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개팅, 그 후
우리의 소개팅 (2)에서도 이어지는 글입니다.
단 한 번의 싸움도 없었다. 심지어 사소한 말다툼도 하지 않았다.
우리 사이엔.
좋아요.
또는
괜찮아요.
뿐이었다.
인연
“그럼 고차장님은 이상형이 뭐예요?”
퇴근길 카풀 중에 심과장이 물었을 때, 나는 친구들에게도 늘 하던 같은 대답을 했다.
“착한 사람”
“뭐야, 그냥 착하기만 하면 돼요?”
“네, 착하고 똑똑하고. 담배 안 하고 당구 안치고 게임 안 좋아하는 사람이요.”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덧붙였다.
“허허, 많네요. 성격은?”
“성격? 내가 맞추면 되죠. 착한 성품은 뿌리예요. 뿌리만 좋으면 웬만한 성격은 내가 다 맞추면 돼요.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니까. “
“아- 그래요? 허허”
"그랬었어요. 예전에는. 흐... 지금은 글쎄. 잘 모르겠어요."
나는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상형을 정리해 놓고 그에 가까운 사람을 만났을 때,
두 사람의 관계를 방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만 잘하면 돼.
나만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이 깊은 사랑을 주면 돼.
서른이 넘어 스스로의 앞가림도 부족함 없이 하는 성인의 연애에 또 다른 어른이 영향이 미칠 수 있을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지구상에 수억 명의 인구가 사는 만큼 수억 명의 사연이 있고
그 수많은 사람 중에도 생판 남이었던 두 사람이 인연을 하나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겨우 삼십 년 살아온 한 사람만의 다짐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두 사람 모두 열과 의와 온 마음으로 노력해도.
될까 말까...
그것이
결혼의 연.
처음 만난 소개팅 자리에서 성시경의 '두 사람'을 불러주던 아이.
좋아했다.
아니
했었다.
열심히.
벌써 몇 개월 전의 일이 되었다.
하지 못한 말
“꼭 안 가도 되는데. 정말 갈래요?”
나는 진영을 보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 명절이기도 하고. 부모님 허락하에 만나면 더 좋잖아요?”
나는 어른들을 대하는데 겁이 없었다.
어떤 어른에게도 대찬 미움을 받아본 기억이 없어서 더 그랬다.
-그리고 사람을 이렇게 착하게 키운 분들이면 얼마나 좋은 분들일까.
진영은 몹시 감동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와 하는 모든 것들이 처음인 그는 자주 그런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실은... 내가... 말 못 한 게 있어요..."
“무슨?”
나는 눈이 동그래져 물었다. 얼굴에 붉은기가 돌도록 망설이는 그의 표정에서 이 나이에 이토록 말하기 어려운 일이 무엇일지 내 깜냥으로는 감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실은 내가... 월급을 주식에 다 몰빵 해서... 하... 다 마이너스... 그래서 지금 모아놓은 돈이 없어요, 하나도...”
아, 난 또 뭐라고.
“괜찮아요. 내가 잘 벌잖아. 그리고 시작할 때 꼭 돈이 많을 필요는 없어.”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을 시작하려면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아직 사귀기로 한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진영 씨도 이제 S사로 옮기잖아요. 다시 열심히 모으면 돼.”
“어, 그럼요. 진짜 앞으로 열심히 모을게. 주식도 안 하고. 그리고...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정말로.”
“아니야 나도 항상 고마워 진영씨한테.”
“그런데... 하나 더 있는데...”
연애경험이 없던 사람이 연애를 시작하면 어떤 것이 심각하고 어떤 것이 무난한지 그 기준이 다른 것처럼 보였다.
“사귀기 전에 말했어야 했는데...”
미안함과 불안함이 뒤엉킨 표정으로 그는 본인에게 꽤 큰 상처였던 가정사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 조차도.
“아... 어린 나이에... 많이 힘들었겠다.”
나는 그저 가만히 그를 안아주었고 그는 눈물을 훔쳤다.
가정사는. 그의 탓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미안할 일도 아니었다.
다.
괜찮았다.
내가 좋아한 건 그. 였으니.
우리는 예정대로 지방에 있는 그의 집에 여행 겸 인사를 가기로 하였다.
더욱 견고해진 마음을 붙들고.
