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줘

쉬어가는 이야기, 짧은 동화

by 아는개산책
교실


교실 문을 열기 전, 잠시 멈춰 서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학생들의 똘망한 눈을 마주하는 것은 늘 설렘이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시도를 해보려는 날에는 또 다른 긴장감이 몸을 감싼다.


'초.. 초보가 아니다. 나는 고수. 나는 고수.'


후읍.

찰칵-


"선생님! 오늘 자습 아니에요?"

"어제 진도 다 끝났는데."

"손에 또 뭐 잔뜩 들고 왔어, 봐 봐"


교탁 앞에서 다시 한번 숨을 고른다.

숨을 고르는 동안 너희들의 마음도 진정되길.


"자, 오늘은 40분간 불편해지는 연습을 할 거야."


역시 반갑지 않음을 알리는 웅성거림이 일지만 지금부턴 멈추지 않는다.


"이 교탁 위에, 마스크, 안대, 얇은 노끈이 있어."


"고문이요?"


태수의 굵은 목소리가 칠판을 때린다.

그는 늘 강한 어투로 집중을 만들어낸다.


'식.'


눈을 맞추고 싱긋 웃어준 후 말을 잇는다.


"오늘은 상황극 하려고. 이것들 중 하나를 골라서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안대로 눈을 가리고 이 노끈으로는 팔이나 다리를 하나 묶는 거야. 그리고선 전원 모두. 사십 분 동안 한 가지 물건을 팔고, 반드시 한 가지 물건을 사야 해."


"에에? 다 가리고 묶고 어쩌라고요"


아예 다른 얘기가 아닌, 그냥 하기 싫다는 이 즉각적인 반응은 오히려 주제 안에 있어 좋다.


"자, 이제 하나씩 가져가자 여기, 선희부터."


그렇게 서선생은 무작위로 하나씩, 모든 학생들에게 물건을 전달한다.


말 한마디 보태지 않는 녀석들이 없지만, 글쎄. 도구를 착용하면 어떻게 변할까.


예상대로

난장판이다.


이들의 세포는 반항과 도전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끌어주는 이를 따르고픈 마음도 존재한다.


통제가 싫지만 통제해 주기 바는 마음.


그렇게 40분이 흐른다.


"아우 끝났어."


한 명이 마스크를 벗자마자 던지더니, 다시 눈치를 보며 천천히 줍는다.


"답답해 이게 뭐야아"

"니는 제대로 하지도 않더만 내가 다 봤어"


서선생은 회수된 도구들을 가지런히 놓고 교탁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본다.


"쌤 이런 쓸데없는 건 왜 하는 거예요?"


우혁이 묻자,

유리가 쏘아붙인다.


"지나 쓸데없지"

"아씨 뭐래, 재수 없는 게"

"니나"


결국 보고 있던 서선생이 입을 연다.


"너희들이 수업 시간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 아는 사람?"


찬 물을 끼얹은 듯 고요함이 찾아온다.


"꼭 나뿐만이 아니고. 친구, 가족, 먼 친척, 누구에게라도. 어느 날 갑자기 또는 처음부터. 가 선택하지 않아도 불쑥 찾아오는 불편. 그게 오늘의 주제였어."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너무 불편해요."


태수의 한마디에 아이들 절반이 침묵의 무게를 깨며 깔깔대는 것과 동시에 종이 울린다.


"오늘 수업, 끝."


"주제만 말하고 끝이라고요? 뭐야~아싸."


서선생은 미소를 잃지 않고 말을 마친다.


'이미 알고 있잖아. 네들은 어른들보다 빠르니까.'


아이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그 단어.


과연, 뭐였을지.



교무실


"하아아아아아아아"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털썩.

책상에 쓰러지듯 엎드린다.


"서선생님. 이 학교가 무너지면 이젠 서선생님 때문입니다."


김선생이 서선생의 한숨을 기다렸다는 듯이 막대기를 툭툭 치며 돌아앉는다.


"오늘도 뭐 새로운 거 하시던데요?"


"네, 불편함이요. 쓰읍.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늘 시작은 호기로운데... 거기까지인가 싶기도 하고."


