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조사실.
철제 캐비닛 부딪히는 소리와 찌든 믹스커피 냄새가 뒤엉킨 좁은 방이었다. 김 수사관이 서류 뭉치를 책상에 소리 나게 던졌다.
"김민수 씨. N번방 영상, 다운받았죠? 솔직하게 갑시다. 어차피 IP랑 MAC 주소, 기기 식별 번호 다 땄어요."
민수의 허벅지가 잘게 떨렸다. 상길이 책상 아래로 그의 무릎을 지그시 눌러주자 이내 숨을 골랐다.
"다운받은 건 맞습니다. 근데, 그게 그런 영상인 줄은 진짜 몰랐습니다. 전 세 개 중에 두 번째, 평범한 성인물만 봤습니다."
김 수사관이 코웃음을 쳤다.
"아, 예. 다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압축 풀면 영상이 세 개가 떡하니 나오는데, 첫 번째 걸 안 보고 두 번째 걸 봤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진짜 안 봤습니다! 두 번째 것만 보고 피곤해서 잤다고요!"
"김민수 씨! 지금 거짓말하면 가중처벌 받아요. 이거 자칫하면 바로 구속될 사안이에요. 지금 방송에서 연일 보도되는 거 알죠?"
김 수사관이 상체를 들이밀며 언성을 높였다. 민수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며 다급하게 상길을 쳐다보았다.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던 상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김 수사관님, 조금 과하신 것 같습니다."
상길의 차분한 목소리에 김 수사관의 시선이 돌아갔다.
"변호사님. 지금 명백한 증거가..."
"수사관님이 가진 증거는 '압축파일을 다운로드했다'는 로그 기록뿐 아닙니까. 내 의뢰인이 그 폴더 안에서 1번 파일을 클릭했는지,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 있으십니까?"
상길이 김 수사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내 의뢰인은 일관되게 착취물인지 몰랐고, 보지도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억지 부리지 말고 객관적인 증거로만 조사하시죠." (주석1)
김 수사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하지만 상길의 방어에 반박할 확실한 물증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팽팽한 신경전 끝에 조서 작성이 마무리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지장 찍고 가보세요."
김 수사관이 신경질적으로 조서를 밀어냈다. 상길은 민수의 등을 두드리며 경찰청 주차장 쪽으로 먼저 내보냈다.
"민수 씨, 박 사무장님이랑 주차장 차에 먼저 가 계세요. 전 수사관님이랑 남은 얘기 좀 하고 가겠습니다."
조사실 문이 닫혔다. 방 안에는 상길과 김 수사관, 단둘뿐이었다. 상길이 자판기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며 입을 열었다.
"김 수사관님. 담배 하나 피우시죠."
두 사람은 경찰청 뒷골목 흡연구역에 섰다. 상길이 라이터 불을 켜며 김 수사관을 슬쩍 건너다보았다.
"수사관님, 경대 27기시죠?"
김 수사관이 담배를 입에 물다 말고 멈칫했다.
"아... 선배님. 계장님한테 말씀 들었습니다."
"김 후배님. 위에서 N번방 단속하라고 쪼니까, 지금 관성으로 유죄 때려 맞추시는 거 다 압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관성이라니요."
"생각해 봅시다. 수사관님이 관성으로 기소 의견 송치하면, 검찰도 이런 사건 뻔하다며 나는 모르겠고 판사 앞에서 판결이나 받으라고 법원으로 넘깁니다. 그럼 판사도 관성으로 유죄 때리겠죠. 그렇게 아무 죄 없는 청년 하나, 인생 억울하게 조지는 겁니다."
김 수사관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시선을 피했다. 정곡을 찔린 표정이었다. 상길이 한 발 더 다가섰다.
"어차피 옳은 일 하려고 경찰 되신 거 아닙니까. 이런 억울한 잔챙이 털어서 실적 채우는 게 수사관님 본심은 아니잖아요. 제 의뢰인, 털어봐야 재배포 기록 단 한 줄도 안 나올 거 아시지 않습니까.더욱이 아청물도 아니고 불촬물 영상이고...(주석2) "
상길의 묵직한 설득에 김 수사관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상길이 쐐기를 박았다.
"제가 내일 아침에 디지털 포렌식 감정서 제출하겠습니다. 포렌식 돌리면 당연히 재배포 안 한 거 확실하게 증명해서 드릴 거고요. 게다가 피의자가 혹시라도 컴퓨터 폴더에 지저분한 게 남을까 봐 2번째 영상 본 직후에 파일들을 곧바로 삭제해버렸습니다. 그 영상이 PC에 머무른 시간 자체가 고의성을 입증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포렌식으로 완벽하게 증명해서 갖다 드리죠." (주석3)
상길이 남은 담배를 비벼 껐다.
"그 감정서 바탕으로 '무혐의 불송치'로 깔끔하게 털어주시죠. 수사관님도 증거 없는 사건 무리하게 검찰로 넘겼다가 보완 수사 떨어지면 골치 아프지 않습니까?"
김 수사관은 대답 대신 담배만 뻐끔거렸다. 하지만 그의 굳게 다물린 입술은, 상길의 치밀한 타협안과 빠져나갈 명분에 이미 설득당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상길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경찰청 뒷골목을 빠져나갔다. 파멸의 늪에 빠질 뻔했던 한 청춘의 인생이, 변호사의 서늘한 협상 덕분에 다시 온전한 빛을 찾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불기소가 되어 민수는 원하는 공무원이 되었다.
감수 : 경찰간부 출신 마성의 변호
김판수 변호사
( youtube.com/@policelawyer_pan )
주석1: 진술 조력권 - 수사기관은 피의자를 신문함에 있어 강압이나 부당한 유도신문을 해서는 안 된다. 변호인은 수사관이 객관적 증거 없이 추정만으로 자백을 강요할 때 즉각 개입하여 이를 제지하고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호할 수 있다.
주석2: 아청물 불촬물 - 법조인 사이에서 쓰는 줄임말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물(아청물) 이는 다운로드만 해도 또는 토렌트에 본인이 다운받으면서 배포가 자동으로 되어도 심각하게 처벌 받는다. / 불법촬영물 즉, 동의 없이 촬영된 성적 영상/사진(불찰물)이라고 한다. 주석3: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s) - PC나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에 남아있는 각종 데이터(열람 기록, 삭제 내역 등)를 수집, 분석하여 법적인 증거로 제출하는 과학수사 기법. 민간 전문 업체의 감정서도 객관적 증거 능력을 인정받아 무혐의를 입증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