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간 MZ (2)

할땐 해요

by 아는개산책

출장 간 MZ (1)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인스타


“우와! 여기 너무 좋아요! 차장님, 대박 대바악”


밤에서 새벽사이를 꼴딱 세운 것과 진배없는 나의 몸상태는 바닥을 뚫고 지하를 향해가지만 그녀만은 해맑다.


잘 잤니,

나는 밤새 인간의 본성과 선악사이를 넘나들고 있었단다.


“아... 머리야...”


체크인은 마쳤지만, 입실시간은 두시.

로비에 배치된 의자에 앉아 머리칼이 땅에 닿도록 고개를 파묻는다.


갑작스러운 두통과 리원이 한 번에 다가온다.


-걱정 마,라고 해야 하나. 아파 디지겠다고 해야 하나.


“차장님, 이거 봐요.”


숙였던 머리를 드는 순간, 빙- 빙-


아랑곳없이 그녀는 영상을 눈앞에 들이민다.


“이거, 같이 찍어요.”


휴대폰 화면 안에는 한 여자아이가 방에서 침대로 점프를 하는 순간 물속에 풍덩 빠지는 장면으로 전환되면서 인어처럼 헤엄친다.


“뭐야, 이게?”


“요즘 유행하는 건데, 우리 이거 할 거예요. 수영복 가져오셨죠?”


“나 수영 못하는데.”


“저도요. 히히. 그래도 해야 돼요.


리원은 그 영상을 필두로 연관된 비슷한 영상들, 다른 여러 사람들이 따라한 영상을 보여준다.


-요즘은 이런 걸 보네


딱히 반응이 없자 리원은 휴대폰을 도로 가져간다.


“차장님, 릴스 안 봐요? 재밌는데.”


“그게 뭔데?”


리원은 대답은 하지 않고 이번에는 옆에 놓인 내 아이폰을 가져간다.


슥슥- 익숙한 손놀림


어떻게 알았냐.

남친도 없고 비번도 없는 걸.


찰칵. 찰칵.

슥- 슥-


“차장님, 이렇게 이렇게 찍어서 이렇게 올리면 예뻐요, 글씨 크기는 이렇게…"


"좀 예쁜 색깔로"


"아, 요즘 필터 누가 써요."


쩝.


계정만 만들어놓았던 나의 별그램에 난생 첫 스토리가 올라간다.


푸꾸옥 도착이라는 문구와 함께.



현장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 하나에 털썩 쓰러지듯 눕는다.

우리 둘 다.


“저리로 가줄래”


손가락만 까닥한다.


“네. 흐흐”


리원은 벌떡 일어나 옆 침대로 옮겨간다.

눕는가 싶더니 다시 일어나 트렁크를 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는 내게로 다가와 흔들어 대는 것은 수영복.


“우리 수영 언제 해요?”


“와…… 체력도 좋다 리원아아아아아아”


“차장님 것도 봐요.”


한 손만 들고 휘적휘적.


지이잉-

때마침 문자가 온다.


”헉, 리원아 지금 나가야겠다. 화주 지금 온대."


이번엔 내가 벌떡 일어난다.


“진짜요? 네, 네.”


물먹은 하마처럼 끝도 없이 잠겨버릴 것 같은 몸도 대행사로부터 온 업무문자에 빠르게 물기가 빠진다.

로비에서 집 잃은 강아지처럼 부유하다가 방에 들어온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너무 빡세서 그만둔다고 하는 거 아냐.


택시 안에서 불안한 마음에 그녀를 힐긋 쳐다보지만 그녀는 여전히 휴대폰 삼매경이다.


“안 피곤해?”


“네? 괜찮아요. 어리잖아요.”


오 마이 MZ.


현장에는 작업을 위한 사람들이 이미 서른 명이 넘게 대기 중이고 한낮의 태양은 출신을 가리지 않고 따갑게 내리쬐고 있다.


그녀와 나의 검은색 작업면티가 금세 얼룩이 들고 가슴골 사이로 물방울이 또로록 흐르는 게 느껴진다.


-진짜 덥다.


말로 내뱉어도 소용없는 말.


대행사 담당 과장도 땀을 닦으며 다가와 짧은 악수로 인사를 대신한다.


“오늘 여기 270박스 오는 거 맞죠, 차장님? 이거 개수만 같이 확인하고 오늘은 빨리 끝내보죠.”


트럭에서 내려지는 각각 다른 크기의 박스들이 작은 골방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최종 개수는 대행사 담당자와 하나씩 맞춰가며 세어야 한다.


"아, 네."


최종 박스에 숫자를 표기해 놓은 것은 리원, 서류와 매치시킬 수 있는 것도 리원이다.


하지만 골방이. 변수다.

폐쇄된 공간.


"세면 되죠? 들어가서"


먼저 그렇게 말하는 리원은 나랑 눈이 마주치자 괜찮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한다.


안도 밖도 덥다. 그래도 내부는 직사광선은 피할 순 있으니까.


"너... 몇까지 세는데."


"아휴 차장님! 크크. 백 까지는 세요."


처음부터 단 두 사람이 출장 와서 할 수 있는 규모는 아니었다.

실적을 조금이라도 더 남길 욕심에 인원을 줄인 게 미안해진다.


백 까지는 셀 줄 아는 리원이라 다행인가.

가식적인 계산은 할 줄 모르는 그녀라서 다행인가.


나는 그녀에게 카운팅을 맡기고 바깥으로 나가 도착하는 것과 이동하는 것을 대조하며 숫자를 확인한다.

그렇게 삼십 분도 흐르지 않은 것 같은 시각.


"Ms, Ms"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린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가 보라는 손짓을 한다.


급히 뛰어들어간 골방엔 리원이 현지 인부들 사이에서 흐물흐물거리고 있다.

조금 전의 팔팔함은 사라진 채 힘이 빠진 눈빛이 뜨고 감는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


"차장님, 내가 70 까진 셌는데 71 하고 72 다음이 70이고 69, 68..."


"리원, 너 뭐 해, 몇까지 셌다고?"


리원이 풀린 눈으로 구석으로 걸어가더니 접어놓은 빈 박스들 위로 올라가 누우며 중얼거린다.


"아... 나 조금만 쉴게요."


리원이 잠이 든다.


화주, 대행사 직원과 눈이 마주친다.


"커피... 드실래요?"


등줄기를 타고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같이 가시죠."


오히려 그는 쉴 때가 되었다며 흔쾌히 대답한다.


다행히, 사람이었다.



(3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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