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흐름
(1편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열면 안 되는 항아리라 명명하는 순간, 반드시 열어야 할 항아리로 보이는 것이 인간의 마음.
하지만 호기심 많은 판도라도, 상자 속 구석의 '희망'은 지켜냈었지.
그렇다면, 나의 선택은.?
고 또는 스톱
Daum에 접속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넣어본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이메일의 주인은 김과장 임을 확인했다.
-실수로 나에게 잘못 보낸 건가?
하기엔 , 굳이 발신인 번호를 바꾸어 보낸 것이 수상하다.
그때 유과장이 뒤에서 나타난다.
"꼬, 밥 먹으러 가자, 애들 다 기다려"
" 아, 네"
유과장은 한 살 많은 옆부서 과장이다.
표현이 거침없고 생각한 것은 반드시 말로 꺼내야 하는 타입이라 속 얘기를 나눌 정도로 거리를 좁히진 않는다.
-모니터를 봤을까? 내 이름이 아니었는데.
만약 유과장의 장난이라면, 내 모니터를 본 순간 성공했다. 싶었을까?
마침 맞은편엔 담배타임을 하고 돌아오는 한 무리의 남직원들이 보인다. 이를 놓칠 일 없는 유과장이 또 큰소리로 불러 세운다.
"김과장, 밥 먹으러 안 가? 같이 가자"
"네, 이제 담배피고, 사무실에 핸드폰 두고 와서요"
유과장에게 대답은 하면서 나를 향해 코를 찡긋하고 웃는다.
(남의 비밀 번호는 어떻게 알 수 있지?)
"참, 내일 정과장 생일 파티 한다고 일 끝나면 다 같이 맥주 한잔 하기로 했는데, 거기도 다 오세요"
유과장, 은희, 서림, 지영, 한솔 그리고 나. 가 거기인가 보다.
"아 정말 어디서 할껀데?"
술 좋아하는 유과장과 지영은 이미 신났다.
"과장님, 갈 거예요?"
은희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우린 둘 다 퇴근시간 이후까지 회사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뭐라 말할까 잠시 고민하는데 김과장이 쐐기를 박는다.
"내일은 고과장님도 꼭 오세요, 정과장이 1차 회 쏜대요"
대꾸는 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회는 가야지...
머리에 책이 들어가면 지혜가 생겨 세상근심이 사그라들고 뱃속에 밥이 들어가면 위장이 바빠져 뇌를 쉬게 한다.
이미 장난 같은 문자는 머릿속에 지운채 일에 몰두해 본다,
마치 칼퇴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처럼-
지이잉-
오늘 몇 시 퇴근해요?
-김과장
지이잉-
저도 그 동네에서 약속 있어서요
-김과장
답을 하지 않으니 연달아 진동이 울린다.
지이잉-
아까 외근 돌리고 남은 마카롱 하나 있는데 주려고 챙겨놓음.
-김과장
-6시 땡 하고 로비. 차 없으면 그냥 갈 거예요.
회신을 하는데 영롱한 마카롱이 바로 그려진다.
아직 몸에 들어가지도 않은 당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
"꼭 마카롱 때문에 타는 건 아니고요"
괜한 말을 꺼내며 로비에서 기다리던 그의 차 조수석에 올라탔다.
말없이 예의 그 반달형 눈웃음으로 빤히 보다가 몸이 다가온다, 싶더니 한 손을 뒷좌석으로 뻗어 예쁜 상자 하나 집어 내민다.
냉큼 받아 들려고 손을 내미는데 건네던 상자를 확 본인 쪽으로 다시 당긴다.
"공짜 아닌데"
빙글-
"외근 때 돌린 거면 법카잖아요"
정색.
"이건 내 카드로 따로 결제한 거예요. 특. 별. 히"
하며 다시 상자를 건네준다.
"감사합니다"
크큭-
또 웃기지도 않는데 혼자 웃고 있다.
