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균열
이 작품은 실제 사건들을 참고해 만들어졌지만, 인물과 장소, 사건의 구체적인 전개는 모두 허구입니다. 현실의 특정 인물이나 사건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내용의 현실감을 위해 변호사의 감수를 받으며 집필하고 있습니다.
작품에는 성범죄 및 폭력적인 장면, 성인 대상의 묘사가 포함될 수 있으니 이용에 참고해 주세요.
이혼 결정은 신속했다. 하지만 연 매출 300억 원대 기업 대표에게 이혼은 단순한 감정의 정리가 아니었다. 재산 분할 50퍼센트. 법대로라면 평생 피땀 흘려 일궈온 회사의 지분 절반과 수백억의 자산이 단번에 아내에게 날아갈 판이었다. 승호는 아내에게 줄 돈 자체가 아까운 것이 아니었다. 그 돈을 오롯이 수아와 함께할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는 데 쓰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치밀하게 움직였다. 수년에 걸쳐 회사의 비상장 지분을 조금씩 수아의 이름으로 넘겼고, 수아를 내세워 만든 차명 계좌로 현금을 빼돌렸다. 그렇게 3년의 은밀한 준비 끝에 법원 마당을 밟고 도장을 찍었다. 아내에게는 살던 강남 아파트 한 채와 현금 10억 원을 떼어주는 조건으로 합의를 종용했다. 겉으로는 공평한 분할인 척 포장했지만, 사실상 수아에게 미리 빼돌린 지분과 현금은 줄잡아 50억 원에 달했다. 승호에게 남은 건 온전한 회사 경영권뿐이었다.
이제 정말 자유다. 껍데기뿐인 가정은 끝났다. 내 곁엔 날 왕으로 모시는 수아만 있으면 돼.
승호는 남은 지분 일부를 현금화해 수아와 함께 살 강남의 최고급 펜트하우스를 매입했다. 명의는 당연히 수아의 것으로 해두었다. 그것이 자신의 헌신을 증명하는 완벽한 사랑의 증표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그토록 꿈꾸던 황제의 낙원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건, 이혼 신고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이었다.
"오빠, 이혼 도장 찍은 지 얼마 안 됐는데 전처가 앙심 품고 상간녀 소송이라도 걸면 어떡해? 꼬투리 잡혀서 위자료 폭탄 맞기 싫으니까 우리 당분간만 조심하자. 집에는 당분간 오지 마."
함께 살기로 약속한 펜트하우스의 비밀번호가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상간녀 소송을 들먹이며 방문을 막더니, 수아의 핑계는 점점 진화했다.
"오빠, 지방에서 친척 동생이 학원 다닌다고 올라와서 당분간 같이 지내야 해. 오빠 마주치면 애가 얼마나 놀라겠어."
"엄마가 갑자기 너무 편찮으셔서 모시고 왔어. 내가 24시간 간병해야 해서 오빠 챙겨줄 정신이 없어. 미안해."
수아는 온갖 이유를 대며 승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승호는 비싼 약값을 보내주고 병원비까지 선뜻 대주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수아의 전화기는 아예 전원이 꺼져 있다는 무심한 기계음만 흘러나왔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 치료 될 때까지만 나 찾지 말라고 하는 문자만 덩그러니 와있었다.
수십억을 쏟아부어 낙원을 만들어주었지만, 정작 승호 자신은 들어갈 곳이 없었다. 살던 집은 전처에게 넘겼고, 펜트하우스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결국 그는 회사 숙직실의 낡은 간이침대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수아의 연락만을 기다리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거실에서 들려오던 아내의 날 선 잔소리가 지옥 같다고 생각했는데,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숙직실의 차가운 적막은 사람의 피를 말리는 더 큰 지옥이었다. 자신이 황제인지, 아니면 집도 절도 없는 노숙자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지독한 외로움과 술기운에 취한 승호는 참지 못하고 수아의 펜트하우스로 향했다. 미친 듯이 벨을 눌러도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수아 너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문 열어!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나한테 이래!"
쾅! 쾅! 승호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구두 굽으로 현관문을 걷어찼다. 십 분쯤 지났을까, 복도 끝에서 차가운 불빛이 번쩍였다. 수아가 아닌, 제복을 입은 경찰이었다.
