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빛
경계에서 마주한 인간의 본질
: Liminal , 두려움의 실체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가? 살아가며 한 번쯤은 답을 고민해 본 적이 있는 시시한 질문이다. 피에르 위그(b.1962)는 이 따분하고도 심오한 질문,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고민한다. 새로운 생태적 환경의 제안과 불확실성의 세계 즉 리미널(Liminal)-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1)를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얼굴이 없는 인간의 형태, 원숭이로 대체 된 인간을 제시하며 '인간 같은 것'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대해 교묘한 불쾌감을 심어주고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의 임계치는 어디까지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이러한 위그의 질문 속에서 리움 미술관의《리미널》은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눈앞으로 끌어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자신이 타인으로 존재하는 인간 존재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이번《리미널》전에서 위그의 작품은 전시장 안의 센서를 통해 전시장 안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발전하고 바뀌며 매번 새로운 작품으로 관객들 앞에 선다. ‘인간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가.’, ‘어떤 존재로 세상에 작용하였는가.’ 등의 우리의 시시한 질문들은 모두 과거형에서 그친다. 반면 위그의 작품들은 공간을 통해 미래에 대해 질문한다. 공간이란, 사람이 사는 곳인지라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어떤 가치를 추구했는지 등의 인간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는 명확한 요소가 담겨있다. “시뮬레이션은 혼돈을 지날 수 있게 해주는 여러 가능성의 투영이다.” (2) 위그는 혼란스러운 현재 시대의 인류 '그들이 존재하는 공간을 재료로 여러 가능성을 제시한다. 과거에 매이지 않고 인간이 앞으로 나아갈 공간에 대해 바라본다. 기계와 기존 생태(전시 공간)의 결합을 통해 인간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지점을 이야기하며 그것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에 대해 더욱 확고히 드러낸다. 이를 인식하고 인류가 가질 미래 공간에 대한 추측이자 기대감으로 변모하는 작품을 내놓았던 것은 아닐까.
어두운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대형 스크린에서는 얼굴 없는 파리한 여성의 신체가 관객을 맞이한다. 어둠 속에 부유하는 모든 시선을 자신에게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관객들은 스크린 안에 존재하는 ‘인간 같은 것’에 집중한다. 이 순간 관객은 스크린이라는 매체 안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을 보여준다 해도, 텔레비전은 모니터에 비치는 사건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인 듯 느끼게 만들며, 시청자를 바로 그 사건의 목격자인 양 브라운관 앞으로 불러세운다.(3) 전시 초입에서 스크린을 통한 환영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은 스크린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몰입하게 된다. 스크린 속 인간처럼 보이는 여성은 자신의 몸을 만지고, 자신이 존재하는 세상의 끝으로 걸어간다. 세상에 끝이 있다면 그곳은 어떤 이름으로 명명해야 하는지, 애초에 그곳으로 걸어가고 있는 여성의 나체는 어떤 식으로 명명할 수 있는지, 인간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바탕에 대해 고민해 보게 한다. 영상의 재생을 거듭하며 관객들은 자신의 신체를 확인하고 자신의 주변 환경을 둘러보고 확인한다. 어둠과 스크린, 두 가지 요소가 맞물려 관객들을 엄청난 몰입 속에 위치시키고 거듭되는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 더 깊은 몰입과 이해를 만들어낸다.
관람객의 몰입을 이끄는〈리미널〉을 뒤로 어둠 속에서 주변을 살피다 보면 〈이디엄〉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물체 정도로 인식될 뿐이다. 센서 기반의 황금마스크는 한곳에 머무르다 새로운 데이터 정보의 학습을 통해 만들어진 시야를 따라 이동한다.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품이 놓이는 위치는 가히 거만스럽다. 관람객과 함께 작품을 관람하는 태도처럼 보인다. 작품으로써 이 공간에 존재하는 듯하지만, 인간들의 이동 경로, 분포도와 같은 정보들을 수집한다는 기술적 명목 아래 인간을 관조하는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센서 기반의 황금마스크는 한곳에 머무르며 실시간으로 주변 정보를 수집해 만들어진 시야에 따라 이동하며, 발화하기도 한다. 그렇게 결정된 시야를 통해 마스크를 쓴 사람은 옮기는 운반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서 인간은 기계 아래 종속되어 작품의 주체가 되지 못하며 운반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역할을 수행하며 ‘인간’의 무력함을 보여준다. 이 거만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갤러리에 걸린 작품을 관람하는 우아하고 품격 있는 감상자의 태도와는 확연히 다르다. 두려움이 맺힌 조심스러운 발걸음과 한껏 앞으로 내민 상체에서 알 수 있다. 작품이 어둠 속에 그저 존재하기만 할 때는 관객들은 작품이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이디엄〉이 이동하는 순간 관객들은 소리를 지르고 작품과 자진하여 멀리 떨어지고 심지어는 도망치기도 한다. 여기서도 관객들은 교묘한 불쾌감을 느낀다.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자신과 같은 인간임을 안 후 그 인간이 인간답지 않은 행동으로 인간의 경계를 서서히 부숴갈 때 관객은 두려움을 느낀다.
이러한 리미널(Liminal)에 도달했을 때의 인간은 두려움을 자신의 중심에 세운다. 리움 미술관이 블랙박스를 《리미널》전의 전시 장소로 선택한 이유 또한 작품이 주는 영향과 유사한 결과를 끌어내기 위함이다. 어둠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두려움을 이끌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다. 전시 공간의 어둠과 작품의 교묘한 불쾌감으로 생기는 두려움은 현재 자신이 위치하고 있는 곳에서 벗어나려고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 때문에 위그 본인 또한 이 두려움을 자신의 앞에 세워 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 그 이후의 여러 가능성에 대해 추측한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을 인식했을 때, 이후 자신에게 닥칠 여러 상황을 떠올려본다. 그리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고 그 과정을 지나는 동안에도 두려움을 느낀다. 이를테면 1990년 말, 전 세계적으로 두려움에 떨었던 밀레니엄 버그처럼. 밀레니엄 버그가 다른 예언이나 여타 종말론과는 다르게 다가왔던 이유는 첨단 과학과 미래지향적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인간이 대처할 수 없을 것 같은, 처음 마주하는 기술과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위그는 인간 종말 그다음 세계의 모호한 추측을 통해 관객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준다. 계속해서 변환하는 예상 불가능한 이야기의 흐름을 통해 어떤 시대가 도래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동시에 다시 우리가 있는 이곳,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피에르 위그는 인간의 영역에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요소에 대해 변주를 준다. 예측 가능한 ‘인간’이 되는 조건들을 깨뜨리며 그렇게 깨진 ‘인간’은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인간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오는 낯선 환경과 존재에 대한 묘한 불쾌감은 모종의 두려움을 일으키며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다.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위그의 작품이 던지는 불편한 질문 앞에서 우리는 이성적 판단 이전에 원초적인 불안감과 두려움이라는 감정 아래에서 역설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학습된 기계와 같은 고도의 지능이나 이성적 사고가 아니라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감정적 반응 또한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위그의 작품은 미래에 대한 다양한 추측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인간의 감정과 기계적 이성의 복합적인 작용 속에서 다시 생각해 보도록 이끈다.
피에르 위그《리미널》
(리움 미술관 블랙박스, 그라운드 갤러리 2025.02.27. – 2025.07.06.) 전시 전경
직접 촬영
(1) 리움미술관 홈페이지 전시 설명글 인용
(2) 리움미술관 홈페이지 피에르 위그의 말 인용
(3) 조선령,「비디오 아트와 시간의 실재화」, 『현대미술사연구』, 37, 250쪽