ○○이와 단짝처럼 지냈던 날들이 무너진 것은 모두 다른 그 친구의 탓으로 돌려버리려 하였다. 나는 휴대폰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문자를 보낼 때에 발신자의 번호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찌질하면서도 소심한 복수를 하기로 하였다. '너 왜 내 친구 뺏어가?'라는 문자를 치고서는 번호를 바꾸었다. 그러고서는 잠시 동안 고민을 하다가 이내 전송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실제로 내뱉지 못하는 말을 이렇게나마 하고 나니 속이 시원한 듯했다. 나는 이렇게나 찌질한 사람이었던가.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한 것도 잠시일 뿐, 나는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나도 다른 이에게 어쩌면 찝찝함을 남겨주는 상처를 지워줬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나만의 상처만 기억하고서는 자신이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며 당당하게 말하는 그 친구가 미워졌다. 하지만 그런 불평을 이야기할 수도 티를 낼 수도 없었다. 이마저 내가 싫은 티를 내어버리면 정말 어느샌가 그 둘이 나를 돌아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가 되기 싫었다. 이깟 외로운 것이 무어라고 아등바등했었던 걸까. 휴대폰을 가지고 싶었던 나의 마음은 단지 외로움을 이겨낼 용기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정말로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깟 휴대폰이 아니라, 그깟 문자 따위가 아니라, 그깟 같이 다닐 친구가 아니라 진정으로 터 넣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나는 유년시절 깨달았다. 친구관계에 있어서도 갑과 을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의 웃어른들이 친구관계에 대해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가 가끔 생각난다. '어릴 적 친구가 진정한 친구란다.' 나는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다. 어릴 적의 '나'는 소심하며 찌질하기 그지없었고,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갑과 을의 관계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정말 어른들은 몰랐던 것일까.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의 '나'또한 무엇이 맞는지는 모른다.
어린 시절의 친구관계는 작은 상자 안에 수십 개의 블록들을 넣고 흔드는 것과 같다. 상자가 흔들리면서 부딪히는 여러 개의 블록들은 다칠 때도 있고, 때로는 서로 맞는 블록들끼리 끼워지기도 한다. 나는 짝을 찾아 끼워진 블록이 아닌 상처가 난 채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블록 중 하나였다. 훗날 우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 더 큰 상자 안으로 들어가더란다. 나와 짝을 맞춘 채로 이리저리 상자 안을 함께 돌아다닐 '친구'를 찾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