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사건 ; 포르노 2화

찢겨진 합격증

by 코와

지옥 같던 수험 생활이 끝나고 꼬박 석 달이 흘렀다.


인사혁신처 홈페이지에 접속한 민수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 수험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엔터를 누르기까지의 단 몇 초가 마치 영겁처럼 길게 느껴졌다. 화면이 깜빡이더니 이내 결과가 떴다.


[최종 합격]


민수는 고시원 바닥에 엎드려 오열했다. 3년이었다.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4평짜리 방구석.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짐승처럼 버텨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는 다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아, 아버지... 저 붙었어요. 9급, 최종 합격이라고요!"


수화기 너머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내 거친 숨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굵은 통곡이 터져 나왔다.


[장하다, 내 아들! 3년 동안 그 좁은 데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노. 이제 다 끝났다. 진짜 다 끝났어!]


합격의 단꿈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달콤함은 채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모처럼 고향 집에서 늦잠을 자던 아침. 모르는 번호로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여보세요."


[김민수 씨?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김형삼 수사관입니다. 성착취물 소지 혐의로 피의자 조사받으셔야 합니다. 다음 주 화요일 두 시까지 출석하세요.]


잠이 확 깼다.


"아, 네~ 경찰청이요. 보이스피싱 안 속습니다. 연변 사투리나 고치세요. 님 안 사요."


[피싱 아닙니다. 4월 15일 밤 11시경. OOO 사이트. 1만 원 결제. 압축파일 3개 다운로드. 기억 안 납니까?]


순간, 민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시험이 끝난 날 밤, 태영이 보내준 링크로 결제했던 바로 그 영상이었다.


"저기, 형사님!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전 그냥 성인 영화인 줄 알고..."


[다운받으신 파일 중에 N번방 유출본 있었습니다. IP 추적, 계좌 결제 내역 다 땄습니다. 핑계는 오셔서 대시죠. 출석 요구서 문자로 보낼 테니 알아서 준비해서 오십시오. 안 오면 체포영장 칩니다.]


뚝. 통화가 일방적으로 끊겼다.


민수는 사색이 된 얼굴로 미친 듯이 노트북을 켰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색창을 두드렸다.


[국가공무원법 성범죄 결격사유]


모니터 불빛에 민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성범죄로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 당연퇴직 및 임용 결격사유.' (주석1)


단 한 번의 실수였다. 만 원짜리 결제 한 번에 3년의 피땀으로 얻어낸, 아니 초·중·고와 대학 16년까지 포함해 도합 19년 노력의 산물인 합격증이 휴짓조각이 될 판이었다. 파멸이었다.


그 길로 민수는 며칠을 고민하다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저 좀 살려주세요."


자초지종을 들은 아버지는 충격에 휩싸여 아들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하지만 사시나무처럼 떠는 자식을 보며, 이내 바닥을 치며 울부짖었다. 마을 입구 앞에는 아직도 합격 플래카드가 힘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며칠 뒤, 서초동 법원 뒷골목의 한 허름한 막걸리집.


상길의 법률 사무소 박 사무장이 테이블에 코를 박고 오열하는 고향 친구를 착잡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야. 자네가 서초동에서 성범죄로 제일 잘 나가는 변호사 모신다며. 우리 민수 좀 살려주게. 그냥 총각놈이 호기심에 한 번 보려다 재수 없이 엮인 거라고! 내 새끼 인생 이대로 끝낼 수는 없네, 제발! 그리고 너도 경찰 출신이잖아 아는 사람 좀 없냐?"


박 사무장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막걸리집 밖으로 나갔다. 담배를 하나 빼 물고는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서울청 사이버수사대에 있는 아끼던 후배였다.


"어, 최 팀장. 나다. 다름이 아니고 내 고향 불알친구 아들놈이 이번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에서 날 선 대답이 훅 치고 들어왔다.


[선배님. 다른 건 다 해드려도 이건 절대 안 됩니다. 지금 N번방 터져서 언론에서 연일 대서특필하고 난리 난 거 아시잖아요. 본청에서 직접 하달된 특별 단속이라 담당 수사관 할애비가 와도 못 빼줍니다. 선배님도 경찰 밥 드셔보셨으면서 왜 이러십니까. 저 옷 벗는 꼴 보고 싶으세요?]


"하아... 알았다. 미안하다."


박 사무장은 씁쓸하게 담배를 비벼 끄고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여전히 테이블에 코를 박고 우는 친구의 어깨를 툭 쳤다.


"야, 안 되겠다. 지금 언론에서 워낙 난리 치는 사건이라 경찰 쪽에 줄 대서 비빌 사이즈가 아니야."


"그럼 어떡해... 우리 민수 이대로 죽어?"


"내일 날 밝는 대로 애 데리고 서초동으로 올라와. 우리 변호사님한테 가자. 그 양반밖에 답이 없다."


다음 날 아침. 강상길 변호사의 책상 위로 서류 파일이 툭 떨어졌다. 박 사무장이 멋쩍게 헛기침을 했다.


"변호사님. 제 불알친구 아들놈입니다. 9급 겨우 합격했는데, 이대로 검찰 넘어가서 벌금형이라도 나오면 임용 취소에 평생 성범죄자 딱지 달고 살아야 합니다. 한 번만 살펴봐 주십시오."


상길은 말없이 안경을 치켜올렸다. 민수가 엉망진창으로 휘갈겨 온 사건 경위서를 빠르게 스캔했다. 서류를 넘기던 상길의 손가락이 우뚝 멈췄다.


"다운로드한 3개 중 문제의 첫 번째 영상... 재생 시간이 1분이 채 안 되네요?"


"아, 네. 민수 그놈 말로는 화질도 구리고 기분 나빠서 바로 껐답니다. 그게 그런 영상인 줄은 꿈에도 몰랐고요."


상길이 책상 위에 놓인 노란색 형광펜을 집어 들어 서류의 한 구절에 굵게 밑줄을 그었다. 그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피 냄새를 맡은 포식자의 미소였다.


"박 사무장님."


"예? 어떻게, 방법이 있겠습니까?"


상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친구 아들 당장 서울로 올라오라고 하세요. 경찰서 문턱 밟기 전에, 그 친구 머릿속 기억부터 제가 싹 다 새로 세팅해야 하니까요."


상길의 서늘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사무실의 공기를 날카롭게 갈랐다. 벼랑 끝에 몰린 청춘을 구출하기 위한 치열한 법리적 체스 게임이 막을 올리고 있었다.


주석1: 국가공무원법 제33조(결격사유) - 공무원의 품위 유지 의무를 중시하여,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에 따른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후 3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는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으며, 재직 중인 경우 당연퇴직 처리된다.


감수 : 경찰간부 출신 마성의 변호
김판수 변호사
( youtube.com/@policelawyer_pan )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