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가마니
가만히 있어
지이잉- 지이잉-
김차장과 통화를 하는 와중에도 진동은 계속 울려댄다.
태수였다.
-매달릴 사람이... 없냐.
휴대폰 화면을 보며 한숨을 쉬는 찰나 김차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급하게 휴대폰을 귀에 갖다댄다.
"너도 다 들었지? 태수는, 이제 안돼. 난 할만큼 했다. 그니까 고차장님. 그냥 가만히 있어."
딱, 하고 전화기 너머에서 라이터를 켜는 소리가 들린다.
"얼만큼 가만히?"
"허...나 장난 아니야. 이번엔 진짜... 그냥 못 넘어가. 너도 또 김대리한테 설득당해서 나한테 얘기하지 말고."
"내가 언제"
"부장님 있었던 거 알지? 부장님 그날 완전 열받으셨어... 하여튼 나보다도, 부장님이 절대 그냥 못 넘어간대."
"... 어쩐다고"
"아휴... 일단, 월요일에 얼굴 보고 얘기해. 월요일에 출근하지? 주말인데 쉬어야지."
"... 밥 먹어라."
"뭔 자꾸 밥이야. 난 밥 먹었지. 크크 네나 잘 챙겨. 혼자 있으면서. 밥은 있냐?"
"끊어."
전화를 끊고 휴대폰 화면을 보는데 문자가 하나 도착해있다.
-으잉.
친한 거래처의 친한 담당자 아버님의 부고 문자였다.
-월화수목금금금월...
지이잉-
전화를 받는다.
"아 왜 이제 받아! 차장니임. 나 어떡해. 어?"
귀가 아프다.
그럴 줄 알고 휴대폰을 귀에서 멀리 댔지.
"너 회사차 있어?"
"차? 있죠."
"우리집으로 좀 와, 주소 찍어 줄께."
"아 왜에! 뭐야, 만나서 얘기할만큼 심각해 지금?"
"J 사 이대리님, 아버지 돌아가셨대. 방금 문자왔어. 빨리와"
"내가 오 ㅐ"
뚝.
거 참 말 많네.
하- 남자들.
동승
"진짜 나한테 다들 왜그러는데에에에!"
조수석 문을 열자마자 방귀 뀐 놈이 성 내고 앉아있다.
나는 안전벨트를 더듬거리며 말했다,
"가기싫음 가지마. 언제는 이 업체 너 주라더니. 담당자 인사하기 싫음 마. 내려."
"갈래요."
"주소 찍어."
"넵. 경기도..."
"아, 내가 운전하는게 낫겠다."
나는 조수석에서 내려 운전석으로 걸어갔다.
"또 왜에"
"엄마 집 가는 길이라 내가 길 알아. 옆으로 좀 가봐."
"아- 어? 그런데 어머님 안계시지 않아요? 해외 계시잖아."
"잠깐 들어오셨어, 아빠랑. 아 빨리 가 옆으로."
태수는 뭔 못 알아 듣는 말을 중얼거리며 옆으로 옮겨 간다.
차가 덜커덩 방지턱을 넘어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큰 길가가 나올때까지 나도 그도 말이 없었다.
'가만히 있어'라던 김차장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얼마나 가만 있어야 되지?
"차장님, 그런데... 혹시 김차장님이랑 통화해봤어?"
"하... 넌 진짜 왜 그냐."
"내가 뭘! 내가 게임하쟀어? 지들이 하재놓고."
"누가 지들이냐."
"아씨 난 그냥 하잔대로 했다고요! 왜 나만 갖고 그래"
얘는 꼭 단 둘일때만 응석이다.
빨간 신호등 앞에서 핸들에 턱을 기댄다.
"나 진짜 그만둬요? 딴 회사 알아보냐고"
"왜 나한테 물어"
가만히 있어야 하는 사람의 말투는 건조하다.
"아니 그럼 누구한테 묻냐고!"
"......"
신호가 바꼈다. 다시 엑셀을 밟는다.
"차장님. 김차장님이랑 말 안해봤어? ... 화 많이 났나? 그러겠지? 하... 그것도 그런데, 김부장님. 아 ㅅㅂ..."
"......"
"나 원래 그런애인거 다 알지 않아요? 응? 그런데 이번엔 왜 다들 오반데. 네?"
-원래 그런애가 어딨냐.
속으로만 생각한다.
말로 흥하기 1프로 , 말로 망하기 90프로
"일부러 나 엿먹이려고 그딴 게임이나 하고. 내가 뭘 잘못했어? 어? 내가 잘못했어, 차장님?"
