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3

이별이란 건.

by 아는개산책


식사


"엄마. 아빠. 잘 지내야 돼. 흑흑..."


대학에 합격하고 짐을 먼저 소포로 모두 부친 뒤, 기차역에 데려다주던 아빠의 차 안에서 나는 못내 서러운 울음을 터트렸었다.


"아이고? 다신 못 보냐. 울긴 왜 울어."


조수석에 앉은 엄마는 맥 없다는 듯이 호탕하게 웃었고, 오히려 아빠는 말 한마디 없이 운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둘째 딸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던 차가 기차역 주차장에 들어서자 맑기만 하던 하늘에서 보슬보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야, 여기서 기다려봐."


아빠는 주차장 앞에 있는 상가로 비를 맞으며 뛰어들어가 노란 우산을 사 왔다.


나는 눈물을 그치고 우산을 펴 들었다.

처음이었다.

그렇게 맑고 예쁜 노란 색깔의 우산은.


"이놈 자식. 너는 아빠의 자랑이야. 언제나 바르게 행동하고. 잘 챙겨 먹고 건강하게 지내라. 너는 항상 혼자서도 잘하니까. 아빠가 믿는다. 알지? 요놈 자식아."


아빠가 보고 싶었다.


남자친구의 집에 처음 간 식사자리에서 나는 나의 엄마와 아빠를 떠올리고 있었다.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한 지 십여분은 흐른 것 같은데도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 않고 밥을 먹는데만 집중한다. 나 역시 팔꿈치에 붙어버린 것 같은 팔을 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바로 코앞에 놓인 파랗고 노란 나물들만 집어 먹고 있었다.


-아버지가 좀... 많이 엄하셔. 예전엔 더 심했는데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지셨어.


가족이야기를 하며 꺼냈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부모님은 뭐 하시노."


안녕하세요. 하고 첫인사를 할 때도 고개만 끄덕일 뿐 다른 말이 없던 그의 아버지가 드디어 내게 말을 건넨다.


"네, P사에서 오랫동안 일하시다가... 지금은 외국에 주재원으로 가 계세요."


"그럼, 어머니도 따라가셨니?"


그의 어머니가 바로 뒤따라 묻는다.


"네..."

"서울은 언제 올라왔니?"

"대학 들어가면서 올라와서... 쭉 살았어요."

"그때부터 부모님이랑 떨어져 살았니?"

"네..."


"살림은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겠네 그럼."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식사를 마치자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러자 진영도 쭈빗쭈빗 나의 뒤를 따랐다.


"어머, 남의 부엌 그렇게 함부로 들어오는 거 아니다 얘. 그리고 진영이 너는 뭘 따라오니. 아버지가 부엌에 걸음 하시는 거 봤니? 얼른 나가라. 내가 너 여자친구 잡아먹기라도 하니?"


톤도 높지 않고 말투는 몹시 고상했다. 하지만 그 안의 말들은 조금도 곱게 들리지 않았다.


"저, 제가 설거지 도울게요. 설거지는 잘해요."

"어휴, 됐다 얘. 우리 아들한테 무슨 소리를 들으라고."

"아니... 손이 불편하셔서. 어차피 나중에 하셔야 되는데. 제가 할게요."


나는 입술을 물어 민망함을 감추고 둘 곳 없는 두 손만 모아 만지작 거렸다.


회사에서 늘 자신만만하고 당당하던 고우리는 어디 갔을까.


"그럴래 그럼? 우리는 다 도기그릇만 써서 아주 뜨거운 물로 한번 튀기듯이 헹궈내고 그다음에 두 번 더 씻어야 돼. 면장갑 속에 끼고 고무장갑 끼면 된다. 뜨거운 거 잘 못 참으면 두 개 끼고. 두 개 필요해?"


"하, 하나요."


오전부터 쌓여있던 그릇과 방금의 식사 그릇이 더해졌다.


진영과 그의 아버지는 거실에서 무얼 하는지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고 서걱서걱 사과 씹는 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헤어지자


그의 집에 다녀온 후 그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더욱 애틋해졌다.

