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사건 ; 고무신 1화

오픈채팅

by 코와

강원도 화천의 매서운 겨울바람이 부대 연병장을 할퀴고 지나갔다. 일과가 끝난 개인정비 시간, 냉동식품을 돌리러 PX로 향하는 태성 상병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옆에서 깐족거리는 민재 일병의 입은 쉴 새 없이 나불거리고 있었다.


"아, 김 상병님. 요번 휴가 진짜 미쳤습니다. 저 아직도 허리가 다 아프지 말입니다."


"지랄하네. 짬찌 새끼가 나가서 헌팅 포차나 기웃거렸겠지."


태성이 코웃음을 치며 전자레인지에 냉동 짬뽕면을 쑤셔 넣었다. 민재가 주변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헌팅 포차는 무슨. 저 돈 한 푼 안 쓰고 진짜 에이스 만났습니다."


"어떻게?"


전자레인지 시작 버튼을 누르려던 태성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민재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은밀하게 흔들었다.


"대학 동기 놈이 알려준 카톡 오픈 채팅방이 하나 있습니다. 방 제목이 '고무신'인데, 거기가 진짜 노다지입니다."


"고무신? 군인들 여친 모여있는 데 아니야?"


"에이, 진짜 순진하시네. 군인 남자친구 기다리는 방이 아니라, 군대 간 남자들 한 번 만나보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모인 방입니다. 모솔도 많지만 이쁜 여자애들도 꽤 있고요."


태성의 귀가 솔깃해졌다. 입대 전까지 여사친은 많아지만 모태솔로. 혈기 왕성한 스물둘의 나이에 군대에서 눈 치우고 작업만 하느라 썩어가는 청춘이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다.


"거기서 어떻게 만났는데?"


"방 들어가서 '휴가 나가는데 술동무 구함' 치니까 바로 개인 톡이 오더라고요. 그중에서 프로필 사진 제일 반반한 애랑 이빨 좀 까다가 만났죠."


민재가 입맛을 쩝 다셨다.


"와, 근데 진짜 장난 아닙니다. 군인이라니까 엄청 불쌍하게 여기면서, 모텔비도 지가 다 내고 리드까지 싹 다 하더라고요. 저 진짜 이번 휴가 때 뼈 삭고 왔습니다."


전자레인지가 다 돌아갔다는 알림음이 삑삑 울렸다. 하지만 태성의 시선은 민재의 핸드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야. 씨바 너"


"예?"


"그 방, 나도 좀 초대해 봐라. 크크크 "


민재가 피식 웃으며 태성의 어깨를 툭 쳤다.


"김 상병님, 모태솔로 탈출하시게 도와드립죠. 바로 카톡으로 오픈채팅 초대장 쏴드리겠습니다."


그날 밤 생활관. 휴대폰 반납을 앞두고 주변 동기들 눈치를 보며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모포안에서 태성의 핸드폰 액정 불빛이 어둠 속에서 번쩍였다.


[오픈채팅방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민재가 보낸 카톡을 누르자, 화려한 이모티콘과 함께 백여 명의 남녀가 얽혀 있는 채팅방이 열렸다. 사람들의 대화가 쉴 새 없이 위로 밀려 올라갔다.


[오늘 외박 나왔는데 홍대에서 술 드실 분?]

[일병 짬찌는 웁니다 ㅠㅠ]

[저 서울 사는데 휴가 나오면 밥 사드릴게요~]


태성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키패드를 두드렸다.


[강원도 화천 상병입니다. 다음 달 정기 휴가인데 외로워서 대화할 분 찾습니다...]


메시지가 올라가자마자 몇 개의 답장이 달렸다.


[화천 ㄷㄷ 눈 많이 오죠?]

[상병 꺾였나요? 힘내십쇼 ㅋㅋㅋ]


태성이 사람들의 질문에 어설프게 답장을 달며 쭈뼛쭈뼛 대화에 섞여 들어가던 그때였다. 방 안에서 꽤나 활발하게 떠들던 닉네임 하나가 태성의 시선을 끌었다. 프로필 사진은 얼굴이 반쯤 가려졌지만, 뽀얀 피부와 붉은 입술이 돋보이는 엄청난 미인이었다.

순간, 화면 상단에 노란색 알림창이 톡 하고 떨어졌다. 바로 그녀였다.


[1:1 오픈 채팅이 도착했습니다.]

[화천이면 진짜 춥겠네요 ㅠㅠ 고생 많으세요! 저랑 톡 할래요?]


태성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22년 묵은 모태솔로의 칙칙했던 군 생활에, 처음으로 달콤한 핑크빛 폭격이 떨어지고 있었다.


감수 : 경찰간부 출신 김판수 변호사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