"휴..."
"아, 한숨만 쉬지말고!"
"야, 귀아파 죽겠어. 소리좀 그만 질러라. 속도 안아프냐? 어제 다들 술 많이 마셨다며"
"뒤질거 같애요 지금."
차라리 그게 속 편할지도.
집에서 챙겨온 스틱꿀 하나를 태수에게 내민다.
"우왓, 나 주려고 가져온거야? 역시 고차장님. 난 진짜 고차장님 밖에 없어. 충성! 히힛"
버림받을까봐 배를 까고 눕는 강아지.
"하..."
고속도로를 달린다.
오랜만에 엑셀을 세게 밟으니 속도 조금 뚫리는 듯 하다.
슬쩍 쳐다본 조수석에는 김대리가 가방을 끌어안고 앞만 쳐다보고 있다.
안그래도 어두운 얼굴색이 빛 속에서 더욱 까맣게 보인다.
그의 타들어가는 속이 그런 색일까.
"몰라, 잘리면 다시 필리핀이나 가든가."
"나도 가고싶다, 필리핀."
"왜, 도박하러? 할 줄이나 알고?"
"프로 겜블러"
"크하하하"
오랜만에 그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린다.
정확히는.
비... 웃음인가.
"누나는 엄마랑 친해?"
태수는 사적인 얘기를 하고 싶을 땐 누나라고 치고 들어온다.
"넌?"
"난 같이 안살았어."
"왜?"
"다 바쁘니까. 엄마랑 아빠도 따로 살았어. 나는 필리핀으로 갔지, 못 들었었어? 삼촌 집. 삼촌이랑 더 친할걸."
"어-엉."
"어, 나중에 나한테 다 망한 가게 넘기지만 않았어도 지금 더 잘 지냈겠지? 크크크"
"으-응"
"내가 진짜, 살라고 안해본게 없어. 차장님 그 작은 머리로 뭘 상상해도 그 이상일껄?"
고개를 끄덕였다. 내 머리가 작나? 생각하며.
"진짜 돈 한 푼 없고. 사기는 맨날 당하고... 스무살이. 아니, 스무살도 전인가? 아무튼 그렇게 살면 하나 배우는게 있어. 차장님, 알아?"
사이드미러를 한번 확인하고 태수의 얼굴을 잠깐 본다.
-얘가 몇 살이더라.
"세상엔 진짜 믿을 사람 하~나도 없어. 자기 자신도 믿으면 안돼. 차장님, 무슨말인지 모르겠죠? 복 받은줄 알아요."
"나는 몰라?"
"완전 곱게 컸잖아. 아니에요? 얼굴에 다 써있구만. 세상을 뭘 알겠어. 나이만 먹었지."
나는 가끔 사람들이 말하는 내 모습이 낯설다.
나는 그런 사람인가.
"그래, 너는 다 알고 나는 다 몰라."
"어. 역시 차장님은 자기검증은 잘해. 똑똑해. 크크"
"그래봤자 너랑 같은 회사지."
"어? 그렇지. 그러네. 공부만 하고 좋은 대학나와도 결국 나랑 똑같애. 흐흐"
-그 말이 하고 싶었나. 결국 같은 거라고.
"김대리님 모시고 차장 나부랭이는 운전하는 거지 뭐. 인생 뭐라고."
"아 뭐야, 왜 또 혼자 시리어스 한데."
-내가????
길고 긴 고속도로를 달려 우리는 어느새,
도착해있었다.
우리 엄마 집 앞에.
"뭐야, 여기 아파트 단지 아냐? 왜 이리로 들어가요? 장례식장 간다매!"
"어어, 내 차 엄마집에 있어가지고, 차 좀 가져갈라고. 잠깐만 들렀다 가자."
"아 뭐야아! 아 진짜 고차장님. 와씨."
태수가 혼자 떠드는 사이 주차장에 주차를 마친다.
"다왔어, 내려."
"아 싫어어, 나 여기서 기다릴께."
"우리 엄마 인사 안해? 너 그런 놈이야?"
"아 또 뭐. 아씨."
밍기적 거리며 내리는 그를 확인하고 집 호수를 누른다.
“엄마, 나. 잠깐 차가지러 들렀어.”
“어머야? 갑자기?”
문이 열린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현관을 열어두고 기다리던 엄마도 놀라고 아빠도 놀라고 태수도 놀란다.
나는 김차장 말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 조차도 없었다.
(다음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