김선생은 동의인지 예의인지 모를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든다.

서선생은 김선생을 멀뚱히 바라보다 묻는다.


"선생님은, 어쩌다 선생이에요?"


호기롭다.


"네? 하, 그야 서선생님을,"


"헐. 저를 만나려고 그랬다는 그런 말씀은 아니겠지욧 설마."


서선생이 정색을 하며 책상에 엎드렸던 몸을 일으키자, 김선생은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는다.


"찾아오신 분이 있네요, 저기, 학부모 같은데요."


"어?"


돌아본 뒷 문 유리에 사람의 형상이 비친다.


"아,, 내일부터 새로 전학 오는 애가 있어서. 말을 못 하는 아이라 하더라고요."


"아니면 수업방식에 항의하러 오셨던가"


"설마. 벌써요?"


긴장감에 목소리가 높아진다.


"농.담.입니다. 그리고 선생 되는데 꼭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돼요? 사고처럼 그렇게 기회가 오기도 하는 거죠. 누구 말씀처럼"


김선생이 책과 막대기를 잡고 일어선다.


"응?"


"그냥 하는 겁니다, 선생님. 오늘도. 파이팅."


오늘은 주먹대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떠 보이고는 유유히 사라지는 김선생의 뒤 본다.


-뒤통수가 력... 에?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서선생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하굣길


치마아래 체육복을 겹쳐 입은 여학생 셋이 걸어내려간다.


휴대폰 삼매경인 유리와 그녀의 팔짱을 끼고 팔랑이듯 걷는 난희.

우유는 아까부터 말없이 길에서 주운 병아리 모양의 키링만 만지작 거린다.


"그 키링 나 주면 안 돼? 내 가방에 딱 한 개가 부족해."


난희는 키링이 잔뜩 달린 가방을 흔들어 보이며 낚아채려 시도하지만 키가 큰 우유는 키링을 번쩍 들어 그녀의 손길을 피한다.


"칫, 야. 울 담임, 특이하지 않냐? 맨날 이상한 말로 머리 아프게 하고. 불길에 뛰드는 타조 아니고."


"나방이겠지. 불나방."


유리가 난희의 말을 정정한다.


"얼굴이 타조처럼 작잖아. 크크."


우유는 말없이 병아리 키링을 요리조리 돌려본다.

그러다 던진 말,


"그래도, 난 새롭던데. 자기 선택이 아니라는 말."


"불편?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어차피 내 일도 아닌데."


우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난희가 얘기하며 바닥에 놓인 자갈을 축구하듯 툭툭 차서 앞으로 보낸다.


"내 책임이... 아니라는 말 같잖아."


우유의 자신없는 목소리에 휴대폰만 보던 유리가 날카롭게 을 보탠다.


"어. 본인이 선택해서 그 상황에 있는 게 아니니까. 우유 너도 마찬가지고. 나도. 난희도."


"그래도 친하면 몰라, 옆에 불편한 사람 있으면 불편던데. 꼭 아무것도 안하는 내가 나쁜 사람 같고."


난희는 자신은 착한 척하는 데엔 재주가 없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안 겪으면 모르지. 함부로 판단할 것도 아니고."


딱히 누구 들으랄 것도 없이 말하는 유리의 직선적인 말투.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라...


"너는 뭐 겪어봤냐, 세상 부잣집 따님이."


궁시렁 대는 난희는 때론 유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사는 아이 같다.


"도와줘."


우유가 고개도 들지않고 키링만 보며 얘기한다.


"뭘?"


난희가 우유 으로 다가와 붙는다.


"도와줘... 애들이 가장 많이 한 말."


우유가 담담히 얘기하자 난희는 에이 모야, 하면서도,


"맞어, 그 말이 필요했지. 욕이랑 같이 크크"


"진짜 힘든 건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아야."


유리의 말에 우유는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스쳐가는 그녀의 뒤를 바라본다.


유리는 한때 생활고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우유에게 너의 탓이 아니라고 말했었고. 실제로 그렇게 대해왔다. 치 우리는 다 괜찮아야 한다는 듯이.


이미 힘든 건,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이.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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