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세팅
서초동 강상길 법률 사무소.
응접실 소파에 앉은 민수는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며칠 사이 반쪽이 된 얼굴엔 핏기조차 없었다. 상길은 탁자 너머로 민수를 차갑게 응시했다. 마치 취조실의 베테랑 형사 같은 압도적인 기운이었다.
"김민수 씨."
상길의 서늘한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지금부터 제가 묻는 말에 거짓 없이 대답해야 합니다. 변호사인 저까지 속이려 든다면, 당장 이 사건에서 손 떼겠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첫 번째. 다운받은 그 영상, 단 한 번이라도 다른 곳에 올리거나 친구한테 전송한 적 있습니까?"
"절대 없습니다! 맹세코 다운만 받았습니다."
쾅!
상길이 탁자를 거칠게 내리쳤다. 민수의 어깨가 흠칫 뛰어올랐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경찰 사이버수사대가 동네 파출소인 줄 압니까?"
상길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
"경찰은 당신이 유포자일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탈탈 털 겁니다. 당신 핸드폰, 노트북 포렌식 돌려서 재배포 기록이 단 한 줄이라도 나오는 순간, 방금 합격한 그 공무원 자리는 물론이고 당장 구속 영장 청구입니다. 진짜 없습니까?"
"진짜... 진짜 없습니다! 맹세합니다, 변호사님!"
민수가 울먹이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제야 상길의 굳은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좋습니다.” 상길도 속으로 다행이다. 구속은 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상길이 여유롭게 펜을 집어 들었다. 민수는 방금 전까지 자신을 옥죄던 엄청난 압박감에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두 번째. 결제할 때 그게 N번방 착취물인 걸 알고 샀습니까?"
"아닙니다! 만 원짜리 세트 상품이길래 샀어요. 제목도 그냥 '레전드 유출 3종' 뭐 이런 거였습니다. 전 진짜 그냥 성인물인 줄 알았어요."
"당연하겠죠. 근데 경찰은 그렇게 안 믿습니다. 게다가 민수 씨는 다운로드 방식도 멍청했어요."
상길이 쯧쯧 혀를 찼다.
"LTE나 5G 같은 무선 데이터 쓰거나 우회 접속했으면, 통신사 거쳐서 누구 폰인지 특정하는 데 한세월 걸립니다. 사실 몇시간 뒤면 데이타가 없어서 찾지도 못해요. 근데 당신, 고시원 방구석에서 공용 와이파이 잡고 다운받았죠?"
"아... 네. 데이터가 모자라서..."
"그러니까 고정된 IP가 떡하니 잡혀서 바로 사이버수사대 타깃이 된 겁니다. 수사관들은 당신을 아주 손쉬운 실적 제물로 보고 있을 겁니다."
상길이 상체를 민수 쪽으로 바짝 기울였다.
"자, 그럼 마지막 세 번째 질문. 그 파일 3개. 압축 풀고 나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게... 첫 번째 영상을 무심코 틀었는데, 화질도 구리고 여자가 울고 있길래 기분이 너무 더러워서요. 1분도 안 돼서 바로 꺼버렸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평범한 성인 영화를..."
"틀렸습니다."
상길이 민수의 말을 차갑게 끊었다. 민수가 당황한 눈으로 상길을 쳐다보았다.
"네? 제가 뭘..."
"민수 씨. 경찰이 당신 자취방에 CCTV라도 달아놨습니까?"
"아니요..."
"그럼 당신이 그 첫 번째 파일을 더블클릭해서 열어봤는지, 아니면 압축만 풀고 두 번째 파일부터 봤는지. 그걸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누구뿐입니까?"
"저... 저밖에 없죠."
상길이 소파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수사관은 신이 아닙니다. 그들이 가진 패는 오직 '당신 IP로 와이파이를 통해 만 원을 결제하고 해당 압축파일을 다운로드했다'는 서버 로그 하나뿐이에요."
상길은 탁자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법적으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은 '소지' 자체로 처벌받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전제가 하나 붙어요. 바로 '그것이 불법 착취물임을 인지하고도 소지했느냐' 하는 고의성입니다." (주석1)
"아..."
"민수 씨가 경찰서에 가서 '1분 정도 봤는데 기분 나빠서 껐다'라고 말하는 순간, 당신은 스스로 '그게 불법 착취물인 걸 내 눈으로 확인했다'라고 자백하는 꼴이 됩니다."
상길의 목소리가 낮고 단호해졌다.
"1분을 봤든 10초를 봤든, 인지한 상태에서 바로 파일을 삭제하지 않고 폴더에 남겨두었으니 완벽한 '고의적 소지'가 성립하는 겁니다. 변호사 입장에서, 의뢰인이 굳이 제 입으로 불리한 사실을 자백해서 자기 목에 밧줄을 걸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주석2)
"그, 그럼 전 경찰서 가서 뭐라고 해야 합니까?"
상길이 펜을 들어 민수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오늘부터 당신의 기억은 이렇게 세팅되는 겁니다."
민수가 숨을 죽이고 상길의 입술에 집중했다.
"당신은 시험이 끝나고 술김에 3개짜리 세트 파일을 다운받았습니다. 그리고 무심코 '두 번째' 영상을 클릭했죠. 다행히 그건 취향에 맞는 평범한 성인물이었습니다. 당신은 그걸 보며 자위를 했고, 그대로 피곤해서 잠이 들었습니다."
상길의 눈동자가 민수의 눈동자를 옭아맸다.
"첫 번째 영상이요? 당신은 그 파일이 컴퓨터에 깔려있다는 것만 알았지, 내용물이 그런 끔찍한 범죄 영상인 줄은 꿈에도, 단 1초도 몰랐던 겁니다. 알겠습니까?"
"...네. 안 봤습니다. 전 두 번째 영상만 봤습니다."
민수의 대답에 상길이 비로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경찰은 당신을 쓰레기 취급하며 어떻게든 '봤다'는 자백을 받아내려고 으름장을 놓겠죠. 하지만 방금 세팅한 그 기억 하나만 부여잡고 버티세요. 그게 당신의 3년 피땀과 합격증을 지켜줄 유일한 방패입니다."
상길이 겉옷을 챙겨 입으며 박 사무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박 사무장님. 민수 씨 출석일이 다음 주 화요일 오후 두 시였죠?"
"예, 맞습니다. 변호사님."
"그날 오후 스케줄 싹 다 비우시죠. 우리 의뢰인, 털끝 하나 안 다치게 경찰서 같이 가야겠습니다."
감수 : 경찰간부 출신 마성의 변호
김판수 변호사
( youtube.com/@policelawyer_pan )
주석1: 고의성 조각 -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가 범죄임을 인식하고(고의) 이를 실행해야 한다. 성착취물 소지죄의 경우, 파일의 내용물이 불법 착취물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다운로드 및 보관했다면 범죄의 고의가 없어 처벌할 수 없다. 이를 '고의성 조각'이라 한다.
주석2: 자백의 증명력과 방어권 - 형사소송법상 피의자는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할 묵비권 및 방어권을 가진다. 수사기관이 객관적 증거(시청 기록 등)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피의자가 스스로 혐의를 입증해 주는 불필요한 자백을 할 법적 의무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