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눈이이 (1)

내가 지키는 방식

by 아는개산책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사정이 있었는데.


아니요.

사정을 다 말할 수 있을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잖아요.

그러니.


함부로 하지 말아요.


일하는 사이끼리.



아는 사람 vs 모르는 사람


점심을 마친 뒤 마주 앉아 휴대폰을 보며 미적거리는 순간에야 안부를 묻는다.


"주말 뭐 했어?"


"저요? 전 결혼식이요. 친구."


휴대폰에 뜬 오늘의 뉴스를 훑어본다.


"차장님, 그런데, 나 뭐 좀 물어봐도 돼요? “


“뭔데”


김차장만이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태수를 바라본다.


"내가 주선해서 결혼했거든? 내가 소개해줬단 말이야 이번에 결혼 한 애들”


"너 친구 없잖아”


김차장의 말에 나도 무슨 장난을 보탤까 싶어 태수를 본다.


"아,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아 이번에 내가 주선했는데 아무것도 없어."


"뭐가 없어"


"보통 주선자한테 양복 한 벌 해주는 거 아니야? 최소 넥타이라도. 난 차장님이 나 소개해줘서 결혼하면 위아래 에르메스 정장 뽑아줄 건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차장과 나는 동시에 말한다.


"그럴까봐 안해주는거야."


“너 에르메스가 뭔진 알아?”


“아 왜! 나도 알아 다!”


주선자에겐 어느 선에선 답례를 해주기도 한다지.


"기다려봐. 나중에 주겠지."


"아, 나중은 무슨 나중. 결혼식 다 끝났는데. 초콜릿 사 온다고 하던데. 그렇다고 내가 뭐 해달라고 말하긴 그렇잖아. 그치?"


보통 서운한 말투가 아니다.

영 이해 못 할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이랑 모르는 사람이 싸우면 누가 열받게? 예의 있는 사람이랑 없는 사람이랑 싸우면 누가 이기게?"


조용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둘은 조용히 내 입만 쳐다본다.


"원래 아는 사람만 열받아. 모르는 사람은 편해. 옛날에 공자도 그렇게 한숨을 쉬었대. 이 중생들을 내가 다 가르쳐야 하는구나 하고. “


"그니까. 아 씨 진짜. 근데 그거 상식 아니야? “


"어. 가지고 있는 상식이 차이가 날 수도 있지. 이제 우리 심정 알겠어? “


"뭐? 뭐야 또 무슨 심정."


"너랑 일하는 우리 심정. 속이 다 까맣게 타들어간 거 안 보여? 크크크"


말하며 일어나 회의실 문을 연다.


"아씨, 뭔데. 뭐. 왜 또오. 나 상식 많아아!"


김차장과 나는 오늘의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시원한 기분으로 회의실을 나선다.

씩씩 거리며 나오는 태수를 보며 한껏 웃어주는 데 전화가 울린다.


"네, 고우리입니다."


"아씨,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해요?"


조용한 사무실에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부터 울려 퍼진다.


"네?"


"저 여아린 데요 정말 이런 식으로 밖에 못하세요? 제가 왜 점심시간에 모르는 사람 전화를 받아야 해요? “


내가 건 게 아니라 난 받았는데?

그런데 누구…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본다. 오늘은 처음 오더가 들어온 A 사의 기계가 서울로 올라온다고 한 날이다.


"아, A사…“


"네, 맞고요. 아씨, 진짜 짜증 나네? 메일 보낼 때도 며칠씩 답도 늦게 보내더니. 픽업하나 제대로 못해서 나한테까지 전화가 오게 해요! 왜!"


주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소리 지르는 여주임의 목소리에 섞여 전해진다.


-웃는 건가?


나는 휴대폰을 귀에서 살짝 떼어내고는 나의 심장소리에 주목한다.


두근두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오더 자르기


일주일 전, 독일에서 전시 작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이메일을 확인했다.


'리마인더?'


제발 빨리 답을 달라고 재촉하는 이메일이 그 회사의 대표메일과 여러 계정들 그리고 우리 회사 대표메일과 개인 계정으로 참조가 걸린 채 도착해 있었다.


"금요일 저녁에 보내고, 월요일 오후 리마인더라..."


