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눈이이 (2)

알 수 없다

by 아는개산책

눈눈이이(1)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걸려온 전화


앞 유리창으로 신호등 남은 시간을 확인하다가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아, 네... 안녕하세요."


"네, 수고 많으십니다. 고우리 차장님? 보내주신 메일은 잘 받았습니다."


말투는 점잖으며 서둘지 않는다.

그는 초조하지 않다는 뜻이다.

오히려 내가.


"퇴근하셨을 텐데, 이렇게 전화드려 죄송합니다. 차장님."


이 분은 예의까지 챙긴다.


"아, 아닙니다. 부장님. 제가. 뭐. 네. 무슨 일이신가요?"


"네, 다름 아니고, 보내주신 메일은 잘 보았습니다. 뭔가 저희 팀 직원이 실수를 한 게 있는 것 같아서요, 그것도 아주 큰 실수를요. 혹시 자세히 좀 얘기 들을 수 있을까요? 시간, 시간 괜찮으시면."


"아... 네, 뭐 그렇게 큰 실수는 아니고요. 다만..."


나는 오후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나름 가감 없이 객관적으로 전달되도록 애써보지만 사람이라는 게 자기 입장의 변호를 완전히 내려놓긴 어려울 것이다.


"아... 그런 일이…하…. 희한하네요. 여아리 주임은 회사에서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뭔가 제가 팀원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해서 밖으로 이런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제가 우선 사과드리겠습니다, 차장님."


"아, 아니요. 부장님께서 사과할 일도 아니시고, 사과해 달라고 제가 메일을 쓴 것도 아니고요, 부장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너무, 오히려 죄송합니다."


사실이다.

몸 둘 바 모르게 된 것은 오히려 나 자신이었다.


"차장님도 하시는 일에 고충이 많으실 텐데, 저희가 갑질 아닌 갑질을 한 것처럼 돼서. 아마 여아리 주임도 정말 괴롭히려고 한 것은 아닐 거예요. 조금 양해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 돼요, 돼요. 저는 어차피 다 잊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업체로 바꾸셔도 된다고..."


"아니요. 차장님. 저희는 차장님 쪽 하고 계속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진행해 줄 순 없으실까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여아리 주임도 제가 아주 혼을 내주었습니다 오늘. 하하하"


"하.. 하하.... 네... 아이 네 그럼요. 일은 원하시면 계속하면 되죠. 네... 아휴. 이렇게 전화까지 주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한 손으론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론 연신 무릎을 쓸어내린다.

메일 하나 보내놓고 무릎 닳겠다.


"저희 팀원이 잘못한 일에 팀장으로서 당연히 직접 사과드려야죠. 저희가 부산만 아니었으면 회사로 찾아뵈었을 겁니다. 차장님."


-아... 부산이어서 다행이다...


전화를 끊고 바짝 마른 입술을 손가락으로 문질러본다.


무슨 일이 지나갔는지, 운전을 어떻게 하고 주차장에 도착했는지 멍한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데 지잉 하고 다시 휴대폰이 울린다.


"으악"


카톡선물하기로 커피와 케이크 쿠폰이 도착해 있다.


핸들에 머리를 박아버린다.


그래. 다 잊자.



다시 시작


8시가 되기도 전에 사무실에 도착한다.

보낸 메일을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보고 싶었다.


+A 사에서 올라온 기계 도착했어요? 방콕 가야 하니까 진행부탁드립니다.+


동시에 공장에 문자를 보낸다.


-그런 팀장 밑에서 일한다니...뭔 복.


턱을 괴고 잠시 어제의 통화를 떠올린다.


직원의 허물이라면 허물을 보았을 때, 그렇게 행동하고 말할 수 있는 상사가 얼마나 될까.

자기들끼리 얘기도 아니고. 타회사에 전화까지 해서.


조금.

부럽다.


-진짜. 사장 딸인가?


지이잉-


휴대폰의 시각이 9시로 바뀌며 여아리주임의 번호가 떠있다.


-설마 직접 사과까지 하라고 시킨 거야? 오우 노.


"네, 고우리입니다."


"차장님, 저 A사 여아리입니다."


"네, 주임님, 안녕하세요. 지금 기계는 잘 도착한 거 확인했고요, "


"아뇨, 기계 다시 부산으로 보내주세요."


"네?"


"저희가 아직 진행할지 말지 못 정해서요. 기계는 다시 저희 사무실로 좀 보내주세요. 주소 아시죠?"


"아, 다시요? 지금 취소하시면 다음 일정은 빠듯해서 다시 진행은 어렵습니다. 정말 취소해 드려요? 비용만 추가되는 건데."


"네, 계산서 보내주세요."


빠르고 건조한 말투는 바뀐 게 없다.

소리를 지르고 있지 않을 뿐.


"아 네에... 그럼 이메일로 좀 요청..."


뚝.


-아놔. 너 딸이지.


뭐가 어떻게 된거여.

어젠 김부장이 아니고 스팸이야?

모야.


김부장이라는 분한테 다시 전화를 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가 일단 기계를 다시 부산에 내려보내는 오더를 내렸다.


-같은 팀이라면서, 주임이 혼자 단독으로 그러겠어.


오전 시간은 꽤 빨리 흐른다.

점심을 먹고 오자 모니터 안에 왓츠앱이 주황불이 들어온 채 깜박인다.


태국 전시회를 진행하는 파트너사 담당자였다.


+ms, 너 A사 진행해?+


+안녕. 어, 하려고 했는데 안 됐어. 네가 어떻게 알아?+


+그 여자 좀 이상해. 조금 전에 우리한테 왓츠앱 매니매니 보냈어.+


파트너는 여아리와 얘기한 내용을 캡처해서 나에게 보냈다.

느낌표가 여러 개씩 들어가 있는 그녀의 문자.


한국에 고우리 다니는 회사 말고 다른 회사 없냐며, 대답은 또 왜 빨리 안 하냐며, 서비스가 안 좋아서 이 회사랑 할 수 없다 등등의 내용이었다.


"헐. 완전 새는 바가지네."


혼자 중얼거리며 내용을 마저 읽는데 피식 웃음이 나온다.


파트너는 태국 전시회의 공식업체로 지정된 회사였고, 그들은 우리 회사를 한국 공식 파트너로 지정한 상태였다.


다른 업체는 없으니 한국에선 고우리 담당자랑 진행해야 가능하다는 답변을 마지막으로 그들의 대화가 끝나있다.


오랜 시간 쌓아놓은 파트너십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재밌네."


어떻게.

다시 오시겠어요?




(3편에서 이어집니다.)

이전 12화눈눈이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