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어른 사이
첫눈에 알아볼 때가 있다.
-얘는 나랑 맞을 거야.
십중팔구 빗나간다.
-얘랑은 힘들겠는데.
하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돼버리는 건,
누구의 의도이고 누구의 장난인가.
그냥 좋은 게 정말 좋은 것일 수 있다.
회사는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지만,
잘 맞는 사람과의 시너지는
언제나 두 배를 가져온다.
나이는 상관없어.
고백
옥상 벤치에 누워 한쪽 눈을 찡그리면서도 하얀 구름이 흘러가는 모양에 시선을 떼지 않는다.
아주 많이 어리고 키가 많이 작았던 날, 나는 작은 창문 사이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었고 그 뒤로는 아빠가 바닥에 앉아 하얀 런닝 위로 간장이 튀는지도 모르게 밥을 비비고 있었다.
내입에 넣어 줄 밥을.
‘우리야 와서 밥 먹어 ‘
‘아빠, 구름 ‘
아빠는 밥그릇을 놓고 창가로 다가와 창문을 더 활짝 열고 깨꼼발을 하고 있는 나를 들어 창틀에 앉혔다.
‘저기 봐, 저기에는 용 한 마리가 있네’
‘용? 어디?‘
‘저기, 저 부분이 머리고 저기가 꼬리… 앞에는 꼭 불을 뿜은 것 같은 모양인데?, 어어 저 뒤로는 자전거다, 자전거 보이지?‘
아빠는 내 손가락을 들고 구름을 가리키며 모양을 그리는 법을 알려준, 사랑.
구름을 볼 때면 늘 그 순간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쾅-
옥상 철문은 유독 그녀의 손길에 쾅 소리를 낸다.
쿠로미 파우치를 들고 다니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것 같은 그녀, 권리원.
“차장님! 크크 여기 있을 줄 알았어요.”
“응 출장준비 다 했어?”
그녀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옆으로 와 앉는다.
고개를 까닥까닥하는 강아지같이. 얼굴은 당장이라도 발톱 세울 고양이 같은데.
“저 그런데. 하… 드릴 말씀 있어요.”
나는 리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하하 왜요. 아직 말도 안 했는데. 쩝. 그런데 진짜 할까 말까 엄청 고민했거든요. 지금도 고민이에요.”
“하지 마 그럼.”
“차장님한테만 말씀드릴게요.”
“아냐, 하지 마.”
“저… 사실은 공황 있어요, 차장님.”
“공항?”
“아뇨, 공황. 공황장애. 들어보셨죠?”
“연예인?”
“요즘은 일반인도 많아요.”
“어어. 그래서?”
“그렇다고요.”
나는 다시 뒤로 젖힌 팔에 기대어 하늘을 쳐다본다.
“지금 병원 갔다 왔는데 비행기 타면 심해질 수 있대요.”
리원이 긴 생머리를 앞으로 가져와 엉킨 부분을 빗어내며 말한다.
“뭐?”
나는 다시 자세를 고쳐 앉고 그녀를 쳐다본다.
내일은 그녀가 입사한 후 처음 가는 해외출장, 푸꾸옥에 가는 날이다.
처음부터 동행을 염두에 두고 6개월에 걸쳐 진행한 프로젝트. 사소한 작업들은 그녀가 모두 정리하고 있었기에 갑자기 빼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5시간 정도니까. 괜찮겠죠?”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아. 공황이. 어떤 거지?
"회사에는 비밀로 해주세요 꼭이요. 차장님."
나는 비밀을 싫어해.
비행기
탑승이 시작되는 안내방송이 울리자 쇼핑을 한다며 사라졌던 리원이 나타난다.
한 손에는 보드라운 양털의 쿠로미 파우치와 떼가 탄 아이패드를 들고서.
그리고 다른 손에 들고 있는 반투명의 비닐봉지를 눈앞에 훅 들이민다.
"차장님. 내 약"
"하아..."
이어폰을 빼고 리원을 올려다본다.
"엄청 많죠. 일주일 치."
이 정도면 봉투가 아니라 보따리지.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린다.
그녀가 간단히 설명해 준 공황장애 증상은 갑자기 숨쉬기 힘들 정도의 공포가 느껴진다 했다.
비행기 같은 좁은 환경에서는 더더욱 불안과 발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늘 위로 올라간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발작이 오고 도저히 못 참겠다고 하면,
회항은 불가하겠지? 비상착륙? 여기 의사 탑승하신 분?
이 상태를 미리 인지하면서도 해외출장을 강행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걸까.
회사 내부에 보고도 하지 않은 채 둘만의 암묵적 동의만으로 책임을 피해 갈 수 있는 걸까.
미필적고의.
"지금이라도 안 가야 되는 거 아냐?"
"아니이. 괜찮아요 그래서 어제 정신과 다녀왔잖아요. 나 푸꾸옥 진짜 가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물과 함께 약을 털어 넣는다.
아이를 말리는 게 쉬운가.
다 큰 엠지를 말리는 게 쉬운가.
녹색등이 켜지자 그녀는 세 칸짜리의 좌석에 두 칸을 차지하고, 아니 내 무릎까지 베었으니 세 칸을 고대로 차지하고 잠이 든다.
무려. 네 시간을 깨지 않는다.
그녀의 벌어진 입으로 이어폰 하나를 넣었다 뺐다를 해본다.
"공황 맞아?"
목소리를 줄이지 않고 떠들어봤지만 기절한 듯 자는 그녀는 좀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저가 비행기 중의 하나인 푸꾸옥 직행 항공은 꽤나 소음이 심한 데도 불구하고.
-아, 허리 아파.
이제 그만 그녀를 깨우고 나도 허리를 눕히고 싶다.
하지만, 머릿속에 이 자식은 환자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나쁜 기지배."
그녀에게 인지, 나에게 인지 모를 말이 튀어나온다.
충분히 약자를 보호할 만한 정도의 그릇은 된다고 생각했던 나의 마음에, 내 몸 하나 뉘이지 못해 화가 나는 이기심이 공간을 채운다.
-어따 말도 몬하겠네.
푸꾸옥에 도착하는 시각은 새벽 5시. 한국시간으로는 새벽 3시이다.
다리가 저리고 허리에 통증이 느껴진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드라마 다모가 다시 보고 싶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