한국시간으로 계산하니 월요일 오후가 되도록 회신이 오지 않는다고 재전송을 한 모양이었다.


해외에 나와있어 답신이 늦었다는 말을 시작으로 회신을 하고 진행을 하게 된 신규업체, 담당자는 여아리라는 이름의 주임이었다.


기계가 서울로 올라와야 하는데 아는 운송사가 없어 대행을 부탁받아 트럭회사에 대신 오더를 넣어주었다.


그런데.


"아니, 트럭기사가 왜 나한테 전화를 해요? 내 이메일 못 봤어요? 거기 앞은 막혔으니까 돌아오라고 메일에 써놨잖아요! 그런데 왜 점심시간에! 나한테까지 기사가! 전화 오게 하냐고!"


요점이 뭐지.

요지를 빨리 파악해야 선점할 수 있다.

싸움을 걸어오면은.


"아, 죄송합니다. 기사분이 길을 잘 못 찾아서 전화드린 것 같은데, 제가 한번 통화해 볼게요."


"죄송이고 뭐고! 메일 보고 똑바로 좀 하시라고요! 다시 전화 안 오게 해 주세요! “


기사님한텐 어떻게 대했을까.


"아, 네, 저 그런데 기사님이 몇 시쯤…“


뚝.


정말이야?

이천 년대에도 이런 태도가 실존한다고?


나는 통신이 끊긴 내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귀가 얼얼했다.


'헐'


앞자리에 앉은 리원이 눈이 마주치자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다 들었다는 듯이.


조금 떨어진 거리의 김차장을 돌아본다.


"이야. 센데."


모니터를 보고 있지만 내 시선을 의식한 듯 고개를 양 옆으로 까닥거린다.

다시 한번 머릿속을 비우고 생각을 정리한다.


강강약약.

눈눈이이.


경력이 쌓이면 좋은 것이 있다.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며 인정받아야 하는 데는 이러한 이유도 있다.


내가 내 목소리를 내고 싶을 때,

주저 없이 행동하는 것.


나 그러려고 열일한 거야.


거절하고 싶을 때 거절하려고.


여아리 주임의 이메일에 전체회신을 건다.


-네가 씨씨단 모든 사람들이 보고 판단하겠지. 지금 네가 무슨 행동을 한 건지.


혼자 당하고 혼자 상처받아 울고 있을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


리마인더 메일부터 시작해서 오늘의 일까지.

업무적으로 소중한 고객은 맞지만 인격적으로 상사와 노예의 관계가 아니다.


어차피 긴 말은 필요 없고 개인적 공격이 되지 않도록 감정은 배재한다.


+... 저는 주임님과 함께 일하는 친구도 아니고 아랫직원도 아닙니다. 기회를 주신 건 감사하지만 고성에 압박을 받아가며 계속 진행하기에는 제가 담당자로써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폐사의 대처가 여러 가지로 만족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다시 드리며, 불편하시다면 다른 업체로 진행하셔도....+


등의 내용으로 마무리한다.


나는 후배들에게도 늘 스스로를 먼저 지키라고 말해왔었다.


단순히 흘려보내면 안 돼,

내가 무심히 보낸 감정은 때론 내 안에서 고이고 썩어가다가 스스로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


포털 사이트를 열어 업무상 갑질을 검색한다.


- A사 사장 이름이 여씨던가?


심장이 뛴다.



퇴근


음악을 크게 틀고 창문을 모두 연다.

잠시라도 해방감을 느끼기 위해서.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난 포기하지 않아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이 순간,

너무 행복하잖아!


전화가 울리고 등록되어있지 않은 번호가 화면에 뜬다.

때마침 신호등엔 빨간불이 들어온다.


그런 날이 있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한 순간에 모든 것들이 신호처럼 느껴지는 순간.


"네, 고우리입니다."


퇴근시간 이후엔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 것이 나름의 기준이었다.


사무실을 나오는 순간 그날의 일은 모두 잊을 것.


오랜 시간 같은 일을 반복한 나의 생존 방식.

이라고 하기엔, 너무 신입 때부터인가.


"안녕하세요. 저는 A사의 김일권 부장이라고 합니다."


오후 내내 더 이상의 이메일도 전화도 없었다.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시작이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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