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짧은 동화
지렁이들이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일같이 단순 작업을 반복한다.
자신에게 입력된 질문을 인간들에게 던지고 답을 받아오는 일.
대상은 크게 상관없다.
답안도 크게 상관없다.
땅에서 기어 나온 지렁이들은 곧바로 흩어져 맡은 임무를 시작한다.
잔디밭에서 네 잎클로버를 찾는 아이에게 다가가 묻는다.
"너의 꿈은 뭐니?"
"꿈? 인기많은 아나운서! “
달리기를 하다가 주저앉아 운동화 끈을 조이는 학생에게 다가가 묻는다.
"너는 어떤 학교를 갈 거니?"
"나는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교에 가야지. “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청년에게 다가가 묻는다.
"너는 언제 결혼할 거니?"
"친구들 다 가기 전에는 가야지, 완성형의 여자가 나타날거야. “
유모차를 끌며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아줌마에게 다가가 묻는다.
"내 집 장만은 언제? “
"내 아이가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이 넓은 집, 곧, 곧 할 수 있어.“
감정은 없다.
대답이 뭐든
데이터만 모은다.
하루의 질문 미션을 마친 지렁이들은 다시 땅 속 집으로 갈 준비를 하기 위해 모여든다.
그 와중에 일찍부터 대기 중인 신입 지렁이 하나가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를 발견한다.
바닥에 동그라미만 반복적으로 그리는 조그만 아이.
남은 질문이 있었나?
아무거나 던져볼까.
신입 지렁이가 아이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경력직의 선배 지렁이 하나가 그를 붙잡는다.
"가지 마. 쟤는 말을 못 해. “
"그래서요?”
신입지렁이가 묻는다.
"이미 힘들다고, 시작이 다르잖아. 건들지 마. “
"그냥 남들처럼 얘기하면 되는 건데."
"남들처럼 이 제일 어려운 거야."
"보통..."
옆에서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감독 지렁이가 한마디를 보탠다
"말할 수 없는 아이에게 칼을 겨눌 필요는 없어. 우리까지."
-칼…이었나.
신입 지렁이는 조금 전 질문인식을 마치고 돌아서던 순간에 그들이 중얼거렸던 말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네 잎클로버를 찾던 아이가 풀더미를 흩트리다 울음을 터트렸다.
"발음이 안 좋은 데 무슨 아나운서냐고. 아앙“
운동화 끈을 다 조인 학생은 다시 걷기 시작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S 대학에 못 가면 차라리 군대나 가라고 했는데. 하. 나도 모르겠다."
벤치에 앉아 책을 읽던 청년은 책을 덮고 휴대폰을 켰다.
"내년에도 이 질문을 들을 바엔 차라리 해외 나가 살아야지."
유모차를 끌던 아줌마는 노래를 멈추고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집 장만… 내가 조금 더 인생을 갈아 넣으면 되는 거겠지."
신입은 문득 궁금해졌다.
“대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뭐지요.”
“준비되지 않은 인간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 불안해하다가 스스로 무너지고 나면 우리가 이 땅을 차지하는 거야, 쉽지? “
"헉, 지금까지 우리 계획을 눈치챈 인간이 한 명도 없다고요?”
신입이 의외라는 듯이 재차 묻는다.
선배 지렁이는 무뚝뚝하게 답한다.
"이 나라에선 이게 보통이야."
(끝)
숨 쉬듯,
타인의 불안한 미래를 자꾸만 확인하고 싶어 하는 나라.
그 나라의 자살률은 세계 1위.
우리가 정말
지키고 싶은 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