"그런데 그거 먹으면 대답해줘야 해요"
"뭘요"
"당장은 아니고. 내일 해도 되고. 일 년 후에 해도 되고"
차는 출발했고 나도 더 이상 뭐냐고 묻진 않았다.
그게 뭐든 어차피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호감은. 생긴걸까?
그런데 역시,
세상은 내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오늘도 막 잠이 들려고 하는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지이잉-
무시하고 다시 잠이 들려다가 뭔가 기분 나쁜 느낌에 휩싸여 휴대폰을 들어본다.
막 0시 0분으로 숫자가 바뀐다.
그 사람을 믿지 마세요.
-4885
이건, 악의다.
이 중에 있어.
커다란 룸에 기다란 테이블 두 개를 촘촘히 채우고서야 정식 생일 파티가 시작 됐다.
"정과장님은 진짜 적이 없나 봐요"
"그러게, 많이 모였네"
서림의 말에 대꾸하며 적이 없다는 말을 되새겨 본다.
"정과장님 멋있는 거 같아요"
"나는 적이 많나?"
맥주잔에 서린 물방울을 문지르며 말한다.
"과장님? 과장님은 직원들 이름도 다 모르지 않아? 과장님 생파 하면 나랑 혜영언닌 갈게 ㅋㅋ"
그런가-맥주를 한 모금 들이킨다.
나는 직원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우리 팀원 이름도 제대로 못 외우는데 남의 팀은 더더욱.
관계설정에 아예 관심이 없으니 그들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일하러 왔으니 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내가 김과장의 호의를 눈치채기 전부터,
나의 심경의 변화들을.
가장 불쾌한 건 문자 뒤에 웅크린 채 나를, 나의 관계를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
비겁하고 졸렬하다.
-4885 네가 뭘 계획하던 니 생각대론 안 할 거야.
마음의 파도를 들키고 싶지 않다.
더 이상 나를 관찰하는 즐거움을 주진 않을 거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후, 찬찬히 모인 직원 얼굴들을 둘러본다.
가장 눈에 띄는 유과장.
늘 먼저 내게 말을 걸어오지만 잘 통제되지 않는 내게 가끔씩 사늘한 눈빛을 던진다.
하지만, 적의가 있다 해서 계획을 세워 괴롭힐 만큼 치밀한 스타일은 아니다.
결정적으로 연애 경험이 없다.
지영.
평소 조용하고 말이 없어 살갑게 다가오진 않지만 그렇다고 불편한 기억도 없다. 늘 수저를 놓거나 할 때 나서서 시작하는, 남을 먼저 챙기는 유형이다.
김과장과의 접점? 그건 모르겠다.
한솔.
김과장의 소개로 그의 절친과 막 사귀기 시작했다 들었다. 항상 웃거나 울거나. 둘 중 하나의 감정만 존재하는 듯이 단순하고 그저 베이비 같다.
은희. 혜영
날개 없는 천사들이다. 타인을 힘들게 할 일을 아예 만들지 않을 유형.
서림.
가장 머리가 안 좋다. 계략과는 거리가 멀다.
민재.
김과장 소개로 입사했지만 계약직이다. 그와 동네 친구라고 들었지만 나와 말을 섞은 적은 없다.
하지만 김과장과 가까운 사이니 내것을 김과장한테 말하면 말하지 친구것을 나에게 보냈을 리는 없다.
김과장 본인?
자신에 대해 잘 알아보라고 보낸 건가? 그러기엔.. 믿지 말라는 두 번째 문자는 완전한 악의다.
대체 이메일엔 무슨 내용이 들어있길래...
분석이라고 할 것도 없이 가진 자료가 너무 없다. 난 직원들에 대해 보이는 것 말곤 아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시작해볼까.
"나 요즘 이상한 문자가 와."
잠시 웅성하던 대화가 끊기는 찰나에 나지막이 던진 나의 한마디.
착각일까-
우리 쪽 테이블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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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