만약 내가 느낀 그 분위기가 그가 어린 시절 내내 자라온 그 분위기라면, 나는 그를 더욱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기분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힘들었지?"


"아니, 남의 집 가면 다 어렵죠. 괜찮아. 그런데 그 할아버지 얘기... 뭐였어요?"


"아... 할아버지가 종교를 하나 만드신 게 있어... 그래도 신도가 꽤 많아. 아버지도 믿으시고... 나한테도 이으라고 하시는데 난 내가 결정한다고 했어. 그러니까 신경 안 써도 돼."


-교회에서 직분까지 맡고 있는 엄마 귀엔... 절대 들어가면 안 되겠네.


어차피 성인이니까. 독립해서 살 건데 각자의 종교는 각자가 알아서 하면 되겠지.


"괜찮아. 다 괜찮아."


그를 다독이는 내 목소리가

마치 나에게 전하는 나의 마음의 소리처럼 들려왔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퇴근하는 그의 집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고 있다. 전화를 받고 서둘러 내려온 것 같은 그는 눈이 사라지도록 활짝 웃으며 조수석에 올라탔다.


"이 시간에 왜 왔어? 내가 보고 싶었어?"


나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말을 꺼냈다.


"헤어지자. 우리."


그의 맑고 투명한 눈이 빠르게 흔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틀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었다.


"누구세요?"

"어머, 벌써 내 목소리도 까먹었니? 나 진영이 엄마야."

"어, 안녕하세요. 아 죄송해요."

"다른 게 아니고, 부탁을 하나 해야 되는데. 며칠 후에 진영이 아버지 생신이거든? 내가 손이 불편해서 그런데 네가 장을 좀 봐다 줄 수 있니?"


"아. 네 그럼요. 어떤 거 사면될까요?"

"그건 너 알아서 사야지. 같은 선생님들 한 열네 분 정도 초대할 거야. 거기 서울에 노량진수산시장 있지? 거기 새벽시장에서 필요한 것들 사 오면 된다."

"네? 언제... 요?"

"금요일 너 일 끝나면 토요일에 사서 내려오면 되지 않겠니?"

"저... 한 번도 그런 장은 봐본 적이 없는데..."


"어머, 못 배운 티를 여기서 내면 어떡하니. 그리고 우리 진영이한테는 말하지 말고. 또 너 시켰다고 엄마한테 대들겠다. 저번에 너 왔다 가서도 그 말대꾸 한번 안 하던 애가 나한테 뭐라 하더라. 내가 뭘 어쨌다고. 아들이랑 엄마랑 싸우는 거 우리 집안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알아들었니?"


"......"


"그리고, 우리 진영이 일하느라 힘든데 지금 아버지 종교 그거 공부도 해야 돼서 바쁘니까 너무 많이 불러내지 마라. 진영이는 종교 이어갈 사람이야. 너는, 혹시 다른 종교 가지고 있니?"


그의 엄마와의 대화를 떠올리다 나는 시동을 켰다.


"한강이라도 갈까."


"무.. 무슨 얘기야? 헤어지자니? 잘못 말한 거지?"


나는 대답 없이 차 안의 라디오를 틀었다.


지친 하루가 가고 달빛 아래 두 사람 하나의 그림자

눈 감으면 잡힐 듯 아련한 행복이 아직 저기 있는데

상처 입은 마음은 너의 꿈마저 그늘을 드리워도

기억해 줘 아프도록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걸


거짓말처럼 성시경의 '두 사람' 그 노래의 첫 소절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소개팅 자리에서 처음 만난 날 흘러나오던 '두 사람', 그 노래를 따라 부르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는다.


그는. 끝까지 모를 것이다.

그저 늘 바쁘고 시간이 없던 그에게 내가 먼저 지쳐 떨어진 줄 알 것이다.


사랑은 결심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사랑은

대단한 결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무지했고 자만했다.


그래서.

지키지 못하고.


끝내 도망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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