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중심으로

김민진

by 마실 MaSill

피에르 위그: 《리미널》 –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중심으로


피에르 위그의 전시 《리미널》은 예측이 어려운 하나의 세계를 만들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하지만 작업은 인간이 없는 세계를 상상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가 얽힌 세계, 인간의 흔적이 비인간을 통해 지속하는 풍경을 드러낸다. 그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어 그들 사이의 상호관계에 관한 탐구를 시도한다. 《리미널》의 블랙박스는 거의 완전한 어둠 속에서 전시가 진행된다. 그 속에 은은하게 작품들을 비추는 빛은 보는 사람에게 불안정한 기분이 들게 한다. 서로의 얼굴과 존재가 인식하기 어려운 공간 속에서 어둠은 작품을 보는 관객과 작품, 그리고 전시장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또 다른 불확실한 세계를 형성한다.


피에르 위그의 〈휴먼마스크〉는 인간의 주체성을 넘어 인간이 사라지고 그 흔적만이 남은 그 이후의 세상을 드러낸다. 〈휴먼마스크〉에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황폐해진 도시를 비춘다. 사람들의 흔적이 사라진 마을의 한 식당에선 소녀의 얼굴처럼 보이는 가면과 가발을 쓴 원숭이가 등장한다. 벌레가 잔뜩 붙은 전등이 있는 낡은 주방에서 원숭이는 자신이 식당에서 배운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주위를 배회하다가도 멍하니 멈춰있기도 한다. 이러한 기묘한 분위기 속 원숭이의 행동은 보는 관객에게 심오하면서도 불쾌한 감정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러한 원숭이의 모습은 활기찼던 과거의 모습과 자신을 돌봐준 인간을 향한 그리움인지, 공허한 장소 속 혼자 남은 원숭이의 무의식적인 행동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이 초래한 재앙 속 인간이 살던 마을, 인간이 만들어낸 가면과 가발을 쓴 비인간, 인간에 의해 학습된 비인간의 모습은 인간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그 흔적과 질서가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는 모순과 사라진 인간성과 주체성을 더욱더 드러낸다.


〈휴먼마스크〉에서 원숭이가 소녀의 얼굴을 형상화한 가면을 썼던 것처럼 〈주드람4〉에선 소라게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조각 〈잠든 뮤즈〉를 쓰고 있다. 기존의 소라게가 살아가는 서식지가 아닌 피에르 위그가 구성한 하나의 세계 속에서 소라게는 인간의 얼굴을 띈 하나의 가면을 등에 업고 살아간다. 그에 반해 〈리미널〉에선 얼굴이 없는 한 존재가 무언의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이동한다. 〈리미널〉 속 얼굴 없는 이 존재는 인간과 비인간 간의 모호한 경계를 배회하며 인간이라는 개념에 고찰하게끔 한다. 피에르 위그의 작업에서 인간은 더는 고정되지 않은 자율적인 주체로 다루어진다. 인간의 흔적 속에서 살아가는 비인간 존재처럼 인간은 비인간과 완벽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서로 얽혀가며 관계를 형성하고 하나의 세계를 구현한다. 피에르 위그는 이를 통해 관객이 스스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대해 탐구하고, 인간 이후의 존재 방식을 상상하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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