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쉬어가는 이야기, 짧은 동화

by 아는개산책

'그 남자 그 여자' 또는 '네. 아니오. 왜'와 이어지는 글 일 수 있습니다.



산타가 올까



아이의 방을 청소하러 문을 연 엄마는 책상 위 쪽지 한 장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어 보인다.


+산타할아버지께. 올해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드래곤볼 42권을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애야. 어른이야."


엄마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옆에 놓인 수정액을 들어 조심스레 덧입힌다.


42권이 순식간에 2권이 된다.


초등학교를 자퇴하고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아이가 물었다.


"올해 우리 집에 산타가 올까?"


"안 울었으면 오겠지."


"어디서 오는데?"


"오는 데 일 년 걸리는 곳?"


"우리네 집에도 올까?"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던 여자아이, 우리라는 아이가 자기 모습 같았다던 시준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네 집엔 젊은 산타가 대신 가려나?"


아이는 정색한 표정으로 벽만 바라보며 말이 없어졌다. 엄마는 그 모습이 웃기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손에 만 원짜리 한 장을 슬며시 쥐어주자 아이는 그대로 벌떡 일어나 황급히 집을 나섰다.


-내가 산타가 돼줄께!



우리 봄날


시준은 우리에게 엽기토끼 인형을 던지듯이 건넸다.

우리는 이게 뭐냐는 듯 눈을 말똥히 뜨고 빤히 쳐다본다.


"흠,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호오. 오빠가 산타한테 대신 받은 거야?"


엽기토끼의 불량한 표정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품에 꼭 안아보는 우리.


"응 뭐. 그렇다고 할 수 있고. 그런데, 너는 산타를 믿어?"


"응."


"너 몇 살이랬지?"


"보이지 않는 건 더 믿을 수 있어."


"증명할 수 없어도?"


"증명 못하니까, 있는 건데. 내 맘. 헤헤"


말을 마치자마자 현관문이 열린다.

신발도 벗지 않고 현관 문턱에 앉아 있던 둘의 눈이 동그래진다.


키가 큰 아저씨는 키 작은 전나무 하나를 손에 들고 서 있다.


"여기. 누구 집이야?"


"봄날."


우리가 씨익 웃으며 벌떡 일어난다.

봄날이라 칭해진 아저씨는 잠시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와 알고 지낸 이후로는 현관의 문이 잠기지 않게 설정한 지 오래였다.


"아저씨, 나무 구해왔어?"


아저씨는 방으로 들어가 낱말카드 몇 개를 집어왔다.

그는 말을 하지 못한다.


-왜


카드를 들어 보인다.

우리는 익숙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이제 그림만 그려 넣으면 되겠다, 도화지도 사 온 거지?"


아저씨는 말없이 도화지를 내밀었다.


'말도 못 하는 아저씨랑.'


시준은 조심스럽게 우리와 아저씨를 번갈아보았다. 우리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 소시지 몇 개를 가지고 나온다.


"어? 마음대로 그래도 돼?"


"응, 이거 아저씨가 나 먹으라고 사놓은 거야. 참, 아저씨 이름은 봄날이야. 내 친구."


우리는 말하며 천하장사 소시지 한 개를 건넨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시준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마루에 엎드려 우리와 함께 별모양과 지팡이 모양들을 그리고 있다. 봄날이라는 아저씨는 식탁에 앉아 그런 둘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인상이 나쁘진 않다.

오히려, 포근해 보이기도 하다.

우리의 친구라서일까?


"그런데, 우리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시준은 작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물었다.


"크리스마스에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축복하려고."


-읭, 그런 말은 누구한테 배운 거야.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직 아이인 본인이 선물을 받고 놀러 가자고 졸라야 할 초등학생은.

요즘은 다른가.


"이거 봐봐, 내가 루돌프 그렸어. 이거 타고 오늘 밤에 봄날 아저씨 방에 들어와서 선물 놓고 간대요."


우리가 루돌프가 말하는 말 그림을 흔들어대며 말하자 가만히 앉아있던 아저씨가 흠칫한다.


'이제 밤에도 문을 잠그지 말라는 소리야?'


"참, 아저씨는 받고 싶은 게 뭐야?"


'선물은. 꼬마가 무슨.'


하지만 아저씨는 우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아니, 더 시끄럽게 하고 싶진 않다.

아니. 우리의 말에는 항상 정성껏 대답해주고 싶다.


낱말카드에 섞여 있는 자동차 그림을 들어 보인다.

정성껏 람보르기니다.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시준은 풋, 웃음이 터진다.


"저거, 엄청 비싼 거야."


시준이 작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속삭이자,


"아, 아저씨는 많이 울어서 산타가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대."


대뜸 딴소리를 시전 하는 고우리.


-왜


아저씨의 '왜'라는 낱말카드를 보인다.


"그때 내가 처음 들어오기 전까지 어, 여기서 맨날 사자울음소리 나는 거 내가 들었거든."


아저씨는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카드를 든다.


-네


아저씨가 들고 온 키 작은 전나무에 별그림과 사탕그림, 천사들이 색을 입고 걸려있다.


마지막으로 아저씨가 들고 온 봉투에 있던 싸구려 전구 한 줄을 두르고 전기를 연결하자 그럴듯한 트리 하나가 완성된다.


"트리! 봄날 아저씨 집. 우리 트리. 우리, 봄날, 시준, 완성!"


눈을 반짝거리며 우리가 말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시준은 나지막이 말하며 우리와 봄날아저씨를 보고 멋쩍게 웃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오빠, 봄날아저씨. 그리고 나."


봄날은 두 아이의 모습을 보는 내내 마음속에 파도가 지나간다.

불안하고 암울했던 지난날의 모습이 썰물처럼 뒤서거니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행복이 밀물처럼 앞서거니.

윤슬이 반짝이는 것 같다.


-같이... 가 좋은 거네.


반짝이가 잔뜩 붙은 산타가 그려진 크리스마스 카드.

며칠 전부터 사놓았던 크리스마스 카드를 두 아이에게 건넨다.


카드에는 같은 문구가 흔들리는 글씨체로 적혀 있다.


+ MERRY CHRISTMAS. 고마워. 행복해.+



친구


"엄마는 친구 많아?"


설거지를 하는 엄마 옆으로 슬금슬금 오더니 물을 마시려는 듯 마는 듯 엉거주춤 자세로 아이가 묻는다.


"엄마 친구? 내 가장 가까운 친구는 같이 살고 있는 걸로 아는데."


엄마도 현실에 치이다 보니 친구라는 단어를 품었던 지가 오래다.


"음."


"친구랑 놀았어?"


아이는 몇 해 전 친구들과의 문제로 출석을 포기하였다.


"꼭. 같은 학교 같은 학년 애들만 친구는 아닌 것 같아."


친구라는 단어를 더 이상 듣기 싫어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그래? 그럼 어떤 친구 만났어?"


"함께 있고 싶은... 친구들."


"함께 있고 싶은 친구들이랑 놀았어?"


"응. 함께 있고 싶은 친구랑 함께 있으니까 좋아."


"엄마도 네랑 노는 게 제일 좋은데. 내 베스트 프렌드."


엄마는 설거지를 하다 만 손을 에이프런에 대충 닦아내고 아이의 코를 귀엽다는 듯 잡아 흔든다.


우리 서로에게 쭈욱 좋은 친구가 되어주자.


"메리 크리스마스, 아가."


"나도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 드래곤볼 두권이어도 사랑해."


wish your merry christmas.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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