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소설
그 남자
덜덜덜덜
구강세정기를 틀자 힘없는 소리에 비해 커다란 반동으로 본체가 흔들거렸다. 회원은 아랑곳없이 입속으로 세정기를 밀어 넣었다. 이미 두어 번 헹군 입 안에도 숨어있던 찌꺼기가 하나 둘 하얀 세면대 위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괜스레 안심이 된다.
양치를 마치고 진료실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았다. 머리가 복잡할 땐 오히려 환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다행처럼 느껴졌다. 몸을 조금 더 뒤로 누이자 새로 칠한 가벽의 하얀 페인트 냄새가 아직도 코 끝을 맴돌았다.
회원은 문득 그녀의 향기가 그리워졌다.
사랑을 확인하며 서로의 몸에 각자의 땀으로 미끄러질 때보다 모든 행위가 끝난 후 침대에 널브러져 누워 그녀의 잔향을 맡는 것이 더욱 그를 들뜨게 했었다. 장난처럼 자신의 머리끝을 잡아 코끝을 간질거리던 그녀. 그렇게 사랑스럽기만 하던 그녀가 한 달 전 문득 차가운 블랙커피 같은 말을 내뱉었었다.
쓰다.
'넌 이렇게 사는 게 좋아?'
알듯 말 듯한 말이었다. 아니 따지고 싶지도 않은 말이었다.
'왜 또'
의자를 돌려 커다란 유리창 앞에 멈춰섰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까만 밤하늘이지만 도시는 불빛들로 충분히 환하다.
'사람 눈에 보이지 않아도 별은. 항상 하늘 위에 떠 있대.'
'어.'
'내가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늘 나를 찾아줄 거야?'
'어'
'냉정해'
'어. 어? 내가?'
작년 불꽃축제를 기다리며 앉아있던 잔디밭 위에서 그녀는 그런 말을 했었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회원은 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봄맞이 불꽃 축제'가 오늘이던가...
진료실 문이 열렸다.
"선생님. 손님이요. 곧 마감이라고 말은 했는데. 급한... 응급상황 같아서요."
'어찌하면 좋을까요?'라고 묻는 듯한 주저함이 간호사의 눈에 묻어있었다. 회원은 하나 있는 간호사마저 힘든 저녁으로 만들고 싶진 않았다.
"아... 그냥, "
으허허헝
짐승의 것 같은 처량한 울음소리가 진료실 안까지 밀고 들어왔다. 심장이 움찔 움직이기라도 한 듯한 착각이 일었다.
"아... 들어오시라고 해주세요."
"네."
간호사가 나가자마자 한 여자, 어깨를 넘지 않는 짧은 단발머리에 얼굴은 하얗게 질린 여자가 휴지도 없는지 소매 끝으로 코를 훔치며 들어왔다. 두 팔에는 야옹거리는 고양이를 아프지 않게 푹 감싸 안고는.
'당장 죽을 것처럼 보이진 않는데?'
회원이 본 고양이의 까만 눈망울은 여전히 또렷했다.
"무슨..."
"제가, 흑... 제가 고양이한테... 엉엉... 양치를 시키다가... 엉엉..."
그녀는 눈물이 잦아든 것 같음에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더니 주머니에서 치약처럼 보이는 물건 하나를 내밀었다.
"선생님... 저희 겨울이 좀... 흑... 살려주세요..."
"네... 제가 좀 보겠습니다. 이름이요?"
"윤혜요... 추윤혜... 흑..."
윤혜...
입술을 얼마나 깨물었는지 선홍빛이 돌았다.
"아, 저... 아이 이름이요. 고양이 이름."
"아... 겨울이요."
그녀는 입술을 앙 물고 눈물을 참고 있었다. 눈물이 번져있는 그녀의 흔들리는 동공에 비해 겨울이는 꼬리를 밀어넣고 회원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를 먼저 봐줘야 하나.
"네, 천천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어떻게 오셨는지."
"네... 차... 차 가지고 왔구요... 흑..."
"......"
등을 돌리고 앉은 유리창 너머, 저 먼 곳에서부터 팡팡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이 여자... 아나?'
(아마도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