"선생님, 이웃 주민들이 소음과 난동으로 신고하셨습니다. 계속 문을 걷어차고 여기서 이러시면 주거침입 미수나 재물손괴로 입건될 수 있습니다. 일단 귀가하세요."
경찰의 단호한 제지에 승호는 핏발 선 눈으로 분을 삭이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내가 너무 예민했던 걸 거야. 정말 어머니가 아파서, 그래서 정신이 없는 거겠지.
그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애써 불안감을 짓눌렀다.
다음 날 점심, 승호를 처음 쩜오 룸싸롱의 세계로 이끌었던 하청업체 박 사장이 승호의 집무실을 찾았다. 그는 잔뜩 곤란하고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
"형님... 죄송한데, 이거 한 번 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어제 낮에 제가 우연히 찍은 겁니다."
사진 속에는 수아가 환하게 웃으며 젊고 건장한 남자와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 백화점을 걷고 있었다. 승호에게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돈의 무게가 실리지 않은 가장 편안하고 일상적인 진짜 미소였다. 그리고 그 젊은 남자의 손에는, 승호가 한 달 전 수아에게 생일 선물로 사주었던 천만 원짜리 에르메스 백이 버젓이 들려 있었다.
그 순간, 승호의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눈이 뒤집힌 그는 앞뒤 잴 것 없이 그 길로 차를 몰아 수아의 펜트하우스로 달려갔다. 하지만 수아는 여전히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승호의 회사로 날아온 건 수아의 애교 섞인 연락이 아닌, 경찰서에서 보낸 출석 요구서였다.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수아 역시 법의 맹점과 무기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영악한 여자였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법원은 수아의 신변 보호를 이유로 승호에게 100미터 이내 접근 금지라는 잠정조치 명령을 내렸다. 황제를 꿈꾸던 존경받던 대표 한승호가, 하루아침에 젊은 여자의 뒤를 캐고 집착하는 파렴치한 스토커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술에 취하면 하늘에 대고 소리를 치는 게 전부였다.
"돈 내놔! 내 돈 돌려달라고!"
"이 개 같은 사기꾼 년아!"
접근 금지 명령 따위는 이미 승호의 안중에 없었다. 자신의 인생과 맞바꾼 50억, 그리고 헌신이라 믿었던 사랑이 철저한 조롱과 배신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영혼이 새까맣게 타버리는 것 같았다. 그는 펜트하우스 지하 주차장 구석에 차를 대고 며칠 밤낮을 짐승처럼 잠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수아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공동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승호는 어둠 속에서 짐승처럼 튀어 나갔다.
"악! 오빠! 왜 이래!"
"살려..."
승호는 비명을 지르는 수아의 입을 커다란 손으로 틀어막고, 그녀의 목덜미를 쥔 채 거칠게 집 안으로 밀어 넣었다.
"조용히 해."
털컥. 도어록이 잠기는 차가운 기계음이 그들의 공간을 다시 완벽하게 폐쇄된 감옥으로 만들었다. 수아를 내려다보는 승호의 눈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닌, 소름 끼치는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소리 지르면... 오늘 여기서 너랑 나랑 같이 죽는 거야."
[주석: 스토킹 처벌법]
2021년부터 시행된 법으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고, 주거지 근처에서 기다리는 행위 등을 처벌한다. 피해자가 위험에 처했다고 판단되면 법원은 즉시 100미터 이내 접근 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등의 잠정조치를 내릴 수 있으며, 이 잠정조치를 위반할 경우 실형까지 선고될 수 있는 강력한 법안이다.
[주석: 이혼 후 상간자 소송]
상간자를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 소송은 이혼 소송과 별개로 진행되는 민사상 불법행위 손해배상 청구이다. 따라서 부부가 이미 이혼에 합의하고 도장을 찍었다 하더라도, 혼인 기간 중 발생한 외도 사실에 대한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피해를 입은 전 배우자가 외도 사실과 상간자를 안 날로부터 3년, 혹은 외도 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 이내라면 언제든 위자료 청구 소송이 가능하다.
감수 : 경찰간부 출신 마성의 변호
김판수 변호사
( youtube.com/@policelawyer_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