그렇게 막상 그의 집에 다다랐을 때.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 위에 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이라는 그 검정 대문 앞에서 그는 마치 남의 집에 온 사람처럼 한참을 망설이다가 초인종을 눌렀다.
"저... 실은... 말할게... 하나 더 있는데... 일단, 들어가서 말해줄게. 가자."
"응?"
그는 검정 대문을 밀어 열었고, 작은 정원 위의 돌길 끝에 맞닿은 마루에는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개량한복을 입고 온화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오른손부터 팔꿈치까지 하얀 붕대를 두른 채로.
"진영이 왔니?"
갈비
하지만 그의 집에 도착한 지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각에 우린 다시 차 안으로 들어와 있다.
마루 끝에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마치자마자 그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내가 음식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손이 이래서.'
'엄마, 손 괜찮아?'
'어어 움직이지만 않으면 괜찮대. 어떻게 너 오는 날 딱 새벽에 이래 가지고. 손님도 제대로 못 맞고... 어휴, 미안해요 아가씨.'
'아, 아니에요. 손... 정말 괜찮으세요?'
두 손을 휘휘 저으며 대답했다.
'어... 그래서 진영아, 다른 건 다 있는데 갈비를 못 샀어. 네가 지금 좀 사 올래?'
'네, 제가 갔다 올게요.'
'그래, 저기 현대백화점 가서 사야 한다. 거기거가 아빠가 좋아해. 아버지 곧 오시니까 지금 바로 다녀오면 되겠다 응?'
그렇게 우린 마루 위를 한 발 디뎌보지도 못하고 다시 돌길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처음 온 동네에서 현대백화점 위치를 찍고 내 차에 앉아 운전을 하는 진영을 보면서 나는 새로운 걱정이 들었다.
"갈비... 얼마나 사야 하지? 나 그런 거 잘 모르는데."
"아, 엄마한테 물어볼까?"
"아, 아니야. 4명... 먹을 거라고 하면 되겠지?"
나의 엄마는 일찌감치 내게는 요리의 자질이 1도 없다는 걸 알아보신 분이었다. 가르칠 생각도 하지 않으셨지만, 마트 심부름도 거의 시키지 않았었다. 학생땐 공부가 본분이었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일하느라 피곤한 딸. 엄마에게 난 그런 둘째 딸이었다.
-테스트... 같은 건가? 어휴.. 어른 상대로 내가 무슨 생각을...
백화점에서 주는 대로 4인분 갈비를 받아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 드디어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었다.
티브이 소리 하나 없이 숨 막히게 조용하던 그 집.
"어, 엄마 부엌에 있다."
안쪽에서 그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 진영은 봉지를 들고 들어가자고 눈짓을 했다.
조용한 집안에 내 발소리가 소음이 될까 조심스레 내딛는 중에 벽 한편에 걸린 어떤 할아버지의 초상화가 눈에 띄었다. 집 안에 있기에는 꽤 큰 사이즈였다.
내가 눈을 크게 뜨고 진영을 돌아보자 진영은 예의 그 선한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할아버지. 아... 우리가 믿는 종교... 만드신 분이야."
"뭐? 하나님?"
왜 그 소리가 튀어나왔을까?
상상도 못 한 말이 상상도 못 한 장소에서 들려왔을 때 나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내뱉고는 본능적으로 입을 가렸다.
그 순간 그의 어머니가 부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 봉지를 왜 진영이 네가 들고 있어, 남자가? 너 아버지가 보면 혼난다. 이리 줘라."
어투는 고상하면서도 한 겨울 서릿발 친 듯 날카롭고 차가웠다.
진영은 주춤하더니 봉지를 엄마에게 건넸고 그럼 위에서 옷 좀 갈아입고 온다며 뒤를 돌아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그런 그를 멍하니 쳐다보다 그의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고, 어머니는 다시 봉지를 요리조리 살피면서 혼잣말을 하셨다.
"어머, 양을 너무 조금 사 왔네. 이걸 누구 코에 붙인다니. 우리 진영이 여자친구는 맛도 못 보겠네."
집 안의 고요한 분위기에 눌린 건지, 진영의 예상치 못했던 종교 언급에 놀란 건지,... 그의 어머니의 혼잣말에 기가 죽은 건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은.
나 조차도 참으로 어색했다.
.
.
(다음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