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는 중입니다
촬영 중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나는 그녀의 화려한 수영복을 입고, 그녀는 나의 많이 가려진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으로 걸어간다.
한 손에는 마시다 만 망고주스, 한 손에는 타월.
리원의 손에는 찰칵찰칵 멈추지 않는 카메라, 아이폰이 들려있다.
"나 튜브 없이 물에 들어가 본 적이 없어."
"헐, 몇 살 때 얘기하시는 거예요."
이미 나의 배터리는 0을 다해가는 듯 하지만, 그녀의 말은 왠지 거절하기가 어렵다.
안 갈 거면 혼자라도 간다는 말에, 숙소에 있다가 구조하러 뛰어나가야 하는 것보다는.
따라가는 게 낫다는 합리적인 생각에 손을 들었다.
-하루가 기네.
자랄 땐 안 자고 일할 땐 자는 그녀와의 하루.
"차장님, 잘 봐요. 이거 계속 보면서 순서를 익혀야 돼."
인어공주처럼 점프하는 영상을 보여준다.
그래, 여기까지 왔으니 완성본 만든다 내가.
풍덩-
리원은 수영장에 뛰어들어 개헤엄을 시작한다.
"아, 뭐야. 캬캬캬캬"
그녀도 수영을 하지 못한다.
"크크크크, 제가 못한다 했잖아요, 차장님도 들어와요 빨리."
그래, 넌 정말 말하는 게 다구나.
숨은 뜻이란 게 없어.
그녀는 물에서 나와 흑발의 긴 생머리를 쓸어 넘긴다.
"와, 물 되게 깊어요, 발 안 닿요."
잠수하는 법 영상부터 찾기 시작한다.
벌써 5일째.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수영장에 들어간다.
해가 머리꼭대기로 올라오면 방에 와서 샤워를 하고 일을 하러 나간다.
땀이 범벅되어 들어온 오후에는 다시 수영장에 들어간다.
나는 무언가를 이렇게 열심히 한 적이 있던가?
학생 때도 성인이 돼서도 열심히 해보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좋아하는 것만 잘하고 관심이 없는 것은 그냥 해야 돼서 하는 거였다.
"저 입사하기로 하고 출근 직전날에 중학교 때 남자친구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뭐? 중학생 때??"
"네, 크크 차장님은 안 사귀었어요? 크크 아무튼 연락이 와서 만났는데 오랜만에 보니까 남자가 됐더라고요."
수영장 옆의 침대처럼 생긴 등나무 의자에 앉아 수다를 떤다.
망고주스는 놓칠 수 없고.
그녀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야 그래도 회사원이랑 학생 연애는 쉽지 않아. 내가 해봐서 알아."
"어 정말요? 그런데 걔 학생 아니에요 대학 안 갔어. 지금 그거예요, 특례? 군대 대신 가는 거 지금 그거 한대요."
"그럼 더 힘든 거 아니야?"
한 템포를 쉬어야 할 때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긴 시간 잠수를 하고 손을 움직이지 않고 허리힘으로만 수영을 하는 것도 꽤 늘어있었다.
물안에서도 찍을 수 있게 휴대폰 커버까지 가져온 그녀는 저장공간이 다 차도록 열심히 영상을 찍는다.
컷, 컷, 컷.
해가 져서 앞이 보이지 않게 되면 방에 들어와 늦은 저녁을 시켜 먹는다.
한 손으로는 영상 편집을 계속하고 입으로는 엠지와 나의 과거가 끝도 없이 흘러나온다.
마치 대나무숲을 만난 것처럼.
사랑을 하고 아팠었고 그래서 어느 밑바닥까지 가봤었고.
친구들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
"이거 진짜 비밀이에요,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요."
하며,
말하면 안 되는 일을 쏟아내는 것이 여행지에서 허락되는 특별한 밤인 건가.
완성된 영상을 보며 한참을 배를 잡고 웃다가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올린다.
-어머, 우리야 너 이게 뭐야?
-잘못 보냈어?
-요즘 이런 것도 봐? 설마 너 아니지?
우린 선글라스를 쓰고 찍었다.
그녀는 자다가도 무섭다며 내 침대로 올라오곤 했다.
하지만 그녀의 기세만큼 범상치 않은 잠버릇은 엉덩이로 밀어내기였는데 떨어질 뻔하다가 잠이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잠이 소중한 나는 발로 엉덩이를 밀어서 아예 떨어뜨려버리고 눈을 감는다.
"어, 어..."
그녀는 뭔 일이 있었냐는 듯이 원래의 본인 침대로 기어올라가 다시 깊은 잠에 든다.
돌아오는 비행기
이번엔 내가 먼저 누우리.
세 칸짜리 칸에서 각 끝을 예약해 놓았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먼저 머리를 대고 누울 계획을 세운다.
확신의 J형.
재밌는 것은.
이렇게 행동하면 얘는 어떨까. 하는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는다.
리원은 필터가 없이 말하며 마음속에 다른 생각이 없는 것이 훤히 보인다.
나 역시 경우의 수를 셀 필요가 없으니 행동이 자유롭다.
차장도, 언니도 아닌 그냥 나.
탑승이 거의 완료되어가는 데, 평일에 휴가기간도 아니기 때문인지 비행기가 더 이상 차지 않는다.
리원은 주섬주섬 파우치와 아이패드를 챙기더니 복도 옆 비어있는 세 칸으로 이동한다.
"오, 개꿀. 차장님. 전 여기서 잘게요."
기절 후 5시간은 참으로 짧다.
웅웅 거리는 기내 소음도 방해할 수 없다.
한국에 도착하면 새벽 6시경이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