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채팅
강원도 화천의 매서운 겨울바람이 부대 연병장을 할퀴고 지나갔다. 일과가 끝난 개인정비 시간, 냉동식품을 돌리러 PX로 향하는 태성 상병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옆에서 깐족거리는 민재 일병의 입은 쉴 새 없이 나불거리고 있었다.
"아, 김 상병님. 요번 휴가 진짜 미쳤습니다. 저 아직도 허리가 다 아프지 말입니다."
"지랄하네. 짬찌 새끼가 나가서 헌팅 포차나 기웃거렸겠지."
태성이 코웃음을 치며 전자레인지에 냉동 짬뽕면을 쑤셔 넣었다. 민재가 주변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헌팅 포차는 무슨. 저 돈 한 푼 안 쓰고 진짜 에이스 만났습니다."
"어떻게?"
전자레인지 시작 버튼을 누르려던 태성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민재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은밀하게 흔들었다.
"대학 동기 놈이 알려준 카톡 오픈 채팅방이 하나 있습니다. 방 제목이 '고무신'인데, 거기가 진짜 노다지입니다."
"고무신? 군인들 여친 모여있는 데 아니야?"
"에이, 진짜 순진하시네. 군인 남자친구 기다리는 방이 아니라, 군대 간 남자들 한 번 만나보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모인 방입니다. 모솔도 많지만 이쁜 여자애들도 꽤 있고요."
태성의 귀가 솔깃해졌다. 입대 전까지 여사친은 많아지만 모태솔로. 혈기 왕성한 스물둘의 나이에 군대에서 눈 치우고 작업만 하느라 썩어가는 청춘이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다.
"거기서 어떻게 만났는데?"
"방 들어가서 '휴가 나가는데 술동무 구함' 치니까 바로 개인 톡이 오더라고요. 그중에서 프로필 사진 제일 반반한 애랑 이빨 좀 까다가 만났죠."
민재가 입맛을 쩝 다셨다.
"와, 근데 진짜 장난 아닙니다. 군인이라니까 엄청 불쌍하게 여기면서, 모텔비도 지가 다 내고 리드까지 싹 다 하더라고요. 저 진짜 이번 휴가 때 뼈 삭고 왔습니다."
전자레인지가 다 돌아갔다는 알림음이 삑삑 울렸다. 하지만 태성의 시선은 민재의 핸드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야. 씨바 너"
"예?"
"그 방, 나도 좀 초대해 봐라. 크크크 "
민재가 피식 웃으며 태성의 어깨를 툭 쳤다.
"김 상병님, 모태솔로 탈출하시게 도와드립죠. 바로 카톡으로 오픈채팅 초대장 쏴드리겠습니다."
그날 밤 생활관. 휴대폰 반납을 앞두고 주변 동기들 눈치를 보며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모포안에서 태성의 핸드폰 액정 불빛이 어둠 속에서 번쩍였다.
[오픈채팅방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민재가 보낸 카톡을 누르자, 화려한 이모티콘과 함께 백여 명의 남녀가 얽혀 있는 채팅방이 열렸다. 사람들의 대화가 쉴 새 없이 위로 밀려 올라갔다.
[오늘 외박 나왔는데 홍대에서 술 드실 분?]
[일병 짬찌는 웁니다 ㅠㅠ]
[저 서울 사는데 휴가 나오면 밥 사드릴게요~]
태성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키패드를 두드렸다.
[강원도 화천 상병입니다. 다음 달 정기 휴가인데 외로워서 대화할 분 찾습니다...]
메시지가 올라가자마자 몇 개의 답장이 달렸다.
[화천 ㄷㄷ 눈 많이 오죠?]
[상병 꺾였나요? 힘내십쇼 ㅋㅋㅋ]
태성이 사람들의 질문에 어설프게 답장을 달며 쭈뼛쭈뼛 대화에 섞여 들어가던 그때였다. 방 안에서 꽤나 활발하게 떠들던 닉네임 하나가 태성의 시선을 끌었다. 프로필 사진은 얼굴이 반쯤 가려졌지만, 뽀얀 피부와 붉은 입술이 돋보이는 엄청난 미인이었다.
순간, 화면 상단에 노란색 알림창이 톡 하고 떨어졌다. 바로 그녀였다.
[1:1 오픈 채팅이 도착했습니다.]
[화천이면 진짜 춥겠네요 ㅠㅠ 고생 많으세요! 저랑 톡 할래요?]
태성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22년 묵은 모태솔로의 칙칙했던 군 생활에, 처음으로 달콤한 핑크빛 폭격이 떨어지고 있었다.
감수 : 경찰간부 출신 김판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