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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5 너지?(1)

의도가 중요해?

by 아는개산책

찌를 의도는 없었다는 칼.

분명 찔리지 않았음을 안다.

그럼에도 나는 찔린 듯이 가슴이 아프다.


어떤 전제가 틀렸던 거지?

칼을 들기만 했다는 너를 원망해도 될까.



어떤 의도


탕비실에 대여섯 명, 치킨 해체 작업 중.

옆부서의 김과장이 외근 후 치킨을 챙겨 왔다.

친한 친구가 치킨집을 개업했다 한다.


"그런데 김과장님은 왜 맨날 간식을 남의 부서로 싸들고 와요오!"


웃으면서 뾰족한 한마디가 특기인 유과장이 면박을 준다.


'자기도 남의 팀 와서 먹는 거 아니에요?'

서림이 열심히 먹다 말고 내 귀에 속삭인다.


우리 팀엔 유독 젊은 피가 많은 게 이유라면 이유다. 툭하면 젊은 직원들이 모여 간식이나 티타임이 열린다.


키득거리며 같이 날개를 깨작거리고 있는데, 김과장이 내 휴대폰을 건넨다.


"고과장님, 문자 왔네요"

"?"


저쪽에 두었었나-? 하고 받아 드는데 주먹 속에 감춰놓은 열쇠 하나가 휴대폰과 함께 딸려온다.


그리고 확인한 문자에는,


지하 1층 제 차에서 잠깐만 기다려요. 할 말이 있어요. 꼭이요. 차번호 4885.

-김과장


-흐음, 차 키라..


얼마 전 내 차는 수리 맡겼다는 얘길 들었다며, 가는 길에 데려다주겠다고 한 적이 두어 번 있었다.

친한 것도 아닌데 부담스러워 거절했지만, 오늘은 키까지 주고 저 멀찍이 떨어져 가버린다.


-먼 말인지 들어나볼까.


"전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한참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나 인사했지만, 다들 딱히 놀라지도 않고 신경도 안 쓴다.

여섯 시는 퇴근시간인 걸 모두 안다.


오늘은 일단 주차장으로.


지하 주차장 문을 여니 바로 문 앞에 따악.

4885 가 전방 주차 되어있다.


띠띡-


문을 열고 잠시 머뭇하다가 운전석 옆 자리에 조심스레 몸을 밀어 넣는다.


남의 차에 혼자 앉아 있는 것도 어색하다.

많이-

구겨진 치마에 자세를 막 고쳐 앉으려는데,


(아니야!)

주차장 문이 벌컥 열림과 동시에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때로는 몸은 눈보다 빠르다.

아니, 빨라야 한다.


내 몸은 이미 콘솔박스 밑, 의자아래로 기어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미 눈이 마주쳤던 것 같기도 한 이 찝찝함.!


분명 부장의 얼굴이었다.


-내가 봤다는 건 그도 날 봤다는 걸까????


콘솔박스 아래 잔뜩 웅크려 있던 나는 분명 수 분이 흘렀을 거라고 판단하고 조심스레 고개를 빼꼼히 올려본다.


부장이 두 손을 모은채 뒷자리 창문 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무릎에 파묻으며 혼자 말했다.


"아씨 김과장, 썬팅 진하게 안한거기만 해봐"


어떤 문자


샤워를 마치고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그 시간.

행복은 늘 짧아서 행복인 것인가


천장을 향해 누워 조금 전 호수 에서의 일을 떠올려본다.


김과장이 나를 데려간 곳은 서울 근교의 호수.


"이렇게 가까이에 호수가 있는지 몰랐어요"

밤바람은 시원하기도 하다.


"그렇죠? 모를 것 같아서. 스트레스받을 때 여기서 호수 보고 가만히 있다 보면 기분도 좋아져요"


울타리에 몸을 기대어본다.

이미 내려앉은 어둠에도 반짝반짝 빛을 더하는 호수가 우리말을 다 들어줄 듯이 고요히 기다린다.


-기분이 좋아지는 거구나..


복작복작했던 마음이 가라앉으니 나를 이곳에 데리고 온 그의 표정이 새삼 궁금하다.


확 돌아서서 저만치 서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쪽 볼을 가득 채운 담배연기를 후- 내뿜으며 돌아선 나를 보고 미소 짓는다.


-그 미소는 나를 웃게 할 미소인가. 울게 할 미소인가.


생각하며, 혼자 떠들고 있던 티브이를 끄고 막 잠에 들 준비를 한다.


지이잉-


진동과 함께 도착한 문자.


ID:kakao@daum.net

Pw:123456789

-4885


스팸인가, 하고 뇌를 정지시킨 채 잠의 신의 손을 잡아버린다.



톡톡톡톡-

급한 회신 메일을 모두 끝낸 오전,

갑자기 어젯밤, 그 문자가 머릿속을 스친다.


발신 번호가 4885.

어디서 많이. 아. 차 번호?


오른손 엄지손톱을 잘근 거리며 문자를 유심히 바라본다.


나의 직감은 불쾌한 일이 생길 것 같아 무시하라 말한다.


하지만, 열면 안 되는 항아리라 명명하는 순간 반드시 열어야 할 항아리로 보이는 것이 인간의 마음.


Daum에 접속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넣어본다.

.

.



<2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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